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시편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강사 : 김재원 아나운서
- 방송인 및 한세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 사랑의교회 장로
- 전) KBS 아나운서
*다음 접은글은 집사님 간증을 가급적 그대로 스크립트로 정리한 것입니다. 원하시면 바로 아래 '더보기'를 누르세요.
안녕하십니까. 김재원입니다. 밝은 표정으로 환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서 찬양과 기도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 자리에 서는 것이 결정된 이후 기도해 주신 성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 기도가 큰 힘이 되어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의 밝은 표정이 제게 가장 큰 은혜가 됩니다.
주인공이 아닌 안개꽃의 기쁨
저를 잘 모르실 텐데도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여름, 대한민국 공영 방송 KBS에서 30년 6개월을 일하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을 12년 동안 진행하다가 낯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오늘로 꼭 100일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하나님께서 과분한 자리에 저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도 사실 두렵고 떨리는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제 인생에 과분한 자리를 허락하실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와 목적과 이유가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도 제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 도전받을 단 한 사람이 있다는 확신 때문에 섰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 모두가 그 한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저를 큰 박수로 환대해 주셨지만, 저는 아직 박수가 어색하고 민망합니다. 텔레비전 일을 하는 사람이 박수가 어색하다니 의아하시겠지만, 저는 박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제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도록 돕는 역할이며, 그 말에 감동한 시청자와 방청객이 출연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장미꽃을 빛나게 하는 안개꽃이며, 들러리의 기쁨을 누릴 뿐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인생에 함께하신 하나님 이야기, 제 인생에 동행하신 예수님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제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혹 저를 격려하거나 축하하고 싶어 박수를 치고 싶으시다면, 잠시만 참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오직 영광 받으실 우리 하나님께 그 박수를 몰아서 보내드렸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집중하십시오
제가 좋아하는 김남조 시인의 '선물'이라는 시의 앞부분을 소개합니다.
"내야 흙이 온데 밀랍(蜜蠟)이듯 불 켜시고 / 한평생 돌이 온 걸 옥의 문양 그으시니 / 난생 처음 이런 조화를 보겠네."
저는 한평생 흙으로, 돌로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밀랍인 것처럼 제 인생에 불을 켜셨습니다. 그리고 제 돌 같은 피부에 옥의 무늬를 그어 넣으셔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가끔 간증을 들으면 은혜롭고 감동스럽지만, 잠자리에 들 무렵 '그분은 그렇게 훌륭한데 내 인생은 무엇일까' 하고 허무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제 인생에 집중하지 마시고, 여러분 각자의 인생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인생에 함께하신 하나님, 제 인생에 동행하신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도 함께하고 동행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이, 제 인생의 하나님이 아닌 여러분 인생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느끼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만 밀랍이듯 불이 켜지고 옥의 무늬가 새겨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 인생에 불이 켜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게 하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 몸에 새겨진 옥의 무늬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조화이며 선물입니까?
인생의 가방, 인생의 무게
오늘 저와 함께 하시면서 여러분 인생에 집중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지금 여러분께서는 제가 왜 가방을 메고 나왔는지 무척 궁금하실 것입니다. 멀쩡하게 차려입고 그다지 좋아 보이지도 않는 가방을 말입니다. 이것은 제 '인생 가방'입니다. 제가 일상에서 들고 다니는 가방이며, KBS 재직 시절 4km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할 때 메고 다니던 바로 제 인생의 짐입니다.
여러분은 제 어깨에 멘 가방을 보시겠지만, 저는 여러분 어깨에 메어 있는 인생의 무게를 봅니다. 엄마로서, 아빠로서, 아들과 딸로서, 며느리와 사위로서, 때로는 사회인으로서, 주부로서, 혹은 장로, 권사, 집사, 성도로서 여러분이 짊어지고 있는 그 인생의 무게가 보입니다. 청년은 청년대로,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쉽지 않은 인생입니다.
