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정선희 집사
- 대한민국 코미디언 겸 방송인
- 1992년 SBS 공채1기 코미디언 데뷔
- 서울 광석교회 집사
Rapport: 생각보다 큰 기도회여서 두렵지만, 내 부족한 삶을 나누고자 한다.
생각보다 판이 크다. 내가 착각한 것 같다. 이렇게 큰 기도회인줄 모르고, 작년에도 요청하셨으나 극구 사양했던 마음을 바꿔 금년에는 강사 요청을 받아드린 것이 잘못 같다. 사실 나는 연예인이고 개그우먼이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서, 그저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 은혜로 오늘 말씀을 나누려 한다.
이렇게 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만입니까?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져서 설교 시간에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커피를 타먹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렇게 대면 예배를 드림도 감사하다.
나는 모태신앙이 아니다. 아직은 나 자신을 위해 드리는 기도로도 급급한 작은 믿음이지만, 내 부족한 삶을 은혜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하나님과의 애매한 만남이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내가 처음 교회를 간 것은, 중고등학교를 미션 스쿨 다닌 것을 제외하면, 스물 세살 때였다. 개그맨이 된 지 2~3년이 되던 때였다.
우리 집은 오랜 불교 집안이었는데 어머니가 (친구의 중보기도로 인해 스스로, 또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갑자기 교회를 나가시더니 새벽기도도 다니고 방언 은사도 받으시며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시는 것이었다. 나에게도 교회를 함께 가자고 권하셨지만, 나는 나중으로 미루고 도망 다녔었다.
인간이 가장 초라해질 수 있는 곳이 방송 연예계인 것 같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쓰여지고 쓰여지지 않고가 반복되며, 대중의 박수 소리에 따라 나의 크고 작음이 변하게 된다. 그런 연예계에서 나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유명해지고 성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성공을 위한 계획들을 세우고 차곡차곡 실행해 갔다.
반면에 어머니의 신앙은 더욱 깊어져 갔다. 신경질이 많던 엄마가 늘 감사가 넘치고 찬양이 흘러 넘치는 것이었다. 교회에 나가신 후에도 아버지의 사업이 계속 어려워졌지만, 어머니는 더욱 하나님께 대한 감사만이 넘쳐 흘렀다.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셨던 아버지는 사업이 더 어려워지자 교회 나가기를 그만 두셨다.
그런데 개그맨이 되고 2~3년이 흐르고 점점 방송계 생활에 대해 지쳐가고 있던 나는 마침내 엄마의 권유를 받아들여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주일 예배보다도 오히려 새벽기도를 먼저 갔다. 밤새 술을 마시고 교회의 나무 냄새가 좋아서 새벽녁에 들렸다가 잠이 들곤 했던 교회당이었다. 그 때는 나 자신의 초라함이 너무 싫던 때였기 때문에, 내 삶에 대한 절대자 하나님의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벽 기도를 열심히 나갔지만 기도하는 분들의 방언이 너무 낯설기도 해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더욱이, 교회를 나가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나를 찾아와 만나주시고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했으나, 새벽기도를 여러 날을 나가도 전혀 그런 역사가 없었다. 원래 기독교인을 그토록 싫어하시던 엄마의 그 큰 변화를 보았기에, 나도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기대하기는 했지만, 한 달을 넘게 새벽기도를 가도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하나님을 만났다. 아니, 만나 버렸다. 그런데, 엄마 경우처럼 그렇게 분명하지 않고,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은 참 애매했다. 세상에 신앙을 확실히 갖게 되었음을 강력하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만남이었고 내 믿음도 그만큼 애매했다. 그렇지만 그 애매한 만남의 기억으로도 하나님은 내 삶을 변화시키셨다.
능력 넘치는 부자/재벌같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난 하나님은 너무나도 순박한 고백으로 내 안에 들어오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과의 그 만남을 통해 완벽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느꼈다. 여러 곳에서 초청을 받아 집회에 나가고 있지만, 사실 내 어두운 시간을 포함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 그래서 집회에 나가기 싫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내게 말씀하시며, 나를 사용하시겠다고 해서 집회에 참석하게 된다. 내가 전혀 쓸 데 없는 잉여인간인 것 같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고 하시며 만나주신 것이 너무 순수했다.
'주님 죄송해요'가 내 첫 고백이었다. '주님의 사랑을, 주님의 임재를 제가 몰랐습니다.'
그다음에는 '고맙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예수님의 나를 향하신 사랑의 고백은 위로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셨기에,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해결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겪은 일 때문에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신다. 예수님을 잘 믿다가 인생의 큰 일을 겪고, 모든 사람의 미움과 비난을 받을 때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해 주신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드렸던 그 감사가 없었으면, 나는 그 어려운 시간들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금방 변화하지 않았지만, 내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예수 믿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기쁨이 내게 찾아왔다. 그제서야 엄마의 변화와 기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술과 폭력 등 삶의 모습이 나아지지 않았고 엄마와 내가 기독교 신앙으로 뜨거워져갈수록 아버지는 더더욱 무서워져 갔고 신앙과 멀어졌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외면하며 살았다. 아버지에게 냉정하게 살았다. 연예인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철저히 베일 속에 감추고 살았지만, 아버지로 인한 그 영적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져갔다.
