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강사: 카일 윌슨 (Kyle Wilson) 선교사 (입양 전 한국명 : 김승석)
- HOPE Yucatán Educación Integral A.C. 대표
- 멕시코 유카탄 사칼룸 몬테 시나이 교회 담임목사
- 듀크대학교(M.Div)
요약
카엘 윌슨 선교사는 멕시코 유카탄 사칼룸 몬테 시나이 교회 담임 목사로 사역하고 있음.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의 이혼 후 미국으로 입양되어 미국에서 성장함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일곱 명을 입양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물질적, 정서적 어려움을 겪음
15세에 가출하여 거리에서 생활하기도 함
상처와 정체성 탐색
고교 졸업 후 미 해병대에 입대한 후 미국 보안실의 도움으로 한국에 있는 친부를 찾음
아버지와의 만남은 기대와 달리 실망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자살을 시도함
삶의 의미를 잃고 소망 없이 살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함
결혼 후에도 삶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과 변화
"니가 변하면 된다"라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게 됨
아내의 기도 그리고 외할머니의 28년 기도가 결국 그의 삶을 변화시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 세례를 받은 후 삶의 우선순위가 변화함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전환됨
멕시코 선교 사역
2009년부터 멕시코 작은 마을(400명 정도 사는 샌앤토니아 소치리)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함
선교 초기에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음 (한 달에 50불로 생활)
선교지 마을에서는 12-14세 소녀들이 일찍 임신하고 교육 기회가 없는 상황이었음
17년간의 사역을 통해 공동체 변화를 이끌어냄
아이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
현재는 마을의 80%가 대학교를 다니며, 10대 임신률도 크게 감소함
용서와 화해
8년 전, 생부를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함
용서하려는 마음으로 갔으나 상처로 인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였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었음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1년 후 아버지가 신앙을 갖게 됨
주요 메시지와 교훈
상처는 저주가 아니라 사명의 도구가 될 수 있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셨으며,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임
진정한 사랑은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됨
사랑은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 것
적용 및 결단
- 어떤 상처와 시련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치유와 변화를 구할 것
-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자녀로 확립할 것
-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
- 주변의 상처받은 이들에게 아버지/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베풀 것
- 세계 선교에 동참할 것 (일본, 중국, 이스라엘, 아프리카, 멕시코 등)
*다음 접은글은 선교사님 간증을 가급적 그대로, 어법에 맞게 윤문 해서스크립트로 정리한 것입니다. 원하시면 바로 아래 '더보기'를 누르세요.
1. 정체성의 혼란, "나는 왜"라는 질문
안녕하십니까, 멕시코 유카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역하고 있는 카일 윌슨 선교사입니다.
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저는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양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20대부터 한국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고, 40대부터는 멕시코에서 사역하며 이제는 영어나 한국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편해졌습니다. 때로는 세 가지 언어로 꿈을 꾸며 저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30년 전,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미 해병대원 신분으로 한국 땅을 밟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로 이 자리에 다시 섰습니다.
사실 멕시코의 작은 촌마을에서 사역하던 저에게 다니엘 기도회 초청이 왔을 때, 저는 이 집회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크고 귀한 자리인 줄 알았다면 아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이렇게 숨겨두셨다가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이 부족하고 작은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그린즈버러 제일장로교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제 삶을 지배한 질문은 단 하나였습니다. "하나님, 왜입니까?" "왜 제 삶은 이렇게 저주받았습니까? 왜 저는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입니까?" 이 질문은 제 삶을 따라다니며 저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2. 버림받은 자의 아픔
저는 1968년생입니다. 저의 친아버지는 서울대, 친어머니는 이대 출신이셨습니다. 외할머니 역시 평양고등학교를 나오시고 간호협회 총무로 일하실 만큼, 소위 엘리트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집안의 아이가 미국으로 입양되었을까요? 제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은 이혼하셨습니다. 당시 한국의 체면 문화 속에서, 이혼 가정의 아이는 집안에 존재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류상 '고아'가 되어 미국으로 보내졌습니다.
