성경 본문 : 누가복음 12:42-43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강사 : 박인경 사모
-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
- 한국심리상담연구소 P.E.T 강사
- 「부모면허」, 「사모면허」 저자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불교 집안의 늦둥이로 태어나 이십 대 청년 시절에 믿게 된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빠졌고, 믿음 좋은 목회자 남편을 만나 사모가 되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온 천하가 빛을 잃은 듯 절망했을 때, 그 고통 속에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무게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소천으로 망연자실한 그에게 하나님은 상담가와 코치의 길을 열어주셨다. 마치 사모로서의 사명이 끝난 것 같은 그때부터 사모들을 살리는 새로운 사명을 허락하신 것이다.
인천교대를 나와 동두천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학과에 편입해 졸업 후 6년간 조교로 일하며 캠퍼스 사역에 헌신했다.
일산장로교회 담임목사 사모로 섬기다가 2011년에 남편과 사별 후 본격적으로 코칭의 길에 들어섰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코칭아카데미 전문과정을 마쳤다. 2005년부터 한국심리상담연구소 소속 P.E.T. 강사로, 한국코치협회의 전문 코치로 강의와 코칭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요약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
- 현재 70세, 제 삶과 신앙 여정을 간증함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기를 바란다
-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외가와 친가 모두 기독교인이 없는 환경에서 성장
-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복잡한 외도로 인해 어머니가 자살 충동에 시달림
-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살았다
- 그런데, 아버지가 사기를 당한 후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 극심한 가난을 경험
-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국가 지원이 있던 교대를 다니고 초등학교 교사가 됨
신앙의 시작
- 사표를 내고 사범대학으로 편입한 후, 25세 대학 4학년 때 선배들의 전도로 처음 교회에 방문
- 첫 예배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찬양을 듣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림
-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 진실하게 느껴져 예수님을 영접
- 영접 후 죄를 깨닫고 십자가의 의미에 깊은 감동을 받음
신앙 성장과 훈련
-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기초적인 성경 지식이 부족함을 인식하고 '속성반'에 넣어달라고 기도
-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 3년간 집중적인 훈련을 받으며 영적으로 성장
- 여름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체험하는 영적 경험을 함
-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며 6년간 캠퍼스 사역을 통해 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
결혼과 가정
- 31세에 결혼을 위한 금식기도를 하며,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전도사와 결혼하여 경상도 출신의 엄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됨
- 자녀 양육과 사모 역할에 어려움을 느꼈으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극복
어린 아들을 잃다
- 남편이 담임목사가 된 지 14일째 되는 날, 6살 아들이 태권도 학원 차량 사고로 사망
- 아들의 죽음으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며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 말씀의 의미를 절실히 깨달음
- 장로님들이 걱정하시는 대화를 듣고 정신을 차리고, 목회 사역을 계속하기로 결심
- 고통 중에도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목회를 이어감
남편의 죽음과 새로운 사명
- 아들을 잃은 지 18년 후, 56세의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
- 교회와 집, 친구들을 모두 떠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사
- 친구를 통해 "손 목사는 사명을 다 마쳤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고, 역으로 자신에게 아직 사명이 있음을 깨달음
-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명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됨
새로운 사역의 발견
- 교회 안에서 하던 부모 교육과 상담을 교회 밖으로 확장
- 하나님의 인도로 부모학교를 설립하고 '부모 면허', '사모 면허' 등의 책을 저술
- 평신도 부모학교 인도자 과정과 사모님 대상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
- 고난 속에서 발견한 사명을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음
- 부모학교를 통해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건강해지는 열매를 목격
고난에 대한 메시지
- 하나님 안에서는 의미 없는 고난이 없으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음
- 고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그 고난을 통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물어야 함
- 고난과 희생이 우리를 더 성숙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명자로 만든다
-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인생이 더 아름답다
결론과 기도
-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찾고 만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권면
- 고난을 만난 사람들이 강하고 존귀한 사명자로 세워지기를 기도
적용과 결단