때론 그 가방을 내려놓고 싶으셨을 테지만, 내려놓을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그 가방을 메고 다닙니다. 여행은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래서 걸었고 그래서 가방을 멨습니다. 우리도 본향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가는 그 여정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그 가방이 이제는 좀 가볍게 느껴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산행을 떠날 예정입니다. 제가 10년 전쯤 '리얼 체험 세상을 품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 라다크 지역을 산행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5,328m 도로를 산악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2주간의 여정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고비와 여정을 겪었지만, 오르고 나니 기뻤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고비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 고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히고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이 찾아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오를 산은 성경에 등장하는 산들이며, 그 산들을 안내할 안내자들 역시 성경 속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분명 그 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메시지를 듣고, 선물을 받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느 산에서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신지, 여러분의 인생에 집중하며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산, 모리아: 순종과 믿음
가장 먼저 오를 산은 모리아산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아브라함과 함께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꽤 늦은 나이, 백 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아들이 어느덧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잘 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브라함이 어느 날 밤 "내 아들 이삭을 내게 바쳐라"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듣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니, 아브라함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리아산에서 바치라는 구체적인 명령까지 내려온 마당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짐을 챙기고 나무 짐을 지고 사흘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사흘 만에 모리아산에 도착하여, 종들은 산 밑에 두고 다 큰 아들 이삭을 데리고 오릅니다. 눈치 빠른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님, 나무와 불은 여기 있는데 제사 드릴 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섬뜩했지만 "그 양은 하나님이 예비하실 게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모리아산 꼭대기에 오릅니다. 이삭도 이제 눈치를 챈 듯합니다. 모리아산 정상에 올라 나무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이삭을 올려놓자, 이삭도 포기한 듯 눈을 감습니다. 아브라함은 눈물을 머금고 칼을 빼 들어 귀하게 얻은 아들 이삭을 향해 내리치려는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네 믿음을 알았다. 이제 그 칼을 내려놓아라." 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아브라함은 다리에 힘이 풀려 얼른 이삭을 내려 울고 있는 아들을 부둥켜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고개를 둘러보니 가시덤불에 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태어나서 가장 기쁜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선물은 '순종'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린 선물이 순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순종 이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선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체험을 하고 나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자신을 지키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의 열등감과 하나님의 훈련
이제 제 어린 시절로 가보겠습니다. 전 어린 시절에 세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첫째 하늘을 날고 싶었고, 둘째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고 싶었으며, 셋째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겐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열등감은 키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친구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열등감은 아버지가 너무 잘생기시고 어머니가 너무 미인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아빠, 이런 엄마 밑에서 이 얼굴밖에 안 나오느냐"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이모들이 만나기만 하면 제 코를 잡아당기고 눈썹에 침을 묻혀 주셨습니다. 세 번째 열등감은 노래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목소리에 노래를 못 하느냐"는 말은 저를 두 번 힘들게 했습니다.
저에게는 세 가지 근심 걱정도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운전을 못 할까 봐 걱정했고,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못 할까 봐 걱정했으며, 대머리가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잘하고,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과 결혼했으므로 우리는 만난 지 46년이 되었으며, 올해 쉰아홉 살임에도 이 정도 머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근심, 걱정, 열등감을 이야기할까요? 이 자리에 계신 청년 여러분, 제 인생의 열등감과 근심 걱정은 그 시절 저를 짓눌렀지만, 제 인생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되는 데 아무런 나쁜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갖고 계신 그 근심 걱정과 열등감은 여러분의 인생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신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 짐을 좀 내려놓고 털어놓으십시오. 아마 상대방이 웃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열등감을 듣고 웃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제게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13살 때 어머니가 간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 장례식을 치를 때였는데, 저희 집이 복도식 아파트 8층이라 어머니의 관이 내려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먼저 영정 사진을 들고 주차장에 내려와 있었고, 어머니의 관이 이사용 곤돌라에 매달려 내려왔습니다. 12월 초 찬바람에 어머니의 관이 흔들렸습니다. '엄마는 놀이 기구도 잘 못 타는데 무섭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이 흔들리는 것처럼 이제 곧 내 인생도 흔들리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시절 '엄마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 아버지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셔서 교회는 열심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다음 해 여름 수련회에서 전도사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난 엄마도 없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마음에 덜컥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3년 동안 회장은 한 번도 못 하고 학생 총무를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학생 총무의 역할은 예배가 끝나고 학생들 앞에서 5분 동안 광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무척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매주 어린 청소년이 마이크를 들고 수백 명 앞에서 5분간, 그것도 3년간 광고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제 꿈을 기억하시고 무대 적응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맹인 학교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림과 도표를 볼 수 없기에, 친절하게 설명하고 녹음해 줘야 했습니다. 그 상황을 묘사하면서 우리 하나님은 저에게 표현력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제가 다니던 선교 단체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일주일씩 수양관에 들어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5박 6일 동안 성경을 읽는 '성경 통독 수련회'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성우들이 녹음한 음원이 없어서 '인간 통독사'가 직접 읽어야 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는 빠른 속도로, 눈의 속도로 읽어갔습니다. 이사야서 같은 경우는 66장을 1시간 40분 동안 쉬지 않고 읽을 정도였습니다. 5년 동안 여름, 겨울 열 번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직접 육성으로 통독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지명과 인명이 많았는지, 하나님은 그때 저에게 발음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제가 아나운서가 된 것의 8할은 그 당시 성경 통독 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빚진 마음이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성경 통독 음원을 만들리라.'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 저는 유튜브에 '김재원의 성경 통독' 채널을 열었습니다. 지금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가 올라와 있습니다.