제가 입양된 곳은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교사 부부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포함해 총 일곱 명의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일곱 명의 아이들은 12개의 핫도그를 나눠 먹어야 했습니다. 저는 해병대에 입대하기도 전에, 남은 세 개의 핫도그를 차지하기 위해 누구보다 빨리 먹는 훈련을 매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양어머니는 갱년기를 심하게 겪으셨고, 저희는 감정적인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맞지 않기 위해,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제 존재를 스스로 작게 만드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러던 열다섯 살, 양어머니의 차를 제대로 닦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한 매질을 당한 끝에, 저는 그날로 짐을 싸서 집을 나왔습니다. 공원에서 잠을 자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심지어는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주워 먹기도 했습니다. '나는 쓸모없다'는 절망감이 제 온몸을 지배했습니다.
3. 절망의 끝에서 만난 절망
고모님의 도움으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미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오랫동안 백인인 줄 알고 살았던 저는,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집을 나온 뒤, 마음속의 거대한 공허함을 채울 무언가가 절실했습니다.
저는 군대의 정보력을 이용해 한국의 친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대우증권의 부장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저는 마치 영화 '애니'처럼, 저를 모르고 버렸을 부모님과 재회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디즈니 영화 같은 결말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마음이 텅 비어버린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서로를 채워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버지는 제 앞에서 술에 취해 술집 여성과 함께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엄청난 충격과 절망감 속에서, 저는 미국으로 돌아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술과 함께 180개의 알약을 삼켰습니다. 하지만 3일 만에 친구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을 만나게 하시려는 놀라운 목적을 가지고 저를 살려두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살아갈 이유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저는 매일 술을 마시고 폭력배들에게 시비를 걸며, 차라리 싸우다 맞아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4. "네가 변해야 한다"
그렇게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중, 교회를 다니던 한 분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당시 제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던 아내와 결혼하면 저도 '사장님'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는 얕은 생각이었습니다.
상처로 가득했던 저는 아내의 사랑을 끊임없이 시험했습니다. '내가 최고로 못되게 굴 때도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해병대에서 배운 거친 욕설을 쏟아내며 일부러 아내의 속을 썩였습니다.
결국 저희 부부는 9일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도 나를 떠나는구나.' 저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하와이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며 도망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표를 결제하기 직전,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의 기도가 쌓여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 왜 제 삶은 이렇습니까? 한 번만..." 그때, 제 마음에 분명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변해야 한다."
그동안 저는 모든 불행이 남의 탓, 환경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즉시 장모님 댁으로 달려가 아내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놀랍게도, 아내는 제가 도망칠 궁리를 하던 그 9일 내내 저를 위해 금식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회개는 아내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저를 입양 보낸 외할머니께서도 "우리 승석이(제 한국 이름), 요셉처럼 되게 해 달라"라고 매일 두 시간씩 저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Keep on praying. 기도를 계속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한 영혼을, 한 가정을, 그리고 이 나라를 바꿀 것입니다.
