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광의 아침, 하늘 문이 활짝 열렸듯
성경 본문 : 눅 24:25~35, 설교자 : 김운용 교수
1. 지난 고난 주간 동안에 가까운 지인의 장례를 집례 했다.
* 고인 자신의 부탁으로 인한 것이었다.
* 나도 그분의 임종을 지켰다. 그는 마지막 생명줄을 붙잡고 버티었으나 부인의 위로와 소망의 권면 후에 평안히 소천했다.
* 그분은 성공한 사업가였으나, ‘조촐한’ 장례에 대한 상세한 유언까지 남겼다.
* 그런데, 삶에서의 모든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모든 것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다.
* 죽음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며 끝이다.
2.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모든 것의 마지막인 듯 절망적이고 어두운 것이었다.
* 눅 24:13~14 오늘 본문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 종말처럼 보였다.
* 언제? : 그날에 (바로 그날에, that same day)...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에
* 어디에서? :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곳 예루살렘,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약 11킬로미터 (25리, 60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
* 무엇을? : 이 모든 된 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사건
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절망 속에 있던 그들에게 다가가셨다.
* 눅 24:15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예수께서 친히 가까이 다가오셔서 그들과 동행하시나)
*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오셔서 그들이 나누던 슬픔의 이야기를 다 들으셨다는 것이다.
* 4월의 첫날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임보 시인의 ‘사월’이라는 시는 부활의 예수님을 노래하는 듯하다.
도대체 이 환한 날에
누가 오시는 걸까
진달래가 저리도
고운 치장을 하고
개나리가 저리도
노란 종을 울려대고
벚나무가 저리도 높이
축포를 터뜨리고
목련이 저리도 환하게
등불을 받쳐 들고 섰다니
어느 신랑이 오시기에
저리도 야단들일까?
* Forever, we sing ‘Hallelujah’ ‘찬양 할렐루야’ https://youtu.be/b_TxobA6EgM 라는 찬양
저 해와 달과 별
모두 빛을 잃고
세상의 구원자
죽으셨네
십자가에 달려
보혈 흘리셨네
모든 저주
그가 지셨네
하늘도 외면한
마지막 숨소리
어둠 속에
주가 누이셨네
무덤 속의 전투
죽음과 싸웠네
어둠의 권세는
무너졌네
온 땅 흔들리고
돌문이 열렸네
이길 수 없는
완전한 사랑
사망아 어디 있느냐
부활하신 주님
사망 권세 이겼네
영원히 영광 받으실
영원히 높임 받으실
영원히 승리하실
주 사셨네
내 주 사셨네
찬양 할렐루야
찬양 할렐루야
* 그 지인의 장례식을 집례 하면서, 입관 전에 고인의 얼굴을 완전히 염하지 말도록 부탁해두었다.
* 입관 전,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 보는 순간에 가족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 이것이 끝입니다. 이제 고인에게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십시오,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
* 그러나, 예수님을 내 구주로 삼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과 또한 우리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 천국에서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십시오.
* 우리 삶에서도 마치 종착역 같은 절망의 순간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결단코 끝이 아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있기만 한다면....
* (고전 15:17,19)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4.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그 길에서, 두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으나
‘그들의 눈이 가려워졌기에’,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했던 그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셨으나,
*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각, 자기 신념과 다른 경우에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 그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 리빙스톤 이야기 : 불루마 원주민 종족의 공격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지킨 이야기
* 1856년,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은 그의 16년 동안의 아프리카 선교 활동 가운데 가장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다. 악명 높은 불루마(Buluma) 부족이 야영하기 위해 캠프를 치고 있을 때 포위하고 들어 왔다.
저녁 식사도 못하고 선교단의 모든 멤버들은 공포 가운데서 떨고 있었다. 아주 잔인한 부족으로 알려진 저들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리빙스턴은 그의 텐트로 가서 성경을 폈다. 그리고 그가 선교를 위해 영국을 떠나오기 전 받았던 말씀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말씀을 짚으며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날 그의 일기 가운데 이렇게 쓰고 있다.