네 번째 훈련이 있습니다. 그 선교 단체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교회가 없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 이른바 '농촌 선교 수련회'를 했습니다. 고향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발 마사지를 하며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저로서는 그분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그 사역을 매년 여름 10년 동안 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6시 내 고향'을 진행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린 시절 제 꿈을 기억하시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꿈을 위한 훈련을 시키고 계셨던 겁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꿈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그 훈련 과정에 두셨을 겁니다. 그 과정을 잘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제 꿈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꿈을 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교수가 되어 캠퍼스 사역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외아들이었던 저는, 어머니는 사별하였으므로 아버지만 혼자 고국에 둔 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전화벨이 울립니다. "재원아, 나다. 내가 지금 많이 아프다. 아무래도 네가 들어와서 장례식을 치르고 가야겠구나."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저는 얼른 짐을 쌌습니다. 사촌 형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옆집 유학생 동료를 깨워 공항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서울에 있던 지인들이 아버지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아버지는 쓰러진 채 발견되셨습니다. 그때 전화를 안 하셨으면 아마 며칠 후에야 돌아가신 채로 발견되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중풍, 뇌경색으로 팔다리와 언어가 마비되고 배변 장애와 섭식 장애가 오셨습니다.
저는 24시간 만에 귀국해서 아버지를 포옹했습니다. 그 순간 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미국 유학생에서 어느 중풍병자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말을 가르쳐 드리고, 걸음마를 가르쳐 드리고, 밥을 먹여 드렸습니다. 28년 전, 갓난아기였던 저에게 아버지가 베풀어 주신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제 미래가 불투명해졌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난 결혼도 했는데, 직장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럼 아버지는 누가 돌보지?' 온갖 생각에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아내는 결혼 넉 달 만에 친정집으로 들어가서, 장모님이 싸 주시는 도시락을 들고 매일 병원을 출퇴근하며 간병했습니다.
아버지가 6인실에 계실 때, 환자 보호자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헬기가 한 대 내려오더니, 손범수 아나운서가 팔을 쭉 뻗으며 "KBS 21기 신입사원을 모집합니다. 기자, PD, 아나운서..."라고 외쳤습니다. '아나운서'라는 단어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나도 아나운서나 한번 해 볼까?" 이 정도 크기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들었을 법도 한데, 도시락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병실에서 아버지 간병하는데 무슨 아나운서 시험이냐'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오기로 한 시각에 오지 않았습니다. 1시가 다 되어 도착한 아내에게 "어떻게 된 거야?" 했더니, 누런 서류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해보고 싶었다면 한번 해 봐." 여의도 KBS에 들러 입사 지원서를 받아온 것입니다.
그때부터 시험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과목이 많았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매일 신문을 스크랩해서 도시락과 함께 보내 주셨습니다. 아버지 침대 옆에서 공부하다 병실 불이 꺼지면, 복도 불빛에 밤을 새워 공부했습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열렬히 응원해 주셨고, 같은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저에게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나올 때, 아버지 장례식을 치를지도 모르겠다 싶어 결혼식 때 입었던 양복을 챙겨왔습니다. 그 양복을 병원 화장실에서 갈아입으며 1차, 2차, 3차, 4차, 5차 시험을 치렀고, 저는 그렇게 KBS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이 고비를 겪고 나니, '내가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은 나를 지켜 주시고, 오히려 그 위기를 발판 삼아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모리아산에서 받은 '순종'이란 선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상황에 자신을 맡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의 결과가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산, 호렙: 훈련과 부르심
이번엔 호렙산으로 떠나겠습니다. 안내자는 모세입니다. 모세의 인생은 잘 아실 겁니다. 아들들이 죽어야 하는 시대에 태어났지만, 어머니 요게벳의 지혜로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놓입니다. 바로의 공주가 그 갈대 상자를 발견하고, 마침 누나의 재치로 모세는 친어머니의 손에, 공주의 아들로 양육됩니다. 아이가 젖을 떼고 궁에 들어가 최고의 교육을 받습니다.
40년이 지난 청년 모세는, 궁궐 밖에서 히브리 사람과 애굽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편을 들다가 그만 애굽 사람을 죽이고 맙니다.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히브리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다가 "어제 애굽 사람 죽인 것처럼 우리도 죽이려느냐"는 말을 듣고, 살인 사실이 알려졌음을 깨닫습니다. 모세는 그 길로 도망쳐 미디안 광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양을 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도 생기고 자녀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무려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호렙산에 오른 모세는 떨기나무에 붙은 불꽃을 봅니다. "그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어라." 모세가 얼른 신을 벗자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인도자로 불렀다."