5. 상처가 사명이 되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의 세례를 받자, 제 안의 사랑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제1순위였던 아내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고백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제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회의 길로 부르셨습니다. 처음에는 저와 같이 경계에 서 있는 한인 2세들을 위한 'FOB(Fresh Off the Boat)' 사역의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한인 교회는 저를 받아주지 않았고, 하나님은 저를 멕시코의 가장 작고 가난한 시골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은 400명의 주민이 사는, 고등학교조차 없는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아이들은 12살, 13살이면 소망 없이 동거를 시작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를. 저의 그 아픈 상처가, 버림받고 굶주렸던 제 경험이,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었습니다. 세상이 '저주'라 불렀던 제 과거가, 하나님 안에서 '사명'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저를 파송했던 교회가 분열되었고, 선교비가 끊겨 한 달에 50불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여섯 살 아들의 밥조차 먹이기 힘든 상황에서 저는 또다시 "하나님, 왜입니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다시 훈련시키셨습니다. 저는 40도가 넘는 날씨에 볶음밥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10불을 벌어, 제 아들과 마을 아이들을 함께 먹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는 것을.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체성'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나는 절대로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내가 너희의 아빠가 되어 주겠다."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제가, 이제 그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도 저는 마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년 반 동안 400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식구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10대 아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6. 아들의 정체성으로 얻은 자유
예수 안에서 많은 상처가 회복되었지만,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친아버지에 대한 '용서'였습니다. 저는 사역자로서 Integrity, 즉 '진실성' 혹은 '온전함'을 원했습니다. 8년 전, 저는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수백 번 연습했던 "아버지, 용서합니다"라는 말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 속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군데 네 아버지를 용서하느냐?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네 아버지다. 너의 정체성은 '아들'이다. 너는 아들답게 살아야 한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의 정체성은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용서 대신 사과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50년 동안 제가 아들로 살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는 그저 "그래. 오케이."라고 덤덤히 답하셨습니다. 그러나 1년 뒤, 평생 불교 신자이셨던 아버지께서 부활절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은 다른 사람이 변할 때가 아니라, '내가' 변할 때 일어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자녀다운 정체성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가정에서 버림받았던 저는,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수많은 멕시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제 딸을 입양한 진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떤 시련과 눈물이 있습니까? 그 모든 상처가 오늘 십자가 앞에서 치유되고, 여러분을 살리는 능력, 이웃을 살리는 사명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조건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이 밟는 그 땅이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멕시코 유카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역하고 있는 카일 윌슨 선교사입니다. 주성하 목사님께 강사 초청을 받았을 때, 사실 저는 이렇게 큰 집회인 줄 모르고 덜컥 수락했습니다.
제 외모를 보시면 여러분은 조금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름은 카일 윌슨입니다. 어려서 미국으로 입양되었기 때문입니다. 20대부터 뒤늦게 한국어를 배웠고, 40대부터는 멕시코에서 선교를 해서 이제는 솔직히 영어나 한국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편합니다. (한국어가 서툴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제가 목사로 이 자리에 서 있지만, 30년 전 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미 해병대원으로 이곳 한국 땅을 밟았었습니다.
오늘 저는 제 삶에 역사하신, 그리고 저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간증하려 합니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아멘. 이 말씀은 요셉의 고백이지만, 바로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저를 아프게 했고, 저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1. "나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인가"
저는 그린즈버러(미국 Noth Carolina 주 Greensboro 시) 제일장로교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제 평생 이 질문을 안고 살았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인가?"
저는 1968년생입니다. 제 친아버지는 서울대 출신, 친어머니는 이대 출신이셨습니다. 외할머니는 평양고등학교를 나오셨죠. 소위 말하는 엘리트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결국 6살 때는 서류상 고아가 되어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제가 입양된 곳은 롱아일랜드(New York 주의 남동쪽 해안에 있는 섬)의 한 교사 부부의 가정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저를 포함해 총 일곱 명의 입양아가 있었습니다.(백인 3명, 한국계 4명) 미국이었지만 부유한 가정이 아니어서 늘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양부모님은 본래 선한 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양어머니는 자녀를 낳지 못하신 채 갱년기를 힘겹게 겪으셨습니다.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어머니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기복을 보이셨습니다. 평소에는 다정하시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여 저희에게 폭언과 학대를 가하셨습니다. 80년대 뉴욕에서는 여성이 이러한 문제를 공공연히 이야기할 경우,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여 전기 충격 치료까지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실 수밖에 없었고, 저희 역시 그 공포 속에서 당하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피해 이른 새벽에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시며, 사실상 집에는 부재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학대받는 아이들은 공포심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외부에 알리지 못합니다. 저희는 그저 '보이지 않는 아이들'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저는 스스로 백인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심지어 학교의 다른 동양인 친구를 '칭크(Chink)'라 부르며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13살, 댄스파티에서 저를 제외한 모든 친구가 파트너를 찾았을 때, 저는 거울 속에 비친 낯선 동양인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 정체성을 깨닫고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예민한 시기에 어머니의 학대는 극에 달했습니다. 저는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집에 돌아오면 계단을 오르는 어머니의 발소리에 숨죽이며 제 방에 숨어 지냈습니다.
