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통해 진실된 예배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이야기는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헌금을 한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성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초대교회가 처음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하나님의 처벌이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 나는 왜 아직 죽지 않았는가?
초대교회는 처음에는 흔들림 없는 부흥과 기적을 경험했지만, 은혜가 큰 곳에는 사탄의 공격도 함께 일어납니다. 사탄의 공격은 외적 핍박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되며, 그 결과 신앙 공동체에 깊은 내상을 입히게 됩니다. 특히 내적 공격을 간파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첫째, 하나됨을 깨뜨린다
초대교회는 모든 성도가 하나가 된 유토피아적인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과 34절에 따르면, 그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으며, 모든 물건을 통용하는 급진적인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완벽한 공동체에 사탄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팔아 헌금했지만, 일부를 감추고 '전부'를 헌금한 것처럼 위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동기는 바나바처럼 존경받고 싶었지만, 진정한 성령 충만함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성령 충만한 것처럼 보이도록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만듭니다. 위선은 거짓, 자기 합리화, 책임 회피, 형식화된 신앙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을 받으시지만, 위선은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위선과 싸워야 합니다.
- 행 4:32 - 정말로 하나가 되었다. 행 4:34,35 -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 가장 급진적인 공동체의 모습이다. 상대를 타자가 아니라 자신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저 그들은 하나였다. 유토피아적인 완벽한 공동체였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일한 공동체였다. 이렇게 하나된 공동체에 사탄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 행 5:1 아나니아-'하나님의 은혜가 깊으시다'라는 의미다. 삽비라- '아름답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에 걸맞는 행동은 아니었다. 땅을 팔아 헌금했지만 일부를 감추고 '전부'를 헌금한 것처럼 '위선적' 행동이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 그들의 내적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공동체의 성령 충만한 모습을 보며 자신도 성령 충만한 것처럼 보여지고 싶었다. Like 바나바 (요셉) 행 4:36,37 바나바 -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나바와 같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처럼 '존경'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 '위선'도 '선'일까? 이 혼란은 사탄의 전략일 뿐이다. 위선은 '거짓' '자기 합리화' '책임회피' '형식화된 신앙'이 함께 따른다. 사탄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서도 성령충만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성령 대신에 위선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했다. '감사'하지 않은데 '감사 헌금'을 드린다?! 이렇게 사탄은 '연기하듯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거짓'이 만들어내는 결과 table!!! 목회자나 강단에 올라오는 사람은 '연기하듯' 하게 되는 '위선'과 싸워야 한다. 조심해야 한다. 예배자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하여야 한다.
"Simple하게 살지 않으면 Sin-full하게 살게 된다." 하나님은 부족하거나 연약한 것은 받지만, 위선적인 것은 받지 않으신다. 그래도....'적당히'...는 사탄의 속삭임이다. 날마다 위선과 싸우자.
둘째, 성령이 아닌 사탄충만을 따르게 한다
사도행전 5장 3절에서, 성령 충만한 공간에도 사탄충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동기입니다. 사탄의 역사와 성령의 동기를 구별하려면, 그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생명을 살리는지 죽이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의미 없는 험담이나 헛소문을 멈추고, 예수 이름만을 높이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은과 금이 아닌 예수 이름으로만 세워져야 합니다.
(행 5:3) 성령충만한 공간에도 사탄충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헨리 나우엔의 인용구!!!)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의 '배후'를 간파해야 한다.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동기'다.
사탄의 역사와 성령의 동기를 어떻게 구별할까?
- 그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생명을 살리는가, 죽이는가?'를 생각해 보라.
의미없는 험담을 멈춰라. '아니면 말고...'의 헛소문을 멈춰라.
초대교회는 '예수 이름을 충만한 공동체'였다. 그래서 은과 금을 우습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탄은 초대 교회 가운데 은과 금의 논리를 심어놓는 것이다.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은 공동체 내에서 발언권이 세야 할까? 아니다. 교회 이름은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세워져야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동정도 간다. 그러나 성경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회는 은과 금이 아닌 예수 이름으로만 세워진다.' 영적 전십갑주로 무장해야 한다.
셋째, 성령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사도행전 5장 3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땅값의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문제는 '위선'이었으며,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그들의 죄였습니다. 이 사건은 아간의 범죄와 유사하며, 하나님을 속이려는 시도는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 (행 5:3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사탄이 우리 안에 '성령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 (행 5:2 죄를 짓기 위해 하나된 부부의 모습.... )
: 땅을 팔고 일부만 내도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위선'이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 (행 5:4)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라"
: 헌금은 자발적이면 된다. 그것을 통해 은과 금의 논리가 틈타고,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하는 파괴적 생각이 파고 든다.
- 감추매 = 노스피조 (감추다, 가로채다, 빼돌리다).
: 이 표현은 '아간'에게 적용된 단어였다. 즉 아간의 범죄와 아나니아/삽비라 부부의 범죄를 같은 것으로 본다.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지파'를 가려내고 - '집안'을 색출하고 - '남자'를 특정하는 제비를 뽑았다. (아간은 그냥 그대로 있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눅 12:10 하나님은 속이거나 숨길 수 없다.)
- (행 5:5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 너무 엄정해서, 엄청난 경외심으로 사람들이 언급을 삼갔기 때문에 남편의 죽음이 아내인 삽비라에게 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행 5:11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두려워서 교회를 옮기거나 떠난 것이 아니었다. '거룩한 경외심'으로 모두 정결해졌다.
결론
초대교회는 거룩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공동체를 허무는 악을 그대로 두지 않았으며, 우리도 우리 안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교회는 진실된 예배자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곳이어야 하며, 연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고,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진실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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