모세는 "하나님, 저는 말을 못 합니다"라고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걱정 말아라. 네 형 아론을 함께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계속 주저하자, 하나님은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시고, 손에 나병이 들었다가 낫게 하시는 이적을 보여주시며 모세의 마음을 사로잡으셨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했을 즈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가 됩니다.
이제 다시 제 인생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저의 세 번째 꿈(아나운서)을 들어주셨습니다. 다른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현재 세계 72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선교를 가기도 하고, 출장을 가기도 하고, 개인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꿈은 2002년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하며 이루었습니다. 단순한 낙하가 아니라 다섯 명이 팀을 이뤄 포메이션에 도전, 15번을 뛰어내리며 미국 스카이다이빙 협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재치 있게 우리의 꿈을 기억하고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냐고요? 그 후로 6년을 더 투병하셨습니다. 제가 춘천에 발령받았을 때는, 새벽 근무를 하며 1시 반에 퇴근하고 서울로 올라와 낮 시간 서너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보내고 막차를 타고 내려가는 일을 1년 동안 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정성껏 모셨던 아버지는 6년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피 값으로, 아버지의 희생 값으로 아나운서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바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월급쟁이 아나운서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2004년 2월, 한국 방송 77주년 기념으로 독도에서 최초로 생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6시 내 고향' 팀의 기획이었는데, 남자 MC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울릉도에서 날씨가 안 좋아 사흘을 머물다, 오징어잡이 통통배를 타고 6시간에 걸쳐 독도에 들어갔습니다. 삼일절 특집 방송을 어마어마한 바람 속에서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날씨가 안 좋아 배가 못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열흘을 독도에 머물렀습니다. 담당 PD가 욕심을 부려 독도의 사계(四季)를 촬영한다며 저를 데리고 다녔고, 결국 눈 덮인 동도산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날 저녁 입이 안 다물어지고 아무것도 씹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해군 식량 수송함에 실려 육지로 이송되었고, 서울의 치과대학 병원에서 '우측 하악두부 골절' 진단을 받았습니다. 귀밑 턱뼈가 부러진 것입니다. 이 하나하나에 못을 박고 윗니와 아랫니를 철사로 엮어 턱을 고정시키는, 이른바 '깁스'를 했습니다. 오로지 액체만 섭취 가능했습니다. 두 달 동안 12kg이 빠졌습니다.
문제는 말을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달 후에 내가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으면, 아나운서로 일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기도했고, 이를 악물고 찬양했습니다. 다행히 두 달 후, 약간의 재활 훈련 끝에 무사히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오셔서 최고의 발음 연습법이라며 '어금니를 악물고 발음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제일 잘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제 사정을 들으시더니 "혹시 교회 다니세요? 하나님이 김재원 씨를 대한민국 최고의 아나운서로 만들려고 작정하셨네요. 위기를 기회로 만드신 겁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닥치는 위기들은, 하나님이 기회로 전환시키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부르심이 바로 왔던 것은 아닙니다. 회사를 다닌 지 10년이 훌쩍 넘었을 때,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토론토에는 제가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했던 교회 후배가, 토론토 청소년 유학생들을 위한 '유스코스타(YSKOSTA)' 집회의 기획 담당 목사로 가 있었습니다. 그 후배가 전화가 와서, 밴쿠버에 계신 이성미 집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싶은데 아이가 셋이라, 제가 그 아이들을 좀 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필요한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전화가 다시 와서, 집사님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다며 "형이 대신 와 주실 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럼, 가지!" 하면서 토론토 유스코스타에 가서 1,200명의 한인 청소년 유학생 앞에서 처음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었을까요? 그 이후로 봇물 터지듯 간증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상해, 북경, 홍콩, 밴쿠버, 호주, 미국 등 해외를 돌며 간증 집회를 다녔고, 여러 교회의 간증 무대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아는 선교사님의 선교지를 방문해, 그분들의 선교 후원 보고 영상을 '인간극장'처럼 만들어 드리는 사역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훈련이었고 부르심이었습니다.
청년들 가운데, 혹은 어른들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기다림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어쩌면 우리의 부족한 것을 키워야 합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시간에 맡기고 부르심을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받은 선물은 '훈련과 부르심'이었습니다.