15살이 되던 해, 저는 양어머니의 차를 닦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한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 다행히 당시에는 친구 집이나 선생님 댁에서 신세를 질 수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습니다. 때로는 공원에서 노숙하며, 쓰레기통을 뒤져 굶주림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제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나는 쓸모없다. 나는 버려졌다."
그러던 중, 저의 소식을 들은 친고모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한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시던 고모님은 저의 양부모님으로부터 법적 보호자 자격을 넘겨받아 저를 버펄로라는 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버펄로는 백인이 주류인 곳이어서 나는 동양인으로서 많은 차별을 친구들로부터 받았고, 저는 더 거친 생활을 하며 퇴학을 당하기도 하여 문제아로 낙인찍혀 제 자존감은 완전히 바닥을 쳤습니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도망치듯 미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해병대 복무 중, 저는 저를 버린 친부모님을 찾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고모님은 아버님과 교류가 끊긴 상태였지만, 저는 미군의 정보력을 빌어 결국 연락처를 알아내어 한국에서 훈련을 받던 중 아버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대우증권 부장으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저는 영화 '애니'의 주인공처럼, 저를 잃어버리고 후회 속에 살고 있을 아버지를 상상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저의 뿌리를 찾고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한국 문화 속의 아버지는 제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술집 여성들과 어울리는 데 더 익숙해 보였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저는 부대로 복귀하여 수면제 180알을 삼키고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정신병원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후 어머님도 찾았지만, 어머님 역시 깊은 상처와 후회 속에서 알코올에 의지해 살고 계셨습니다.)
저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하나님은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그분의 계획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2. "네가 변해야 한다"
자살에 실패한 후, 저는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숨은 쉬고 있지만, 영혼은 죽었다고 여기며 하루라도 빨리 이 생을 마감하기만을 바랐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술에 취해 싸움을 걸며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거짓말처럼 들리시겠지만, 당시 저는 죽고 싶은 마음에 총알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릴 폭탄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살아가던 중, 한 분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는 말에, 저는 '사장님 소리나 한번 듣고 죽자'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아내를 만나러 갔습니다.
사실 저는 한인 교회와 사람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교회에 가면 사람들은 제 이름 Wilson 때문인지 "아버지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입양되었다고 밝히면, 그들은 저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장모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장모님은 제 과거를 아시고도 3일간 금식 작정 기도를 하신 후,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받아주라 하셨다"며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저희는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습니다.
저는 결혼식 당일에도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시며 결혼을 망설였습니다. 결국 결혼식에 30분이나 늦게 나타났습니다. 신랑이 30분 동안 나타나지 않았을 때, 아내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저는 그런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큰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뉴욕에 살던 제가 아내와 결혼해 노스 캐롤라이나의 그린즈버러라는 작은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종종 그런 못난 짓을 하듯이, 아내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못되게 굴었습니다. '당신도 나를 버릴 거지?' 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끊임없이 시험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저의 방탕한 생활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시골이라 나쁜 짓을 할 곳도 마땅치 않아, 저는 교회에 가서도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집사님들을 꼬드겨 술을 마셨습니다. 16살짜리 학생에게 맥주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 집안의 물건을 부수며 포항의 해병대에서 배운 온갖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장모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울고 계셨습니다. 장모님은 "태어나서 인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처음 듣는다"며 다시는 저희 집에 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내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습니다. 결혼 1년 만에 저희는 9일간 헤어졌습니다. '아, 결국 이 사람도 나를 떠나는구나.' 저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하와이행 비행기 표를 끊으려 했습니다. 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제 버튼을 누르기 직전, 아내의 기도와 교인들의 사랑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계신다면 왜 제 인생은 이렇습니까?"
그때 제 마음에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변해야 한다."
저는 그 길로 컴퓨터를 끄고 밤 12시에 장모님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문을 두드렸을 때, 아내는 9일간의 금식 기도를 막 마친 참이었습니다. 저는 장모님과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제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의 회개는, 바로 제 아내의 기도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 삶의 변화가 시작된 첫걸음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또 있습니다. 저를 입양 보낸 후, 저의 외할머니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2시간씩 저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Keep on praying!
