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알기 원합니다.'
이런 구절은 기도문이나 찬송가 가사에만 있을 뿐 성경 말씀에는 없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렇게 열거된 알고 싶은 내용 중의 하나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런데 오늘 아침 QT 성경 말씀의 영문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같은 구절입니다.
"I want to know Christ" 그리스도를 알고 싶습니다.
그다음에 다른 알고 싶은 내용들이 나옵니다.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sharing in his sufferings'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과 예수님의 고난을 나누는 친교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함)를 알고 싶습니다.
(목적이든 결과이든) 분사구로서,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예수님처럼 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And 이후에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만, 한마디로 하자면 '예수님을 알기 원합니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 번역 성경'이 훨씬 원래의 의미를 쉽고 분명하게 깨닫게 해 줍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절대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할 유일한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다'의 헬라어 기본형은 'gno'이며 이는 히브리어 '야다'입니다. 히브리어 '야다'처럼 성적 관계를 통한 육체적인 앎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는 것 또는 경험된 것이 경험한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관념적, 지적 앎이 아니라 '경험적'인 앎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원합니다. 그 부활의 능력을 알기 원합니다. 그 죽으심에 참여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원합니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참 좋은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을 '롤 모델 role model'로 삼습니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라고 한 것을 신앙적 자신감으로 해석하는 설교를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해석은 그렇게 특정 구절에 얽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멸망의 길을 따르는 세속적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본받으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 사람들이 바울과 선배 성도들을 본받은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녀들과 다른 후배 성도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세속적인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좋은 예시가 되는 삶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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