세 번째 산, 갈멜: 간절한 기도의 응답
이번에는 갈멜산으로 가겠습니다. 엘리야와 함께하는 여행입니다. 엘리야는 악명 높은 아합왕 시절의 선지자였습니다. 3년 반 동안 이어진 가뭄을 왕은 엘리야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가서 선포합니다. "당신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갈멜산 꼭대기에 모으시오. 나와 정면 대결을 합시다.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지, 불로 응답하는 신을 가립시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몸을 자해하며 기도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나서서 심지어 제단에 물을 뿌립니다. 그리고 목청껏 '불로서 응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로서 응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아합의 핍박이 더 거세져 엘리야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숲에 고개를 파묻고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의 기도 용사가 내 곁에 있다." 눈을 떠보니 저 멀리 손바닥만 한 구름이 보였고, 하나님은 비로써 응답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캐나다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사역할 바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지 그러냐"는 무책임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부르심이 다르죠. 저는 평신도 사역자입니다" 하며 그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코소보에서 사역하는 제 친구 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아버지 병간호를 할 때, 이 친구가 선교사로 나가기 전 두 달 동안 아버지 간병을 맡아 주었던, 빚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재원아, 내가 지금 알바니아에 선교사 자녀 학교(MK 스쿨)에 와 있어. 한국인 선교사 자녀가 40명쯤 되는데 선생님들이 돌아가시게 됐어. 다음 선생님을 못 구했는데, 하나님이 너희 부부를 떠올리게 하신다. 너희 부부가 오면 딱 좋겠어.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
"성민아, 고마워. 내가 작년에만 알았어도 갔을 텐데, 휴직 3년이 다 돼서 이제 회사로 돌아가야 해."
"재원아, 너는 KBS를 내려놔야 하나님이 역사하셔." 라는 엄청난 말을 하고 전화는 끊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기도했습니다. 주변 목회자들에게 물어보니 절반은 여의도로, 절반은 알바니아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밴쿠버에서 유스코스타 집회가 있었고, 강사로 참여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 강사는 인도에서 오신 '지구보기'라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청년들의 선교 헌신을 받으시며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북한으로 보내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노트북, 핸드폰, 지갑 등을 다 내놓았고, 어느 선생님은 결혼반지도 내놓으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있었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차 키가 만져졌습니다. '차를?' 하는 순간, 그 차 키의 열쇠고리가 'KBS 열쇠고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회사를 내려놓으라고 하시는구나.'
그날 밤 강사 대기실에서 지구보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시고는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실은 이러이러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하시네요." "아니야, 재원. 내가 어젯밤에 꿈을 꿨어요. 재원이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재원의 가슴에 커다란 텔레비전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텔레비전 속으로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장면을 봤어요. 재원의 선교지는 바로 텔레비전이에요."
그날 밤, 저는 코소보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성민아, 내 선교지는 텔레비전이래."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분명 하나님은 주변 사람을 통해서라도 응답하십니다. 그 간절한 응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받은 선물은 바로 '응답'이었습니다.
네 번째 산, 감람산: 이해할 수 없는 일 속의 섭리
이번에는 감람산으로 가겠습니다. 다윗과 함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인물이었지만, 자녀 문제만큼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형을 죽이고 궁을 떠났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지만, 다윗이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압살롬은 결국 영모를 일으켜 스스로 왕이라 선포합니다.
다윗은 영문도 모른 채 신하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쫓겨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왔는데, 왜 지금 이렇게 산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어야 하나?' 쫓겨 다니던 다윗은 제사장의 계략으로 다시 궁궐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감람산에서 만난 다윗의 삶을 보면서 깨닫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섭리는 분명 거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캐나다에서 '텔레비전이 선교지'라는 사명을 받고 돌아온 저를 기다리고 있던 프로그램이 바로 '아침마당'이었습니다. 아침마당은 제가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였습니다. 매일 아침 시청자들과 아침 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복음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나님이 이래서 나를 부르셨구나' 생각하며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흐른 어느 날, 본부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네가 '6시 내 고향'으로 가서 그 프로그램을 살려 줘야 되겠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곳이었는데...'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6시 내 고향'으로 갔습니다. 프로그램의 경중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 능력치를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침마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6시 내 고향'에서 고향 어르신들과 호흡하며 5년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장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와 친분이 없던 국장이었습니다. "재원 씨, 우리가 5년 전에 재원 씨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제 원래 자리로 돌아가요. 다음 주부터 '아침마당'을 맡아 주면 어때요?"
사실 그때 나이 쉰두 살이라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내려놓았어야 할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아침마당'으로 복귀해서, 그때부터 7년 2개월을 또다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31일, KBS와 '아침마당'을 떠났습니다.
