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은, 김은호 목사님의 설교로부터 떠오른 제 생각입니다.>
경제학에는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소득분포와 관련해서 정리된 통계적법칙으로서 파레토가 유럽 여러 나라의 조사에서 얻은 경험적 법칙인데, 조셉 주란 (Jesep Moses Juran)이라는 학자가 경영학에 이를 사용하면서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하는 80 대 20 법칙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품질관리, 소득의 분포 등... 이 세상에는 80:20 원칙이 적용되는 영역이 무척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 법칙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 10명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감사하며 경배를 드린 사람은 단 1명 뿐이었습니다. 8:2보다도 더욱 심한 9:1의 비율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 성경 내용을 많이 읽었지만, 제가 그 9명에 속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삶을 돌아볼 때 제가 줄곧 속해 있던 곳은 그 9명 쪽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9:1의 비율은 예수님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껏 제 삶에도, 아니 우리 모두의 오늘날의 삶에서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이 9:1의 비율은 변하지 않고 있을까요? 김은호 목사님은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많지만 감사는 매우 적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잠깐 예화를 하나 보시죠.
[[ 하루는 하나님이 두 명의 천사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두 천사에게 큰 바구니 하나씩을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지구로 내려가서 그 바구니에 사람들의 '감사기도'를 담아오고, 너는 사람들이 내게 하는 '요구의 기도'를 담아오너라."
감사 바구니를 받은 천사는 웃고, 요구의 바구니를 받은 천사는 시무룩해졌습니다.
두 천사는 지구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금방 채워질 줄 알았던 감사의 바구니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집 저집을 찾아다녔지만, 감사의 바구니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요구의 바구니는 금방 다 채워졌습니다. 요구의 바구니를 든 천사는 금방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바구니를 가져온 천사는 지금도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10명의 문둥병자 중에서 오직 사마리아 사람 1명만 돌아와 감사했을까요?
1) 선택의 순간에 '감사'를 먼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기뻐할 가족들과의 상봉보다도, 감사를 먼저 선택했습니다.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2) 선택의 순간에 주님의 '은혜(Grace)'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감사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문둥병이 나았다는 그 '결과'만을 생각했습니다.
감사는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는 평탄한 삶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낸 후에 뜨겁게 터져 나옵니다. 닉 부이치치(사진)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팔과 다리 없이 태어난 그는 'I have No arms, no legs. But, I have No worries.'하고 감사를 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지만, 그 은혜를 우리는 자주 '까먹고' 맙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내용을 함께 보시죠.
[[ 예수님이 한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그는 거의 폐인이 된 청년이었데,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느냐?"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과거에는 절름발이었지만, 당신이 저를 일으키셨고, 걷게 하셨죠.그러나 이제와서 걸어다닌들 무엇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습니까? 그동안 직업을 구해보았으나 모두 실패였고, 지금 상황은 그저 앉아 구걸할 때보다 형편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들에게 희롱 당하고 있는 한 창녀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어찌하여 이런 생활 을 하고 있냐고 물었고,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내 새사람을 만들어 주었을 때는 무척 기뻤지만, 며칠이 지나니 행복하기는커녕 고독해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창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이웃과 싸움을 하고 있는 한 불량자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어찌하여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불량자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원래 소경이었는데 당신이 내 눈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눈을 뜨고 세상을 보았을 때는 무척 기뻤지만, 차차 세상을 보고 있노라니 온통 신경질 나는 것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경질 부리고, 화풀이하고, 치고 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우리는 오늘날 '은혜를 받았으나 감사하며 살지 못하는 우리'가 바로 그 아홉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하는 삶의 목적입니다. 감사는 경배를 의미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이유...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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