-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질문하기: "이 고난과 상처를 통해 어떤 일을 어디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 고난 속에서 '고난의 주님'을 먼저 만나는 데 집중하기
- 자신의 고난과 상처를 낭비하지 않고 사명으로 전환하기
-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0. 간증에 들어가며: 고난 위에 덮어쓴, 영광스러운 사명
방금 소개받은 박인경입니다. 이 거룩한 밤, 다니엘 기도회에서 하나님의 존전에 함께 나아갈 수 있음이 제게는 참 기쁘고 영광스러운 시간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간증이 늘 어렵고 두렵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두렵습니다. 또한, 제가 지나온 고난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 아픈 기억과 감정을 다시 꺼내는 것이 고통스러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나이 일흔이 되고 보니, 정반대의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그 고난의 시간이 너무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그 고난 이후에 주님께서 제 손에 쥐어 주신 사명이 너무도 존귀하고 감사해서, 그 사명을 붙들고 힘차게 달려오다 보니… 제가 겪었던 그 참혹했던 일들이 때로는 가물가물하고, 심지어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겪은 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과 성도님들 앞에서 진실한 간증을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너무 커서, 담당 목사님께 못하겠다고 연락이라도 드려야 하나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 다니엘 기도회 강사 포스터가 나왔다며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저는 오늘 제 의지가 아니라 저를 박아 넣은 그 포스터 때문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를 통해 오직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기를,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의 마음에 들려주실 그 뜨거운 음성을 명확히 듣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애로사항이 많은 이 할머니의 간증을 들으시며, 부디 측은지심과 중보의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목마름: 인생의 답을 찾아서
저는 불교 집안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부유하셨고 저를 지극히 사랑하셨지만, 저희 어머니 외에 다른 여인들이 너무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웃으시지만, 착하고 고우셨던 저희 어머니는 늘 마음이 무너지셨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엄마가 자살에 성공하시려나’ 하는 두려움 속에서, ‘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길에서 떼쓰며 우는 아이를 보며 ‘나는 저렇게 버둥대며 울어본 적이 있던가’ 생각할 만큼, 저는 제 감정을 누르며 엄마만 지키며 살았습니다. 자연히 아버지를 원망했고,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시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좋은 동네 큰 집에서 시작해, 싼 동네 작은 집으로, 독채 전세에서 2층 전세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해졌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 나라에서 학비 면제는 물론이고 지원금까지 준다는 이유 하나로 동네 교대에 진학했습니다.
교사가 되었지만, 제 마음의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인생의 답은 어디에 물어야 하는가?’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목마름에 사표를 내고, 다시 공부를 해보겠다며 사범대에 편입했습니다.
2. 채워짐: 십자가가 나를 덮어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는지, 편입한 지 얼마 안 되어 온 나라가 계엄 선포로 뒤숭숭하던 4학년 때, 약속이나 한 듯 세 사람이 제게 다가와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같은 학교 선배가 할 말이 있다며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지, 그리고 북한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그 선배의 눈빛과 표정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답을 몰라 이렇게 헤매고 있는데, 저렇게 신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라는 곳을 한 번은 가봐야겠다.’
그렇게 저는 스물다섯, 제 평생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제 다리는 앞으로 가는데, 제 온몸은 가기 싫다고 뒤로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아, 사람이 이래도 뒤로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구나.’ 그 기묘한 현상을 느끼며 교회 대학부에 들어섰습니다.
웬 어른들이 모여 계속 노래를 부르는데, 그중 한 찬양 가사가 제 귀에 콕콕 박혔습니다.
어린양 예수 날 위해 죽으셨네. 아프고도 쓰린 눈물 홀로 흘린 주님이여, 주님 죽인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직 ‘찬양’이라는 개념도 없던 제가, 그 노래를 듣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가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강같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저를 전도했던 선배가 제 곁에 앉아 (사영리) 소책자로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난생처음 듣는 그 이야기가 거짓말 같지 않고 다 믿어졌습니다.
그가 제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겠습니까?" 저는 속으로 ‘아니, 영접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입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기도하세요." "저는 기도할 줄 몰라요." "여기 영접 기도문을 마음으로 따라 읽으세요."