제 인생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릅니다. 그 순간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잃기도 하고, 사업이 망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아프기도 하고, 내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시는,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입술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더 안타까워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며, 우리의 삶을 지키기 원하신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이 감람산에서 받은 선물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다섯 번째 산, 느보산: 홀로 치시는 하나님의 박수
이제 느보산으로 가겠습니다. 다시 모세 할아버지를 모셔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40년 광야 생활을 했지만, 반석을 내리친 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가나안 땅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홀로 데리고 느보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야속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40년을 고생했는데, 안 하겠다는 사람 억지로 불러왔는데, 가나안 땅에 발이라도 딛게 하시지.' 하지만 만약 그때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모세는 어마어마한 추앙을 받았을 것이고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을 물려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보산 꼭대기에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간의 수고를 홀로 치하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 하나님은 홀로 박수를 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런저런 사역을 감당하시다 보면 외로울 때가 있으시죠? '왜 나 혼자 이런 일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 잘하고 있구나" 하시면서 박수를 쳐 주십니다. 때로 지치고 힘들 때, 하나님의 박수만큼 감사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혼자 박수를 치신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7월 31일 KBS와 '아침마당'을 떠났습니다. 많은 시청자가 아쉬워해 주셨습니다. 그 서운함은 사랑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전화로, 댓글로, 직접 찾아오셔서 아쉬움을 전하시는 시청자들을 보며, "재원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위로를 받았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인도에서 오신 지구보기 목사님이 꾸셨다던, "김재원 씨가 복음을 전할 때 누군가 텔레비전 수상기 속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습을 봤어요"라는 그 환상이 바로 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낯선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낯선 세상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은 제 삶에 더 밀착해서 동행하고 계십니다.
여섯 번째 산, 겟세마네: 선한 목자의 마음
이제 끝으로 갈 산은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를 드렸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내게서 치워 달라"고 기도하셨지만, 하나님은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선한 목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목 민족이 아니기에 목자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라다크에서 산악자전거 여행을 할 때, 운 좋게 유목민과 3박 4일 동안 생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초겔'이라는 28세 목동이 아내와 두 딸, 부모님과 함께 양 400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양 400마리를 데리고 '쉴 만한 물가, 푸른 풀밭'을 찾아서 6km를 걸어갑니다.
그 가운데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는 양이 있으면, 초겔리가 돌팔매질을 합니다. 그 돌이 양 앞에 똑 떨어지면, 양은 얼른 무리로 돌아옵니다.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찾아가죠. 나머지 양은 양몰이 개에게 맡기고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더 신기했던 건, 그 400마리 양에게 모두 이름이 있고, 가족 모두가 그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내 이름 아시죠" 그 찬양의 근원이 바로 목동들이었던 겁니다. 매일 아침 아내와 어머니는 그날 젖을 짤 양, 털을 깎을 양의 이름을 부르며 줄을 세웁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런 분입니다.
어느 날 밤, 초겔이 칼을 들고 양의 우리로 가더니 양의 뿔을 자르기 시작합니다. 칼이 무뎌서 40분이 지나도 잘라지질 않습니다. 초겔리의 눈에도, 양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왜 이 뿔을 잘라요?" "이 뿔을 지금 자르지 않으면, 내일모레 이 뿔이 양의 눈을 찌를 거예요."
혹시 여러분이 지금 힘드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뿔을 자르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뿔이 이틀 후에 여러분의 눈을 찌를까 봐서요.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혹시 아직 복음을 들으시지 못한 분이 있다면, 복음은 바로 이런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도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많은 것을 허락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점점 더 멀어지는 인간들을 하나님은 회복시키려 하셨지만,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인간으로 보내셔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합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간단한 복음의 진리에 반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짐을 이제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너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결론: 사명의 마이크, 동행의 가방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가장 필요한 도움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산에 올라 순종과 믿음의 선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했습니다. 모세와 함께 호렙산에 올라 훈련과 부르심을 확인했고, 엘리야와 함께 갈멜산에 올라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다윗과 함께 감람산에 올라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하나님의 섭리를 짐작했습니다. 모세와 함께 느보산에 올라 홀로 박수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목자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그 목자의 마음이신 예수님에게 왜 목수라는 직업을 주셨을까. 저는 CCM 사역자 한웅재 선생님의 '어떤 목수의 이야기'라는 찬양을 좋아합니다. 그분과 대화 중에, 예수님은 아버지 목수 요셉을 따라 열 살 때부터 나무와 망치와 못을 만지셨을 것이고, 그때부터 이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하는 당신의 사명을 알고 계셨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한 번쯤 망치로 손을 내려쳐 보시지 않았을까요? 한 번쯤 못으로 손목을 꾹 찔러 보지 않으셨을까요? 한 번쯤은 주문이 들어온 십자가에 몸을 눕혀 보시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하나님은 예수님이 사명을 잊지 않도록 그 직업을 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일터에서 갖고 계신 그 직업이 어쩌면 여러분의 사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사명을 생각나게 하는 도구는 바로 이 마이크입니다. 제가 손에 마이크를 쥐고 있는 순간, 저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가끔 과거를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었던 10대의 저에게,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던 20대의 청년인 저에게 가서 "너는 이 다음에 KBS 아나운서가 될 거야. 아침마당을 진행할 거야"라고 하면 믿지 않을 겁니다. 제게는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말입니다.
