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나눈 후, 오늘은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인생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부사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와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이 접속부사가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단번에 우리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고,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었지만, 이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보좌'라는 단어는 성경에 82회 언급되며, 요한계시록에만 35회 나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남보석으로, 다니엘 7:9에서는 불꽃으로, 요한계시록 4:3에서는 녹보석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보좌는 24명의 장로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네 생물이 가득한 곳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시편 103:19와 로마서 8:34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심판의 보좌
성경에는 은혜의 보좌 외에도 심판의 보좌가 나옵니다. 시편 9:7은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0:11의 크고 흰 보좌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상징합니다. 이 보좌 앞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은혜란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망가져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은 지적과 평가 대신 긍휼을 베풀어 우리 죄를 사해 주십니다. 질병의 고통, 배신의 아픔, 재정의 어려움, 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의 죄를 폭로해도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히 나아가라
히브리서 4:16에서 말하는 것처럼 수치스럽지 않게, 무례한 태도나 뻔뻔함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계시록 7:14과 히브리서 10:19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또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4:16은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 판단, 정죄하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두 맹인의 아픔에 공감하셨고,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공감하며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긍휼이란 단어의 뜻은, 내장이 흔들리고 뒤틀리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최선의 방법으로, 우리 영혼에 가장 유익한 것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응답은 우리의 영혼에 가장 유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은혜'로 살아야 한다.
그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에는 은혜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광야에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나니 (구원을 받고 나니)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필요함을 느꼈다.
이와 같이,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는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베드로전서 5:10은 하나님을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을 경험했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 심령에 비쳐 모든 염려가 사라집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면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내가 원하는 응답만' 주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견딤과 거절도 있다.
사도 바울. 육체의 가시. 고후 12:9상.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 거절은, 자고하여 교만하기 보다는 겸손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영혼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머물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 심령에 비치기 시작하며, 그러면 모든 염려가 사라진다.
모든 은혜에는 치유와 회복도 있고, 견딤과 거절도 있다.
넘어졌다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넘어졌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예배와 기도를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합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경험하며, 그 은혜로 매일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의 배경과 맥락
히브리서는 신약 성경의 책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인 편지입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으로서 구약의 제사 제도를 완성하셨음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는 독자들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임을 상기시킵니다.
히브리서 4장의 맥락
히브리서 4장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장에서 저자는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강조하며, 이 약속이 여전히 유효함을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과 순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4:14-16의 맥락
히브리서 4:14-16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이 구절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4-16 (새번역) 14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고백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받고 은혜를 얻어서 제때에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본문의 핵심 메시지
-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며,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십니다. 그는 모든 시험을 당하셨지만 죄가 없으셨습니다.
- 담대히 나아감: 이러한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긍휼과 은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자비를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적용
이 본문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중보와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긍휼과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힘과 위로를 주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성경에서 네 생물은 주로 요한계시록과 에스겔서에서 언급됩니다.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서 있으며, 각각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며,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
요한계시록 4:6-8에 따르면, 네 생물은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 첫 번째 생물은 사자와 같은 모습.
- 두 번째 생물은 송아지와 같은 모습.
- 세 번째 생물은 사람과 같은 얼굴.
- 네 번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은 모습.
이 생물들은 각각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날개에는 눈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라고 노래합니다.
에스겔서의 네 생물
에스겔서 1:5-10에서도 네 생물이 등장합니다. 이 생물들은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 사람의 얼굴
- 사자의 얼굴
- 소의 얼굴
- 독수리의 얼굴
이 생물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지탱하고 움직이는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나타냅니다.
상징적 의미
네 생물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사자: 용기와 권위, 왕의 상징.
- 송아지(혹은 소): 희생과 인내, 종의 상징.
- 사람: 지혜와 이해, 인간의 상징.
- 독수리: 통찰력과 영적 비상, 신속함의 상징.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창조물과 그들의 다양한 역할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께 끊임없는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반영합니다.
네 생물의 다양한 상징적 의미는 하나님의 전능함과 다차원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 생물들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상기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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