저는 제 입을 벌려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 같은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그리고 제 눈이 그다음 단어인 "감사합니다"를 읽는 순간,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버스에서 자리 하나 양보받아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데,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이 있다는데… 고작 '감사합니다' 한 마디면 되는 걸까? 더 적합한 말이 없을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지금 돌이켜보면 바로 그 순간, 성령님이 제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동이 밀려옵니다.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저질렀던 수많은 죄악이 제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십자가가 제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자, 감사함과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십자가가 제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동안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마음의 큰 고통 사라져’라는 찬양을 부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마음에 큰 고통이 찾아와’라고 가사를 고쳐 불렀습니다.
나를 위해 달리신 그 십자가, 그 고난과 사랑이 제 모든 감정과 생각과 가치관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저의 모든 것을 ‘덮어쓰기’ 하셨습니다.
3. 부르심: 사랑과 사명을 구하다
예수님을 믿고 나니, 유치부 아이들이 아는 성경 말씀을 제가 모르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좀 속성반에 넣어주세요. 제대로 된 속성반이요!"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네비게이토’ 선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45년 전 그곳의 훈련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는 만 3년 동안 리더들에게 집중 훈련을 받으며, 누군가를 양육할 수 있는 훈련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기도 제목을 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적었습니다.
- 하나님, 저를 이렇게 목숨 버려 구원하셨는데, 저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합니까? (사명과 진로)
- 하나님, 사랑이 무엇입니까? 저는 인간의 사랑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제가 그 사랑을 몰라서야 어찌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하나님 사랑을 알게 하소서)
수련회에서 저는 덜컥 ‘방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방장의 임무는 방을 치우고, 집회에 나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다독여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첫날밤, 방장 보고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제일 높은 리더 형제가 위궤양이라며 비스듬히 누워 보고를 받았습니다.
제 옆 방장이 먼저 보고했습니다. "우리 방에 한 자매가 너무 말을 안 듣고 집회에 안 나가서, 저까지 방에 붙잡혀 있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리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자매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하는 보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다음에 하는 보고야?"
그 말이 저에게는 온 우주를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 위로 천둥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영'이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날 제가 보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9박 10일의 수련회 기간, 제가 무엇을 먹었는지, 밤에 잠을 잤는지조차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캄캄한 밤에 모두가 자는 건물 밖 바위 위에 앉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영으로 받으며 밤새도록 우는 것뿐이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수련회가 끝나는 날에는 두 눈이 퉁퉁 부어 떠지질 않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앞사람이 내어준 막대기를 붙잡고 소경처럼 산을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제 평생 구원 다음으로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수련회에서 돌아오자마자, 현관문 앞에 편지 봉투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 저건 내 진로에 대한 응답이다’라는 소름 돋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주임 교수님께서 "조교 자리가 비었는데 네가 왔으면 좋겠다"라고 하신 편지였습니다.
저는 기쁘게 캠퍼스로 갔습니다. 교수님은 제게 방을 두 칸이나 주셨습니다. 저는 한쪽 방 캐비닛에 배고픈 대학생들을 위해 먹을 것을 가득 채워 넣고, 문 앞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하나님, 성경,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싶은 분. 인생이 뭔지 몰라 힘든 사람. 박 조교에게 문의하세요. (P.S. 먹을 것도 많아요)"
저는 그곳에서 6년간 제 마음껏 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며 캠퍼스 사역을 했습니다.
4. 헌신: 겁 없는 기도의 응답
어느덧 제 나이 서른한 살이 되었습니다. 반세기 전 그 나이는 지금의 마흔둘은 되는 엄청난 노처녀였습니다. 저를 전도했던 친구가 와서 "너 결혼 기도해야 돼"라고 조언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을 이겨 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네 소원을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해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결혼이 주의 뜻이 아니면 절대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만약 주의 뜻이라면, 제 외로움 때문에 아무나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결혼할 테니, 그 사람과 사는 것만으로도 주의 영광이 드러날 만큼 믿음 좋은 형제를 저에게 주십시오."