어느날은 아빠에 대한 미움이 극도에 달해서 아빠와 끝장을 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큰 일을 치루기 전에 아버지를 변화시켜 주지 않은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기도하며 최후의 '통지'를 하러 교회로 갔다. 기도하다 보니 뜬금없이 갑자기 집에 가서 아버지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빠를 보기가 무섭고 떨렸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집으로 갔는데, 반항심으로 불교 채널 TV를 켜고 홀로 술을 마시고 계시는 아빠의 모습에서 공포보다는 고집과 투정부리는 4살짜리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오히려 아빠가 귀엽고 안스러워보였다. 그래서 안아드리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렇게 강하시던 아버지가 외롭다며 우시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서 그동안 내가 아빠를 저울질하고 신앙이 다르다고 핍박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고 회개했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변한 것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내 반응이 바뀐 것이었다. 아버지가 예전처럼 술을 드시고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하면 내가 나서서 아버지 말씀을 들어주고, 달래주고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변화해서 믿음을 갖기까지 25년이 걸렸는데, 그 긴 시간동안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지키며 참고 사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의 영적 전쟁 기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어쩌면 아버지와의 시간 속에서 내가 훈련받고 준비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세상의 비난 속에서, 다시 주님의 사랑 고백이 나를 살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변화된 삶 속에서 '신앙적 우월감'에 빠졌던 내가 변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게 되었다. 인생의 첫번째 고난인 아버지 문제에 이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별이라는 두번째 인생의 고난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혼란의 시간들
나는 원래 결혼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 가정 예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가정을 꿈꿨다. 그래서 '선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선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예수님만 믿으면 인생도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3개월 연애하고 5개월만에 결혼을 결심하는 식으로 속전속결의 결혼 후, 10개월만에 남편이 비극적인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세상을 떠났다. (언론에서는 사채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라고 보도되었습니다.)
'왜 나는 몰랐을까? 그는 왜 내게 재정적인 어려움을 의논하지 않았을까?' '만약에.... 내가 이렇게 했으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까?' 만약에...가 나를 갉아 먹었다. 외부에서 나를 비난하자 오히려 미움으로 변했다. 그런 방법으로 세상을 버린 남편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를 비난하는 세상에 내 결백을 설명하려는 노력보다는 세상을 미워했다.
그리고 그 모든 미움이 하나님께로 향했다. '나를 사랑한다는 당신이 나를 이렇게 생매장 당하는데 보고만 있을 수 있어? 내 삶을 망가뜨려 복수할꺼야....' 하나님을 미워하다가 회개하고, 다시 미워하는... 기도의 기복(오르내림)이 여러 날을 반복했다.
그런 딸을 바라보며 엄마는 원망보다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다. 내가 자살을 준비하며 모은 약을 발견한 엄마가 그 약들을 변기에 버린 날, 변기에 빠진 약을 다시 건져내다가 욕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는데, 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눈물 범벅이 되었는데, 마음에는 잠잠함이 느껴졌다. 평화, 평화, 평화~ 그리고 숨이 고르게 골라졌을 때, 하나님의 고백이 느껴졌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처음 들은 고백이 아니었는데도 그 음성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의 계획을 의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 인생 처음으로 하나님께 여쭸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동안 내 필요를 하나님께 간구만 했지, 하나님께 여쭙거나 거룩한 의문은 전혀 없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비로소 궁금해졌다. 하나님을 알고 싶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셨다.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고 성도의 연합의 필요성을 알게 해주셨다. (교회에서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게 해주셨다. 그제서야 어머니의 기도가 들렸다. 딸을 걱정하지만 하나님께 맡기기까지 고통스러운 마음이 이해되었다. 내 가족과 친구의 사랑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제서야 다른 분들이 (중보) 기도해주시겠다고 하는 마음이 들렸다.
여전히 압도적으로 악플이 많았지만 그것들을 외면할 수 있었고, 내게 사랑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연들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라디오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에서 ‘저는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정선희씨 팬이라 당신 위해 기도했습니다’라는 글을 보고 감동이 밀려왔고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살아있는 자체가 감사했다. 매일 음식을 먹고 물·공기 마시는 것까지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들이 감사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회복, 다시 방송을 시작하다
감사하게 되면서, 모임에 나가서 자기 삶을 고백하고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어느날은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을 읽고 나누다가 '나는 내 상처가 우상이 된 것 같아요.'라고 회개하며 울었다. 내 고난이 너무 큰 것 자체가 교만이 되어 다른 사람의 상처에 공감하지 못하게 했었는데, 다시 하나님 사랑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은 사람이 너무 좋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특히 인생의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더욱 사랑이 많아졌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신 회복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외롭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했다. 하나님 없는 성공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실패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방송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의 삶에 가사한다. '이게 어디야....' 매일 아침 햇살을 느끼며 감사한다. 연예인으로서의 화려한 성공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평화롭고 차오르며 찬양하며 살고 싶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 가고 싶다
오늘 나를 여기에 세우신 하나님의 여러분을 향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기 이 여리고 상처투성이인 여인의 모습이 네 모습이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와 같이 가고 싶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것 같다. 여러분 모두, 매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한다.
(어느 기사에서....
수면제와 알코올이 없으면 살지 못했던 내가 대중들 앞에 당당하게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따뜻한 사랑 때문이었다. 큰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부정했지만, 시간을 지나서 돌아보니 혼자라고 생각했던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다. 고난 가운데 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한다.
나처럼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우리를 포기치 않으시는 한결 같은 하나님 사랑이 우리 곁에 있어요. 지금 겪는 어려움, 슬픔들이 우리 인생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고, 나머지 긴 시간들은 모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안에서 살아왔음을 깨달아야 해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은호 목사님 정리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무너지고 실패하고 좌절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 나와 관계가 맺어진 것이다.
관계는 반드시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사랑을 고백해야 한다.
중보기도의 위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의 중보기도, 사랑하는 공동체의 중보기도로 인해 다시 일어서지 않았는가?
추가적인 내용 - 2022년 11월 19일은 세계 자살 유족의 날입니다. https://governance.tistory.com/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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