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vs. 야훼 하나님
이슬람 신자들이 천지의 창조주로 믿고 있는 신 '알라', 그들에게 이 신은 아담을 창조했고 유대인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예수님을 보낸 그런 전지전능한 신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호킨스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글을 썼다가 복음주의 대학교로 유명한 휘튼 대학으로부터 해직 징계 처분을 받았죠. 이처럼 '기독교와 이슬람은 같은 신을 믿는가?'라는 물음과 관련하여 기독교에서는 부정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 많은데요. 그렇다면 왜 이들은 알라와 하나님을 같은 신으로 보는데 불편해하는 걸까요? 그리고 알라는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의 신이 정말로 맞는 걸까요? 이제부터는 이 문제에 들어 있는 진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슬람 성전 꾸란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들의 신은 그대들의 신과 같다.” 그리고 꾸란 3장 84절에는 “우리들은 알라를 믿으며 모세, 예수 및 예언자들을 믿으며 이들 중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오죠. 이처럼 이슬람은 알라가 곧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는데, 이 외에도 타우히드(Tauhid, 유일신관·唯一神觀)라는 신관을 공유하며 이 신이 인류의 구원자라는 것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슬람은 기독교와 비슷한 신학적 입장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삼위일체를 인정하는가? 유일신관과 충돌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이슬람의 신학과 기독교의 신학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죠. 바로 예수를 성자, 즉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는다는 것과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점이에요. 왜냐하면 이슬람은 기독교보다 더 강력한 유일신관을 견지하기 때문에 오직 한 분만 계시는 신을 논하는데, 삼위일체는 신성과 인성, 그리고 영의 위격이라는 세 위격으로의 신을 논하는 내용이기에 이슬람 입장에서 이것은 삼신, 즉 하나가 아닌 다신 숭배의 논리가 된다고 보면서 신성 모독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이러한 이슬람 신학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삼위일체로서의 신의 본성을 부정하는 이슬람의 신 알라가 결코 하나님과 같은 신일 수는 없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죠.
더군다나 이슬람의 신 알라는 애초에 이 종교를 창시한 무함마드가 속했던 부족, 즉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달의 신을 뜻하며, 이런 이유로 유독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는 초승달이 상징으로 많이 들어간 것이니, 이런 달의 신을 하나님으로 둔갑시킨 것을 믿고 있는 이슬람이 어떻게 해서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을 믿는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문제 제기는 과연 정당한 것이며 그 논리에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는 이 내용에 대해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위일체론 관점
'이슬람의 알라는 예수님과 부자지간이 아니며, 삼위일체로 있는 것도 아니므로 기독교의 신과는 다르다.' 우리는 이러한 논리를 앞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을 성자로 여기지 않는 것과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배척은 이슬람이 아니라 유대교에서 먼저 한 것이죠. 뿐만 아니라 서기 1504년에 있었던 동서교회의 대분열도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의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로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방 정교회는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서 나온다고 보는데, 이와 달리 로마 가톨릭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고 본 것이죠. 따라서 삼위일체가 곧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라고 주장할 때도, 기독교 사회 안에서는 이 삼위일체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예수님을 부정하는 유대교가 믿고 있는 신 야후,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지만 신의 본질에 대한 삼위일체에 있어서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믿고 있는 이 신들은 과연 같은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성립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질문을 성립시키는 그 논리적 근거가 공교롭게도 기독교에서 이슬람의 신이 우리와 다르다고 주장할 때 제시하는 그 근거와 같다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이슬람 문제 이전에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여 신의 본질에 대한 내용을 확정 지어야 하며, 만약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공유하는 삼위일체론이 신의 본질이고, 이것이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한다면, 이를 부정하는 유대교 그리고 삼위일체의 내용을 다르게 믿는 동방 정교회를 상대로도 서로 같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님을 정확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렇게 확정된 신의 본질에 대한 입장이 있을 때 비로소 그 근거로 이슬람이 말하는 신의 본질과 비교하면서 같고 다름을 논할 수 있게 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 현재까지 기독교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그저 이슬람의 신이 우리와 다르다고만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성급한 결론 요구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알라는 달의 신이라는 관점
알라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논거, 알라는 달의 신이라고 하는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이 신이 정말로 달의 신이라면 이슬람은 달을 숭배하는 종교이며, 기독교와는 무관한 종교로 밝혀지게 될 테니까요.
알라가 달의 신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이 말의 뜻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본시 이 어휘는 언어학적으로 볼 때 아람어 라에서 유래한 것인데, 아라비아어로 신을 뜻하는 '라'에 정관사 '알'이 붙은 것으로 영어의 ‘더’에 해당하죠. 그런데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의 부족은 달의 신을 섬기는 전통이 있었고, 이 신을 라라고 불렀기 때문에 기독교의 일부 인사들은 이를 근거로 이슬람이 하나님이 아닌 무함마드의 부족의 달의 신을 섬기는 종교라고 주장을 하거나, 또는 달의 신을 하나님으로 둔갑시켰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라의 어원인 알라는 이슬람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아람어를 사용하던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지칭할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어휘였어요. 참고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였던 알히라의 기독교 왕 알누만 이븐 아문디르를 찬양하는 시에도 바로 이 알라라는 어휘가 등장을 하고 있답니다.