3. 상처가 사명이 되다
예수님을 알고 나니, 저는 아내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삶을 아내가 아닌, 예수님께 드리기로 결단하고 목회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처음에는 저와 같은 한인 2세들을 위한 사역에 사명을 받았습니다. FOB Church. 'FOB'는 "Fresh Off the Boat"의 약자입니다. '방금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민 1세대나 2세대처럼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을 의미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입니다. 제 정체성과 같았죠.
하지만 하나님은 저를 한인 교회가 아닌, 멕시코의 가장 가난한 시골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2009년)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제가 그토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멕시코 사칼룸(유카탄 반도의 작은 도시) 지역은, 10대 아이들이 부모의 돌봄 없이 동거하며 임신하고, 공부는 아예 포기해 버린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누가 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저였습니다. 버림받고, 굶주려보고, 쓰레기를 뒤지고, 쓸모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던 제 상처가,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다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의 말씀이 제 삶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은 저를 버렸으나, 하나님은 그 상처를 선으로 바꾸사, 멕시코의 그 아이들을 돕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역은 끔찍하게 어려웠습니다. 멕시코 파송 직후, 저를 파송했던 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선교비 지원이 끊겼습니다. 한 달에 들어오는 선교비가 고작 50불, 한국 돈으로 약 6만 원이었습니다. 제 6살 된 아이를 먹이기에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버림받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장의 허가를 얻어 볶음밥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10불, 만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소득은 미미했으나 버는 돈의 절반은 굶주린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 굶기도 했습니다. 부엌도 없는 집에서 살던 저희를 불쌍히 여긴 현지인들이 자신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깨달았습니다. 물질적 지원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에는 항상 '고아의 마음(orphan's heart)'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나는 내가 사는 동안에는 절대로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내가 너희의 아빠가 되어 주겠다."
저는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습니다. 이제 제가 그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 집은 지난 16년간 단 한 주도 저희 가족만 지낸 적이 없습니다. 고아였던 제 마음을 아시기에, 저희 집은 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한 방에서 7~8명이 해먹을 치고 함께 잠을 잤습니다.
지금 저희는 위탁 센터에서 50명의 아이들, 그리고 대학생 기숙사에서 35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역은 저희를 후원하는 와싱턴 한인교회와 많은 동역자의 힘으로 가능합니다. 저는 한 번도 계산을 하며 선교한 적이 없습니다. 아빠의 마음은 돈보다 사랑으로 먼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지인 동역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여덟 살 때 만나 새벽 기도를 함께 드렸던 아이가 이제는 교장 선생님이 되어 기독교 학교를 운영하고, 다른 아이는 직장을 그만두고 저희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을 때, 많은 분들이 저를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마을 400명을 두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코로나를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10대 아이들이 아기를 낳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생도 30여 명이나 됩니다. 할렐루야!
4. 아들의 이름으로
저는 예수 안에서 상처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아직 용서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친아버지였습니다.
저는 Integrity를 원했습니다. 이 단어는 '진실성', '온전함'을 뜻합니다. 멕시코 아이들에게는 용서를 가르치면서, 정작 저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위선자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8년 전, 저는 제 가족을 모두 데리고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식사를 대접하고 제 아내와 아이들을 아버지께 인사시켰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연습했던 그 말을 하려 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네 아버지다. 너의 정체성은 '내 아들'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처럼 살아야 한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정체성은 '버림받은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저는 아버지에게로 다시 가서, 사과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을 전혀 하시지 않았지만, 저는 아들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 아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그저 "그래... OK."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1년 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평생 불교 신자이셨던 저의 아버지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삶에서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그 상처들은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 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도 제 딸을 13세 때 입양했습니다.(그 아이는 성장하여 로펌 근무 이후 선교지에서 사감이 되었습니다.) 제 버림받음의 고리를 끊고, 사랑으로 입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장 큰 아픔이, 여러분의 가장 위대한 사명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 사랑으로 사랑이 필요한 이웃을 섬기십시오. 혹시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화해합시다.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 안에서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거룩한 선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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