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쟤네 봐, 불쌍하지? 그러니까 공부해" (http://durl.me/7gyfd7)
TV나 신문에서 '눈길을 끄는 불쌍함'을 목격합니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비극을 부각시켜 상업적 효과를 거두는 이런 사진과 영상물에 대해 전문가들은 '빈곤의 포르노그라피'라고 지적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대상화'는 미디어도 문제이지만, 미디어를 통해서만 바라본 저개발국가 사람들에게 과도한 동정심을 가지고 그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내려다보면서 '자기 만족'하는 우리의 시선부터 거두는 게 맞습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나의 만족보다는 도움의 대상이 언젠가 자력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피해를 받지 않은 주체로 일어설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니까요..... 가 이 기사의 요약입니다.
특히 '대상화'라는 어휘가 제 눈길을 끌고 많은 다른 생각들로 이끌었습니다.
미드를 보면서 새롭게 배운 표현 중의 하나가 objectify였습니다. 포르노와 같이 성(性)을 상품화하거나 성폭력처럼 여성을 인격적 교제의 대상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일들을 objectify라고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르노뿐만 아니라 우리가 교회에서 하고 있는 여러 선교나 구제 등의 섬김 활동에 있어서도 우리가 매우 유념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대상화(objectification)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자극적인 선교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잠시 하고 감정이 고양되어 다소 얼마간의 사랑의 헌금을 하거나 정기이체를 약속하고, 스스로 만족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나를 높이 두고 은혜를 베푸는 듯한 섬김이라면 성폭력과 같은 대상화의 하나일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은 참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의 권능과 능력으로 우리에게 '보편적'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내 개인의 특별한 간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되, 내가 원하는대로 들어주시지 않고 그 분의 지혜로 판단하여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그것이 비록 내가 간구한 것과 반대인 경우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저 값싼 기도의 응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창조주의 만족을 위한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아니 내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나와 함께 계시며 함께 아파하시고 참된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이루어 나가도록 보살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원망하던 때가 없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대상화'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셨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나도 하나님을 내 욕망 달성의 도구로 삼는 '대상화'를 멈추고 진정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무엇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Objectify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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