저는 더욱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나이도 많고, 아버지도 안 계시고, 집안에 믿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디서 데려다주시기 전에는 저는 결혼 못 합니다. 그러니 길가의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시는 주님, 혹시 남은 형제가 없거든 저처럼 속성반으로 하나 만드셔서라도 저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제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지금 생각하면 참 겁 없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만약 그렇게 하나님 영광 위해서 살 사람이 있다면… 앉은뱅이여도 좋고, 언청이여도 좋습니다. 다른 여자 주지 마시고 저에게 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내가 너무 겁 없는 기도를 드렸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내려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올라갔습니다.
"하나님! 제가 조금 아까 드린 기도 있잖아요. 제가 지금 금식 첫날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몸이 더 힘들어지면 그 기도를 취소할까 봐 다시 올라왔습니다. 제가 혹시 나중에 취소하더라도 절대 받지 마시고, 조금 아까 드린 그 기도 그대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가정에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감당 못 할 줄 아시고, 신체가 건강한 전도사님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 저는 사모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자, 하나님은 "나는 네가 기도한 대로 네 옆에 갖다 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결혼을 하고 사모가 되었습니다.
5. 연단: 아들의 죽음과 한 영혼의 무게
저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남편을 섬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제 삶의 목표는 어머님과 남편이 임종의 순간에 "내가 당신(너)하고 살아서 참 행복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 믿는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우는지, 좋은 사모가 사역을 어떻게 하는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찔찔 짜고 울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입니까?"라고 묻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를 시시콜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남편이 담임 목사가 되어 부임한 지 정확히 14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교회 대심방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6살이었습니다. 담임목사로 새로 부임한 교회에는 아직 선교원이 없었기에 어린 아들이 "엄마, 심심해. 태권도 학원 보내줘"라고 해서 동네 학원에 등록을 시켰습니다.
그날, 학원 차량이 아이를 태우고 집에 왔습니다. 운전기사분이 오신 지 이틀밖에 안 되어 저희 집을 헷갈렸는지, 아파트 단지 다른 곳에 아이를 내려주었습니다. 저희 아들은 화단을 따라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그 차는 후진을 하다가 제 아이를 치었습니다.
병원에서 "아이가 뇌사 상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고통이 너무 힘들어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때의 감정을 제 책 《사모 면허》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향해 가졌던 사랑의 감정과 꿈까지 잃어버려야 하는 것이 더더욱 고통스러웠다.
그 아이가 없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달과 별이 떴다. 버스가 다니고 동네 아이들은 재잘거렸다. 나에게 아들이 없는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고 모든 것이 빛을 잃어 캄캄한데, 세상은 야속하리만큼 아이만 지우개로 지워낸 듯 그대로였다.
나는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 비로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를 알게 되었다.아들이 없는 나에게 온 천하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한 영혼은 천하보다도 중한 무게인 것을… 십자가의 사랑에 감동하며 이미 알고 있는 줄만 알았던 그 말씀을, 실은 머리로만 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을 잃고 나니, 그 말씀이 살아서 나의 온몸과 세포 하나하나 속으로 아프게 파고들어 와 살아있는 말씀이 되고 실존이 되었다.
하루는 제가 안방에 누워 있는데, 밖에서 장로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사모님이 저러다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외국에 한 1년만 나갔다 오시면 어떻겠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사모였지. 이 교회에 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 장로님들께 말했습니다. "장로님, 제가 정신을 버쩍 차리고 살겠습니다. 저희가 여기 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어딜 갑니까. 교회를 생각해서라도 제가 정신 차리겠습니다."
그다음 주부터 교회 특별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저희 부부 머리 위에, 그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폭포처럼 부어주셨습니다. 저희는 비로소 '천하보다 귀한 그 한 영혼'이 '성도'라는 이름으로 저희 눈앞에 걸어 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잃어 너무 고통스러운데, 성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물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성도님들 사이로, 가끔 목사와 사모의 눈을 콕콕 찌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 안에는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모인 내가 알 수 없는 저분의 과거가 얼마나 모질고 팍팍했으면, 저렇게밖에 사랑해 달라는 표현을 못 할까.’
