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마리아 여인이 언제나처럼 빈 항아리를 들고 야곱의 우물가로 왔다. 항상 그랬듯이 그녀는 물을 길어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그것을 머리에 이고 그녀가 사는 마을인 수가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항아리가 비면 다시 돌아와 물을 긷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엔 유대인의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를 만났는데, 그는 약간 색다른 제안을 했다. 그녀에게 다시는 목 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의 생수는 그녀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영생을 향한 우물과 같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가 그 여인과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빈 예배 항아리를 들고 교회에 가서 다음 한 주를 살기 위해 필요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예배의 경험을 기대하며 교회에 온다. 어떤 경우엔 그러한 이유로 교회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있어서 메마르고 목마른 영혼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음악과 환경을 제공하는 교회를 의지한다.
그러나 이것 중 어느 것도 필요치 않을 때 이러한 무익한 관례를 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은, 영생을 향해 솟아오르는 영원한 샘물이 있다. 우리는 믿었을 때 믿음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것으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언제 원하든지 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음악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의 예배 의식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배할 때 우리를 리드할 찬양 리더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오늘날 교회는 예배에 너무나 능해졌다. 교회 없이 예배를 드린다는 건 생각하기도 어렵다. 예배는 우리가 가는 어느 곳으로 변했다. 우리는 예배가 일어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가 일어날 수 있기 전에 특정한 요소들이 적절하게 있는 상태를 의지하게 되었다. 듣고 보니 빈 항아리를 채우기 위해 우물가로 갔던 여인과 비슷한 것 같지 않은가?
해롤드 베스트는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자이기 때문에 교회를 간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이미 예배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을 가져다 드릴 때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할 때, 놀 때, 허드렛일을 할 때, 차 안에서, 해변에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우리 마음 안의 그리스도의 임재의 샘물에서 물을 마시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오늘 당신 안의 샘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연습을 하라. 오늘 모든 일을 하는 중에 하나님께 초점을 맞춤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라. 그리고 이번 주에 교회를 갈 때, 하나님과 다른 신도들 앞에 가득 찬 영혼의 기쁨을 가지고 ‘예배자로서’ 가라. 그리고 예배가 당신에게 일어나길 기다리지 말라. 예배가 일어나도록 만들라. 당신 안에는 샘물이 있다. 그 물을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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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는 일도 줄어들 것입니다, 예배자로서의 입장이 분명하면.
주변의 떠드는 아이들에게 짜증 내지 않을 것입니다, 예배자로서의 입장이 분명하면...
죤 피셔 목사 (목적이 이끄는 삶) 메일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엔 유대인의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를 만났는데, 그는 약간 색다른 제안을 했다. 그녀에게 다시는 목 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의 생수는 그녀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영생을 향한 우물과 같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가 그 여인과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빈 예배 항아리를 들고 교회에 가서 다음 한 주를 살기 위해 필요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예배의 경험을 기대하며 교회에 온다. 어떤 경우엔 그러한 이유로 교회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있어서 메마르고 목마른 영혼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음악과 환경을 제공하는 교회를 의지한다.
그러나 이것 중 어느 것도 필요치 않을 때 이러한 무익한 관례를 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은, 영생을 향해 솟아오르는 영원한 샘물이 있다. 우리는 믿었을 때 믿음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것으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언제 원하든지 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음악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의 예배 의식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배할 때 우리를 리드할 찬양 리더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오늘날 교회는 예배에 너무나 능해졌다. 교회 없이 예배를 드린다는 건 생각하기도 어렵다. 예배는 우리가 가는 어느 곳으로 변했다. 우리는 예배가 일어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가 일어날 수 있기 전에 특정한 요소들이 적절하게 있는 상태를 의지하게 되었다. 듣고 보니 빈 항아리를 채우기 위해 우물가로 갔던 여인과 비슷한 것 같지 않은가?
해롤드 베스트는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자이기 때문에 교회를 간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이미 예배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을 가져다 드릴 때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할 때, 놀 때, 허드렛일을 할 때, 차 안에서, 해변에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우리 마음 안의 그리스도의 임재의 샘물에서 물을 마시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오늘 당신 안의 샘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연습을 하라. 오늘 모든 일을 하는 중에 하나님께 초점을 맞춤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라. 그리고 이번 주에 교회를 갈 때, 하나님과 다른 신도들 앞에 가득 찬 영혼의 기쁨을 가지고 ‘예배자로서’ 가라. 그리고 예배가 당신에게 일어나길 기다리지 말라. 예배가 일어나도록 만들라. 당신 안에는 샘물이 있다. 그 물을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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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는 일도 줄어들 것입니다, 예배자로서의 입장이 분명하면.
주변의 떠드는 아이들에게 짜증 내지 않을 것입니다, 예배자로서의 입장이 분명하면...
죤 피셔 목사 (목적이 이끄는 삶) 메일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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