쉰아홉 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나님과 동행할 겁니다. 제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모릅니다. 그렇게 저는 예순다섯이 되고, 이른 살이 될 겁니다. 그때 한 번 더 불러 주시면, 제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또다시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가끔 과거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미래를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현재 간절하게 기도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예수님이 내려놓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려놨지만, 어느 정도 쉬고 나면 저는 다시 제 인생의 사명을 짊어질 겁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또 이 가방을 메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겁니다. 무겁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함께 들어 주시거든요. 그게 바로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이유입니다.
저는 30년 만에 하나님이 주신 일터를 떠났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장로로, 다락방 순장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CGN TV에서 '하늘빛 향기'로,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한세대학교에서 다음 세대를 가르치겠습니다. 청소년 폭력을 예방하는 푸른나무 재단에서 청소년의 안정과 행복을 지키겠습니다. 월드 비전에서 홍보대사로 세계 취약계층 어린이를 돕겠습니다. 그리고 유튜브 '김재원 TV'와 '책과 삶'에서 따뜻한 위로와 선한 영향력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재원의 성경 통독'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있는 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이제야말로 여러분의 인생에 집중하실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산에 오르시겠습니까? 제 인생에 동행하신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도 동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신다면, 제 인생을 인도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도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신다면, 그 하나님과 그 예수님께 오로지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의 인생에 집중하는 오늘 이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여름, 30년 6개월간 일했던 KBS를 떠나 사직한 지 오늘로 꼭 100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를 환영해 주셔서 참 감사하지만, 사실 저는 아직도 이런 박수에 참 어색합니다. 그동안 아나운서로서 제 역할은 항상 출연자들을 시청자들께 소개하고 그분들을 빛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강사로 섰지만, 제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름다운 장미꽃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는 '안개꽃'처럼, 저는 그저 여러분과 예수님을 연결하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남조 시인의 '선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야 흙이온데,
밀랍(蜜蠟)이듯 불 켜시고
한평생 돌이온걸,
옥의 문양 그으시니
난생처음 이런 조화를 보겠네
인간 존재와 생명의 신비로움, 그리고 그 삶이 신(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일방적인 은혜와 선물임을 노래한 시입니다.
시 속에서는 인간을 흙과 돌에 비유하면서도, 그 평범한 존재 위에 불을 켜듯 영혼의 빛을 주고, 옥에 문양을 그어 존귀하게 만드시는 신비로운 창조의 손길을 표현합니다.
인간이 단순한 흙이 아니라 불과 귀한 옥의 문양으로 조화롭게 빚어진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이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룩한 마음으로 주신 선물이며,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함을 은유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시인의 이 시처럼, 오늘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되, 결국은 여러분 각자의 인생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보잘것없는 인생 이야기를 통해, 바로 여러분의 삶에 동일하게 함께하시는 그 놀라우신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인생의 가방
제가 왜 이 가방을 메고 나왔을까요? 이것은 제가 수십 년 동안 메고 출퇴근을 한 제 인생 가방입니다. (매일 아침 '아침마당' 생방송을 위해 공덕동 집에서 여의도 KBS까지 약 4km의 거리를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약 45분간을 걸으며 특히 마포대교를 건너며 인터넷 새벽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암송하고 기도를 하는 경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의 '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의 어깨에도 보이지 않는 무거운 인생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을 것입니다. 그 짐이 너무 무거워서 당장이라도 내려놓고 싶지만,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우리 각자의 십자가이기에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본향, 우리의 집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가방을 메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10년쯤 전에, 제가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방송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수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딱 넘어설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몇 개의 산을 올라보시지요.
모리아 산: 순종을 배우는 산
첫 번째 산은 '모리아 산'입니다. 이 산의 안내자는 아브라함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네 아들, 네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바치라."
그 구체적 명령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두 종을 산 아래에 두고, 아들 이삭의 손만 잡고 산을 오릅니다. 여러분,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들의 질문에 애써 태연한 척 대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을 아비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마침내 아들을 제단에 묶고, 이삭도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눈을 감았을 때,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오히려 놀라신 하나님께서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막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리고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숫양을 발견했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의 평생에 가장 기쁘고 감사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셨고, 그 순종의 대가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꿈은 많았지만, 동시에 수많은 근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수많은 걱정은 제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13살 때, 어머니께서 병으로 소천하셨습니다. 그 큰 슬픔 속에서 누군가 저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복음을 전해주었고, 일찍 어머니와 사별했던 저는 기쁨 속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학생부 총무가 되어 매주 예배 광고를 맡아 청중 앞에 서는 훈련을 자연스레 해야 했습니다.(무대 적응 훈련) 대학생이 되어서는 맹인들을 위한 봉사를 하며, 눈에 보이듯 상세하게 설명하는 법을 익혔습니다.(표현력 훈련) 선교단체에서는 성경 통독 수련회에서 5박6일 동안 성경 통독을 할 수 있도록 인간통독사가 되어 빠르게 소리내어 읽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 통독을 10회 넘게 했습니다. (최근에는 성경 통독 유튜브도 열게 되었습니다. 발음 훈련)
당시에는 그저 맡겨진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저를 '훈련'시키고 계셨습니다.
