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교회' 개척 이야기
제 자신의 경험담을 말씀드리는 것을 오해 없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35년 전에 저희 집 2층에서 함께 성경 공부하던 몇 가정하고 정말 제 계획에 전혀 없던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교회가 생겨나는 것이니까 교회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많은 생각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고, 주님께서 반석과도 같은 그 베드로의 고백 위에 "너희들의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를 세우리라" 천명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만이 주인 되시는 교회를 세우자'
제가 그 이름을 주장하기까지, 제가 어릴 때 주님이 주인인 교회가 아니라, 이미 은퇴한 원로 목사가 주인인 교회, 돈 많은 특정 교인이 주인인 교회를 너무너무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이 교회에서는 주인 행세하지 말자, 못하게 하자, 주님만 주인이심을 우리 삶으로 고백하자, 그런 의미로서 주님의 교회라고 지었습니다.
'주님의 교회'에서의 소유와 운영 실천 방안
이름을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그 교회에 소속된 모든 교인들의 신앙 고백인 동시에 선언문이기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사람의 교회로 전락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제 임기를 10년으로 제가 정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되던 날 정확하게 교회를 떠났습니다. 제가 만약에 그런 규정을 만들지 않으면 제가 70살까지 개척 목사로서 그 교회를 하면 나중에 죽을 때까지 원로 목사하고, 그러면 그 교회는 이재철의 교회가 되는 겁니다.
장로님들도 6년 시무하고 1년 안식년 후에 6년 추가 시무, 총 13년 후에는 장로님들 전부 다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는 원로 목사, 원로 장로를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원로라고 하는 말을 둔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주인이 될 가능성을 두는 겁니다.
개신교의 핵심 사상이 만인 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베드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계급 제도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개신교회는 모두가 만인 제사장인데, 예배 시간에 기도는 목사님이 아니면 아무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에서는 세례 받은 20세 이상의 교인, 세례 받은 지 1년 이상 되는 20세 이상의 교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예배에 가나다순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러셨거든요. 주님만 알게 해야죠. 그런데 제가 신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교인석에 앉아서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에 하나가 왜 주보에 헌금자 이름을 쓰는가, 왜 성전 장식한 사람들이 무슨 헌물 했다고 이름을 쓰는가, 저거 안 쓰면 주님 모르시나, 헌금 봉투에 이름 쓰지 않는다고 주님이 모르신다면 그런 무능한 주님을 왜 믿는가, 그래서 헌금 봉투에서 모든 이름을 다 지웠습니다. 주님의 교회 교인들은 헌금도 모두 무명으로 했습니다. 나는 교인들이 얼마 헌금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 율사들이 예수님에게 가장 큰 율법이 뭐냐고 물었을 때, 첫째가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그와 같으니 그와 같다는 것은 둘째라고 해서 비중이 떨어지는 게 아니고 첫째와 똑같은 비중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 이웃 사랑이 제일 큰 계명이다. 그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인들이 헌금하는 모든 헌금의 50%는 하나님 사랑하기 위해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50%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교회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라고 말씀하실 때, 교회는 건물이 아니거든요. 우리 자신이 교회지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건물을 짓지 말자, 소유하지 말자, 우리 자신을 교회로 만드는 일에 올인하자. 그래서 정신여고 강당을 주님의 교회가 100% 돈을 내어서 지어드리고, 그 강당 일부를 빌어서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교회는 주차장이 아니라 주유소입니다.
그 당시 70년대, 80년대 교회 성장기를 거치면서 교회마다 교인들을 일주일 내내 교회에 붙들어 뒀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주님께서 "너희들 예배당의 빛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교회 가서 살면 좋은 교인인 것처럼, 일주일 내내 교인들을 교회 안에 붙들어 두면 그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을 교회에 붙들어두면 그들이 언제 나가서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삶을 삽니까? 그래서 주님의 교회는 교회는 주차장이 아니라 주유소다. 주차장은 차를 세우는 곳이지만, 주유소는 급유하는 곳입니다. 내가 목적하는 것을 가기 위해서 급유하는 데가 주유소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급유를 목적으로 해야 할 주유소에 새 차를 사서 "나는 일주일 내내 이 주유소에 주차해 두겠다" 그 사람 차를 잘못 산 거죠. 그래서 주님의 교회는 '교회는 주유소, 기름을 고개를 넘어갈 영적 주유를 받아서 세상으로 가라, 세상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마을에서 빛으로 살아라.' 그래서 주중의 교회 예배당에 오지 않도록 주중 프로그램은 최소화했습니다.
헌금과 교회 예산
주님의 교회는 예산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예산은 경제 논리입니다. 내년도에 무슨 천재지변이 일어날지, 내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는 내년도 예산을 세웁니다. 1월 달부터 그 예산 안에 따라서 지출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예산 안에 따른 헌금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없이 7월, 8월부터 헌금 설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예산안을 다 집행할 수 있거든요. 경제 논리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교회는 예산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결산은 철저하게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모든 서류와 원장을 다 감사를 하고 교인들에게 교회 원장을 공개했습니다. 제 봉급이 얼마인지 다 나옵니다. 제가 교회 헌금을 한 달에 얼마 쓰는지 다 나옵니다. 교역자가 지우개 하나를 100원 주고 산 것까지 다 나옵니다. 원장이 공개되니까 헌금이 함부로 쓰일 수 없죠. 주님의 교회니까 주님만을 위해서 쓰이게 되는 거죠.
사랑의 낭비
여러분, 사랑은 낭비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 낭비합니다. 자기 체력도 자기 인생도 물질도 다 낭비합니다. 그게 사랑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자식을 앉혀 놓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계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랑의 관계가 깨져버리는 겁니다.
교회가 하는 사랑의 행위는 낭비해야 합니다. 따지지 말아야 해요. 외부에 50% 돈을 내면 얼마나 큰 금액입니까? 필요하다고 하는 데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청하게 하셨다고 믿고 낭비하는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낭비이기 때문에 사랑의 낭비를 하기 위해서 낭비하지 말아야 될 것은 절대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주보 A4 용지 흑백 주보 한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보가 화려할 이유가 없거든요.
이 교회에 꽃이 없어서 정말 참 마음에 듭니다.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 강단에 어디 꽃 한 송이 둔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돈 들여서 꽃으로 장식합니까? 예배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식이 돼야죠.
저는 10년을 목회를 하고 주님의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교회라는 공동체적 선언, 그 주님의 교회 이름답게 교인들이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실행했던 것이 그 이후에 제네바 한인 교회 백주년 기념 교회의 토대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제가 떠난 지가 25년 되었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창립된 지는 35주년이 됩니다. 감사한 것은 제가 떠난 지가 25년이 지났는데도 현재의 주님의 교회 교인들은 35년 전에 제정한 주님의 교회라고 했던 그 공동체적 선언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만들었던 모든 사항들을 지금도 준수하고 있다는 겁니다.
주님의 교회는 원로 목사가 없습니다. 원로 장로가 없습니다. 35년 지난 지금도 흑백 A4 용지 한 장입니다. 지금도 헌금의 50%로 선교 구제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교회 이름을 주님의 교회라고 짓고 그 공동체적 선언을 지키려고 하는 이 구체적인 실천 사항이 없이 세월이 흘렀다고 합시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 목사 장로가 서로 누가 헤게모니를 가질 것인가 서로 싸운다, 각 부서마다 파벌 싸움을 한다. 그러면서도 나가서는 우리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신 주님의 교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보다 더 우스운 코미디 소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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