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손자로 태어나서 기독교인의 아들로 자라났고, 기독교인이었으며 아이들을 기독교도로 자라도록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이해는 되지만 감정과 행동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들을 자주 겪으며, 믿음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도 됩니다. 저는 그것을 '기독교인 컴플렉스'라고 부릅니다. 그러한 고민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또는 세상을 살아 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진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기독교처럼 용서를 강조하는 종교가 있을까요? 불교도 관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옵시고'라고 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하시며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얘기이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보기 드문 일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소설로 유명해진 여수의 손양원 목사님도 계셨지만, 일반적인 성도에게는 용서는 그리 쉽지 않은 덕목입니다. 물론...저도 마음으로는, 아니 뜨겁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는, 관념적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죄인을 용서할 만큼의 큰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것이 나와 관련된 일이 되고 나면, 용서해야 하는데...하는 생각만 할 뿐, 실제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기는 매우 어려워 집니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듯이, 달마대사가 얘기했다는 "마음, 마음, 마음이여, 참으로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으니." 하는 얘기가 제 얘기가 되고 맙니다.
어쩌면, 부모형제, 배우자와 자녀에게는 그 컴플렉스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 받은 상처는 효와 사랑으로 아무리 덮으려 해도 쓴뿌리가 되어 문득 떠오르게 되고, 사랑한다고 매일 고백하지만 배우자에게 받은 아주 작은 말의 상처는 결정적인 순간에 분노로 치밀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 때가 되면, 대신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 같던 사랑의 마음은 사라지고, 인연을 끊어 버리고 싶은 아주 옹졸한, 바늘 하나 꽂지 못할 마음이 되고 맙니다.
하물며, 이웃과 동포와 이 세상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은사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양보를 하지 않은 차에 대해서는, 억지로 틈을 만들어 밀고 들어가, 좁은 길에서 그 차 앞에 내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 차 운전자에게 마음껏 욕을 해대고 싶은 것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제 악한 마음입니다. 차 트렁크에 야구배트를 넣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생각만 하고 억울해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렇게 해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여러 차례 살인하느니 욕 한 번 마음껏 해버리는 것이 좋을 지도 모릅니다.
난 희생자일까요? 직원들에게 험한 얘기를 쏟아냈던 제 모습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straight-forward talking이라는 미명하에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대부분 잊었지만, 그 욕을 들었던 사람들은 잊을 수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저를 용서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정말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잊어버린 그 일들로 인해, 실제 날마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욕을 들은 분들일테니까요. 아니 바꿔 말하면, 제가 그토록 서운해서 교회를 떠나고, 회사를 옮기고...했던 그 분들은 본인들이 제게 상처를 준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텐데, 나 혼자 복수심을 키우거나 자꾸 그 일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는 것은, 나만 다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밀양이 떠오릅니다. 피해자가 겨우 용서를 하기 위해 옥에 갇힌 가해자를 찾아 갔는데, 가해자는 하나님을 믿고 죄 용서함을 받아 마음이 평안해진 것을 보고 피해자인 전도연씨가 울부짖던 모습이요. '하나님, 제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하셨나요?' 아마...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고 김근태 선생을 고문했던 이근안 경감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울지 않는 사과를 받으면서 용서한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던 김근태 선생의 얘기가 있었습니다.
용서는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는 말씀이죠.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냥 용서해야지...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노와 적개심의 정서를, 이해하고 사랑을 보이는 긍정적인 정서로 덮어야 겨우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양보를 안 한 운전자를 미워하기 보다는, 나 보다 급한 일이 있었나보다고 '이해'하든지, 내 형제가 운전하고 있다고 '사랑의 간주'를 하면,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그래도 용서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용서되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를 기억하며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풍성함을 잃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제 언어로 표현합니다.
"어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왕에게 60억원을 빚졌지만, 왕이 탕감해주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왕궁에서 나오다가 자기에게 100만원 빚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주 나쁜 친구입니다. 갚으라고 했더니, 또 뻔한 변명을 늘어 놓았습니다. 열이 뻗혀서 그 사람의 멱살을 잡아 끌어서 경찰에 넘겨 버렸습니다. 그 얘기를 왕이 듣고...."