혼자 계시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20대 중반의 저는 미국 유학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하여 아버지를 돌봐야 했습니다. 아내도 친정에 머물며, 매일 저와 함께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아버지를 간병했습니다. 절망과 고단함 속에서 병원 TV를 보는데, KBS 아나운서 모집 공고가 나왔습니다. 저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아내가 "당신이 원하던 일"이 아니냐면서 원서를 구해오는 등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아내의 권유에 힘입어, 저는 5차에 걸친 힘든 시험을 통과하고 기적적으로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이 모리아 산의 고비를 겪은 후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순종의 결과가 믿음이구나. 하나님은 어떤 고비도 나와 함께하시며, 반드시 극복하게 하시는 분이시구나."
호렙 산: 부르심을 받는 산
다음으로 오를 산은 '호렙 산'입니다. 이 산의 안내자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출생의 비밀을 안고 바로의 궁에서 왕자로 40년을 자랐습니다. 그러나 혈기왕성했던 40세에 동족을 괴롭히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칩니다. 그곳에서 40년. 아내도 얻고 자녀도 낳았습니다. 왕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80세의 늙은 목동이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꿈과 야망이 사라졌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했을 바로 그 순간,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6년간의 긴 투병 끝에 소천하셨습니다.(제 나이 33세였습니다.)
2004년 2월, 저는 3.1절 독도 특별 생방송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도의 4계를 촬영하다가 동도산에서 굴러떨어져 다쳤는데, 귀팉 턱뼈 골절상을 입어 이빨 하나하나를 철사로 엮어 입에 깁스를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방송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금니를 꽉 물고 말하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드셨습니다. 나중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부르심을 받았듯, 저도 가장 큰 절망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감람 산: 섭리를 깨닫는 산
다음 산은 '감람 산'입니다. 안내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가장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울며 이 감람 산으로 피신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고 비참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고통의 시간을 통해 다윗은 더욱 정결해졌고,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어려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제가 캐나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저는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습니다. 5년간 행복하게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6시 내 고향'으로 가라는 발령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좌천처럼 느껴졌지만, 저는 순종했고 그곳에서 또 5년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다시 '아침마당'을 맡으라는 발령이 났습니다. 제 나이 52세였습니다. 방송계 관례로는 맡던 프로그램도 내려놓아야 할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부터 7년 2개월을 더 아침마당을 섬기게 하셨고, 영광스럽게 사직하게 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다윗이 감람 산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배운 것처럼, 여러분도 인생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원합니다.
느보 산: 위로를 얻는 산
다음 산은 '느보 산'입니다. 안내자는 다시 모세입니다. 다시 40년이 흐른 후입니다.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은 모세를 홀로 느보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그토록 원했던 가나안 땅을 눈으로 보여주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홀로 치하를 해주십니다. "모세야, 수고했다. 네가 참 잘했다."
선한 사역을 하다 보면, 혹은 인생을 살다 보면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 마음을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 잘하고 있구나.'
제가 아침마당을 떠날 때, 수많은 시청자분들께서 "내 아침을 지켜줘서 고맙다", "당신 덕분에 위로를 받았다"는 아쉬움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씀들이 저에게는 마치 느보 산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큰 위로와 감사가 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 하나님 사랑을 배우는 산
마지막 산은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곳입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지만, 그 잔은 치워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목민과 함께 지낸 적이 있는데, 그 가족은 400마리나 되는 양들의 이름을 각각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자가 애써 양의 뿔을 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그 이유는 양의 뿔이 너무 자라면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을 살리기 위해, 양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뿔을 잘라내는 것이 목자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삶에 허락되는 고난도 어쩌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였을까요? 나무, 망치, 못... 어린 시절부터 그것들을 만지셨던 예수님은, 어쩌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마지막이 될 '나무 십자가'를 준비하셨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그 십자가 사명을 잊지 않도록, 목수라는 직업을 주셨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의 산은 어디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이제 그 무거운 인생의 가방, 그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모리아 산에서 순종을 배웠고, 호렙 산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감람 산에서 섭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를 향한 목자의 그 뜨거운 마음을 배웠습니다.
가끔은 과거를 기억하며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미래를 기대하며 소망하십시오. 그리고 바로 지금, 현재를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때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느 산에 오르고 계십니까? 혹시 모리아 산의 절망 앞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감람 산의 배신감에 눈물 흘리고 있습니까?
어느 산이든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저의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남은 인생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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