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에 대한 섬세함
어머님보다 아홉살이 많으신 외숙부께서 오늘 땅에 묻히셨습니다. 다섯살 많으신 이모님은 오년 전에 소천하셨습니다. 3남매 중 막내이신 어머님의 슬픔을 함께 하고자 휴가를 얻어 이리에 다녀왔습니다.
어떤 친척들은 '이제 이모/고모님만 남았네요?'라며 어머님께 인사를 해왔습니다. 마치 차례가 되었다는 듯한 그 인사와 묘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라서...썩소만 날렸습니다. 오랜만에 본 사이만 아니면 제 나쁜 성격이 드러날 뻔 했습니다. 그냥 슬픔을 위로하거나 건강하게 장수하시기를 축복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절하지 못한 친근한 표현은 무례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3장에서는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 동안, 제 친근함의 표현으로 상처받으신 분이 있으시면 용서해주세요.
섬세함이 필요한 추운 날이었습니다. ^_^
2. 하나님에 대한 섬세함
오늘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페이스북 글을 읽다가 공감이 크게 되었습니다.
욥(Job)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성경 욥기를 직접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성경입니다. '이야기'에서는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기에 하나님이 큰 복을 내리셨다는 것이지만, 욥기 한 구절 한 구절은 때로는 하나님께 야단 맞은 욥의 친구들의 말이 더 옳은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고, 욥이 하는 얘기도 너무 독불장군스러워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오늘 유기성 목사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욥은 그동안 자신이 믿고 있었던 하나님이라는 틀 안에 갇힌 채 탄식만 하고 있었고, 욥의 친구들은 자기들이 연구하여 알고 있는 하나님을 근거로 욥에게 회개하라고 다그치기만 했습니다.
누구도 ‘지금 이 시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듣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제게 또 다른 도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소원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은 내가 원하는 바를 말씀해주시기를 기대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내 마음대로 정한 두어개의 대안 중에서 하나님이 하나 찍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정말 들으면 나는 그것을 따를 마음이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제 스스로의 '불편한 진실'을 숨길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성경을 통해 내게 얘기하신 바, 여러 가르침들을 저는 제대로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허물을 저질렀고 제대로 못고쳤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제게 힘든 길을 직접 말씀하실까봐 뒤로 뺄 때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내 필요에 따라 '규정'하지 않고, 내 삶의 목적되신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고 그 음성을 '지금 듣고' 그대로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내 의지로 되지 않고,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에 대한 섬세함을 넘어서, 하나님을 향한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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