“ 1856년 1월 14일, 나는 마음이 아주 안타깝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원주민들을 볼 때 이상한 비통함을 느낀다. 우리는 저들에게 생명을 전해 주기 위해서 왔는데 저들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들어오고 있다. 모든 일행들은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다. 만약 저 원주민들이 이 밤 공격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저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절대적으로 우리 주님의 약속을 믿는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가장 위대하신 신사의 약속이 다. 내가 영국을 떠나올 때 내게 주신 이 약속의 말씀을 나는 일점일획도 의심하지 않고 확실히 믿는다. 나의 삶의 가장 어려운 이 문제 상황 가운데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나와 함께하실 줄을 확실히 믿는다. 우리는 가장 위대하신 신사의 약속을 믿으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일 강을 건널 것이다.”
그다음 날 아침, 리빙스턴 일행은 강을 건널 준비를 하였다. 그 원주민들의 잔인함을 잘 아는 짐꾼들이 먼저 건너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리빙스턴은 그들을 먼저 건너가게 했다. 그리고 선교단원들을 건너가게 했다. 그 불루마 부족들은 화살을 겨누고, 창과 칼을 뽑아 들고 강을 건너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모든 일행들이 카누를 저어 저만큼 갔을 때 리빙스턴은 그 부족들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그들을 축복했다. 그리고 천천히 카누로 걸어갔다. 그 부족들은 여전히 칼과 창과 화살을 겨누고 있었으나, 리빙스턴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믿음이 이긴 것이다.
*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나,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은 믿음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있었다.
* 그러나, 예수님의 설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어가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엠마오에서의 식사에서는
* 떡을 가지사(take the bread)
* 축사하시고(bless the bread)
* 떼어(break the bread)
* 그들에게 주시니(give the bread)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 즉, 말씀과 성찬을 통해 그들은 회복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엠마오 예배’였다
5. 예배
* 칼 바르트는, 예배란 ‘하나님이 현존하고 계시다’ 또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소리쳐 주장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 칼 바르트는 2차 대전 중의 아우슈비츠같은 하나님이 더 이상 존재하고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현존을 강조해야 했다.
* 오륜교회 교인인 정국인 시인의 ‘그를 두고 오는 길’에서,
그를 두고 오는 길이
멀었다
그는 이미
거기에 없을 터인데
따뜻한 저녁상을 받는데
더 미안했다
그는 이제
더 맛난 것을 먹을 터인데
새날이 왔는데 아득하다
그는 늘
새날이 좋은 날일 터인데
* 정국인. 1961년생. 한국 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도카이 은행 The Tokai Bank 서울지점에서 12년간 근무했다. 평소 건강했던 남편(김동균. 중앙일보 기자 출신)은 자상한 아빠이자 신망받는 기자였다. 아이들 입시도 마치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느닷없이 남편의 발병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간암 말기였다. 이후 1년을 열흘 못 채운 기간 동안 남편을 간병하고 먼저 떠나보냈다. 과부 된 자의 시린 그리움과 절망의 진창을 포복으로 지나, 지금은 엄마의 이름으로 매일을 달리고 있다.
* 오늘 엠마오 도상에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우리들의 삶은 아프고 힘들고 어렵다.
*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의 삶은 뒤집어지고 변화되었다. 우리에게도 그렇다.
* 톰 라이트 (Tom Wright)는 복음의 전복성을 강조한다. 즉, 복음을 통해 기존 판이 뒤집히는 것을 의미한다.
* 부활 사건은 모든 것을 전복시킨다.
6. 끝으로, 부활 신앙은 단순히 예배의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들 각자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이어지게 되며, 우리 삶 속에서 적용되고 우리 삶을 뒤집어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아멘.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0) | 2018.08.26 |
---|---|
하나님을 느낄 때 (0) | 2018.05.29 |
Spring in the Bible (0) | 2018.05.16 |
333의 부르짖는 기도 (0) | 2018.02.12 |
거룩하신 하나님 by Henry Smith (0) | 2018.01.05 |
TOBIAS (0) | 2018.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