몸이 약해 새벽기도를 빠뜨린 날이면, 밤에 교회에 나가 사람들이 없는 그 텅 빈 곳에서 그 성도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상상할 수 없었던 그분의 아픔이 느껴지고, 그분이 어렸을 때 울었을 것 같은 통곡이 제게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대신 울고 나면, 그분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안쓰러워 보이던지요. 지금 생각하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6. 사명: 남겨진 자의 이유
아들을 잃은 지 만 18년이 되던 해, 저보다 10배는 건강했던 남편이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하나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아들을 잃었을 때는 생살을 찢어내는 아픔이었다면, 남편을 잃고 나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붕이 없는 집에 앉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너무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 그리움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저는 후임 목사님과 성도들이 빨리 정을 붙이시도록, 아이들을 데리고 가장 먼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희 아이들은 아빠뿐만 아니라 친구와 교회까지 모두 잃어버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저 역시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고 나니, 교회도, 담임 목사님도, 성도들도, 동네도…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저를 전도했던 그 친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제게 메일을 보내주었습니다.
"손 목사(남편)는 그 사명을 다 마쳤다. 그리고 네 친구(저)는 염려하지 마라."
그 글을 읽는 순간, 두 가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그렇게 좋은 목회자를 왜 이리 빨리 데려가시나' 하는 야속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사람의 사명은 다 끝났다면… 나를 여기 살려두신 것은, 나에게는 아직 이 땅에 남아있는 사명이 있다는 말씀이구나.'
그 음성을 듣고, 저는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남편은 제게 좋은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역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데려가신 그 슬픔과 그리움에, 제 몸무게는 30kg대를 겨우 유지하며 길을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사모도 아무것도 아닌데, 그럼 저는 이제 뭘 하며 살아야 할까요?" 제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야, 넌 이 상황에서도 네 사명이 뭘로 바뀌었는지 궁금한가 보구나.’
신기하게도 남편이 떠난 직후, 제가 교회 안에서 하던 부모 교육과 상담을 교회 밖에서 해달라는 요청이 지인들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7년간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을 대상으로 학교와 병원에서 부모 교육을 하며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부모 학교' 3학기 훈련 과정을 만들어주셨고, 《부모 면허》와 《사모 면허》라는 책을 쓰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부모 학교와 더불어, 내년부터는 '사모 학교'와 '사모 콘퍼런스'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 혼자가 아닌, 다른 분들도 이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인도자 과정을 세우는 것이 저의 다음 사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7. 맺는말: 고난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아들과 남편을 잃었을 때, 부끄럽게도 저는 빨리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명을 제 손에 꼭 쥐고 나니, 오래 살고 싶어 졌습니다. "하나님, 제가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다면 이 사명 끝까지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무너진 정원을 수축하다가 주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누가 제 삶을 들여다본다면, ‘저주받은 삶’이라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길은,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여정이요, 영광스러운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어느 동네 교회 사모로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다른 사명을 주셨습니다. 조국 교회의 부모를 살려 다음 세대를 살리고, 목회자의 가정을 먼저 건강하게 세워, 그 은혜가 온 교회로 흘러가게 하는 사명입니다.
여러분, 이만큼 살아보니 하나님 안에서 의미 없는 고난은 없었습니다.
혹시 지금 고난 중에 계십니까? 부디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서운해하지 마시고, 삐지지 마시고, 고난의 때에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런데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이 고난 좀 해결해 주세요"라고 종주먹을 내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 고난 속에서 ‘고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그 고난의 주님을 먼저 만날 때, 문제의 해결은 반드시 따라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과 희생을 저주라 말하지만, 우리는 그 고난과 희생을 통해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명자로 빚어집니다.
지금 걷는 이 고난이 없는 나의 인생보다, 이 고난이 있는 나의 인생이, 나를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깝게 다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할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요즘 단풍이 참 아름답지요? 햇빛을 가장 많이 받은 나무의 단풍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 때문에라도 하나님을 더 자주 만난 사람, 그 고난이 괴로워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다가 그것이 기도가 된 사람, 그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우리보다 더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아픈 마음으로 허락하신 우리의 고난을, 부디 낭비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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