교회에서 나오다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와 접촉사고가 있었습니다. 브레이크를 밟고 서있는 제 차를 긁고 지나갔습니다. 예배 전후 바쁜 때이기 때문에, 저도 그 분도 그냥 헤어졌지만, 속도 상하고 기분도 나빴습니다. 그래도, 받은 은혜가 크니 용서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용서 컴플렉스를 조금씩 이겨 나갑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이해는 되지만 감정과 행동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들을 자주 겪으며, 믿음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도 됩니다. 저는 그것을 '기독교인 컴플렉스'라고 부릅니다. 그러한 고민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또는 세상을 살아 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진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기독교처럼 용서를 강조하는 종교가 있을까요? 불교도 관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옵시고'라고 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하시며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얘기이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보기 드문 일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소설로 유명해진 여수의 손양원 목사님도 계셨지만, 일반적인 성도에게는 용서는 그리 쉽지 않은 덕목입니다. 물론...저도 마음으로는, 아니 뜨겁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는, 관념적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죄인을 용서할 만큼의 큰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것이 나와 관련된 일이 되고 나면, 용서해야 하는데...하는 생각만 할 뿐, 실제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기는 매우 어려워 집니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듯이, 달마대사가 얘기했다는 "마음, 마음, 마음이여, 참으로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으니." 하는 얘기가 제 얘기가 되고 맙니다.
어쩌면, 부모형제, 배우자와 자녀에게는 그 컴플렉스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 받은 상처는 효와 사랑으로 아무리 덮으려 해도 쓴뿌리가 되어 문득 떠오르게 되고, 사랑한다고 매일 고백하지만 배우자에게 받은 아주 작은 말의 상처는 결정적인 순간에 분노로 치밀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 때가 되면, 대신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 같던 사랑의 마음은 사라지고, 인연을 끊어 버리고 싶은 아주 옹졸한, 바늘 하나 꽂지 못할 마음이 되고 맙니다.
하물며, 이웃과 동포와 이 세상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은사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양보를 하지 않은 차에 대해서는, 억지로 틈을 만들어 밀고 들어가, 좁은 길에서 그 차 앞에 내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 차 운전자에게 마음껏 욕을 해대고 싶은 것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제 악한 마음입니다. 차 트렁크에 야구배트를 넣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생각만 하고 억울해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렇게 해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여러 차례 살인하느니 욕 한 번 마음껏 해버리는 것이 좋을 지도 모릅니다.
난 희생자일까요? 직원들에게 험한 얘기를 쏟아냈던 제 모습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straight-forward talking이라는 미명하에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대부분 잊었지만, 그 욕을 들었던 사람들은 잊을 수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저를 용서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정말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잊어버린 그 일들로 인해, 실제 날마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욕을 들은 분들일테니까요. 아니 바꿔 말하면, 제가 그토록 서운해서 교회를 떠나고, 회사를 옮기고...했던 그 분들은 본인들이 제게 상처를 준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텐데, 나 혼자 복수심을 키우거나 자꾸 그 일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는 것은, 나만 다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밀양이 떠오릅니다. 피해자가 겨우 용서를 하기 위해 옥에 갇힌 가해자를 찾아 갔는데, 가해자는 하나님을 믿고 죄 용서함을 받아 마음이 평안해진 것을 보고 피해자인 전도연씨가 울부짖던 모습이요. '하나님, 제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하셨나요?' 아마...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고 김근태 선생을 고문했던 이근안 경감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울지 않는 사과를 받으면서 용서한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던 김근태 선생의 얘기가 있었습니다.
용서는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는 말씀이죠.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냥 용서해야지...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노와 적개심의 정서를, 이해하고 사랑을 보이는 긍정적인 정서로 덮어야 겨우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양보를 안 한 운전자를 미워하기 보다는, 나 보다 급한 일이 있었나보다고 '이해'하든지, 내 형제가 운전하고 있다고 '사랑의 간주'를 하면,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그래도 용서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용서되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를 기억하며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풍성함을 잃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제 언어로 표현합니다.
"어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왕에게 60억원을 빚졌지만, 왕이 탕감해주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왕궁에서 나오다가 자기에게 100만원 빚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주 나쁜 친구입니다. 갚으라고 했더니, 또 뻔한 변명을 늘어 놓았습니다. 열이 뻗혀서 그 사람의 멱살을 잡아 끌어서 경찰에 넘겨 버렸습니다. 그 얘기를 왕이 듣고...."
교회에서 나오다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와 접촉사고가 있었습니다. 브레이크를 밟고 서있는 제 차를 긁고 지나갔습니다. 예배 전후 바쁜 때이기 때문에, 저도 그 분도 그냥 헤어졌지만, 속도 상하고 기분도 나빴습니다. 그래도, 받은 은혜가 크니 용서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용서 컴플렉스를 조금씩 이겨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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