다시 말해서, 본시 알라는 이슬람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중동 지역 일대에서 신을 뜻하는 개념으로 널리 쓰이던 어휘였다는 것. 따라서 이 역사를 볼 때, 알라는 무조건 달의 신만을 뜻하는 그런 좁은 개념의 어휘가 아니라, 신에 해당하는 존재의 명칭을 붙일 수 있는 그런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무함마드는 나이 40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계시를 받고 유일신을 섬기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므로 자신이 이때부터 믿게 된 신은 여러 신들 중 하나인 부족 신이 아니라 유일신관에 기초한 신이었다고 봐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후 말라후 말라 신상을 파괴한 사건입니다. 자,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본시 이슬람 이전의 중동 지역은 여러 신들을 믿는 풍습이 있었고, 이런 풍습에 따라 무함마드의 부족도 달의 신을 믿고 있었던 것인데, 본시 이 신은 알라로 불리기 이전에 후 말라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유일신을 섬기게 된 무함마드가 이슬람 세력을 키운 후 자기 고향 메카로 돌아와서는 이런 다신 숭배 사상의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 여러 신상들을 파괴했다. 바로 후발라 신상 또한 파괴했다는 것.
이러한 내용을 세계적인 종교 역사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이 자신의 저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슬람에서 알라는 달의 신을 숭배할 목적으로 사용한 어휘가 아니며, 유일신을 칭하기 위해 이미 저 지역 일대에서 널리 사용해 오던 개념을 차용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이슬람이 정말로 달의 신을 숭배하고자 했다면, 무함마드가 후 말라 신상을 파괴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며, 꾸란 안에서도 알라의 본성을 설명하는 내용과 관련하여 달에 대한 언급이 나와야 하지만, 이런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일부 인사들은 이슬람 국가들 중 많은 국가들이 초승달을 국기의 상징으로 사용한다고 지적을 하면서 이것이 곧 달신 숭배 사상의 흔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죠. 그러나 초승달을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이슬람 율법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한국 이슬람교 서울 중앙 성원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꾸란 안에서도 초승달이 이슬람의 상징이라고 알려주는 내용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답니다. 다만, 꾸란 2장 189절에서는 초승달을 성지 순례를 위해 고정된 시간을 알려주는 지표라고 설명하는데, 이처럼 이슬람에서 초승달은 시계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이해된다는 것이죠. 특히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의식 라마단이 초승달이 보이는 달에 시작된다는 점에서 달의 여러 형태들 중 초승달이 가지는 의미가 유독 컸던 것이죠. 그리고 이 초승달을 국가의 상징 기호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슬람 초기 때부터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 때부터이며, 이 제국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오늘날 초승달을 국기에 넣게 된 것이지, 저 달을 신으로 섬기고자 국기에 넣은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슬람 신자들 역시도 달의 신을 믿는다고 그 스스로 인식하지 않으므로, 언어학 및 역사학적 분석과 더불어서 이슬람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도 이 종교가 달의 신을 숭배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기독교가 왜 이슬람의 신을 같은 신이라고 하지 않는가?
기독교가 왜 이슬람의 신을 같은 신이라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본시 유일신 하나님을 제일 먼저 믿었던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며, 이들이 섬기던 신은 야훼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수님이 등장하셨고, 이분은 유대교 사람들이 믿고 있던 율법, 즉 신이 내려주셨다고 하는 그 율법을 자신이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성격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이 오셔서 맺게 된 언약을 새로운 약속, 즉 신약이라 하며, 그 이전부터 믿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하나님의 약속을 옛날 약속이라 하여 구약이라 했는데, 이런 기준에 따라 기독교의 성경도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교에서는 구약이란 명칭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명기 12장 32절 말씀에서 신은 자신이 지키라고 주신 그 율법에 '너희가 단 한 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못한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야훼가 주신 그 율법을 인간이 왜곡하지 않고 그 자체로 잘 믿고 있는데, 이러한 신의 언약을 옛날 약속, 즉 구약이라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않으며, 기독교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성립 이후에 등장한 이슬람은 유대교의 모세 오경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셨는데, 사람들이 이를 잘못 해석하고 왜곡하여 신의 본뜻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다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기 위해 구원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복음서를 내려 주셨지만, 이것이 또 인간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보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저들의 믿음은 신의 본뜻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래서 신께서는 이를 완벽히 바로잡을 목적으로 다시 꾸란이라는 경전을 주신 것이니, 이런 꾸란을 받드는 이슬람은 예수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자기들이 다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니, 이것이 이슬람 신학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자, 이제 눈치가 빠른 분들은 여기서 벌써 감을 잡으셨을 거예요. 기독교에서 이슬람을 거부하는 이유가, 자기들 믿음의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신의 뜻을 새로이 해석하는 문제를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를 거부하는 것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 있는 것이죠. 즉 자기들 믿음에 새로운 내용을 더하려 드는 문제를 그냥 둘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유대교가 기독교를 거부하듯이, 기독교도 이슬람 신학을 부정하면서 저들이 믿는 신은 우리와 다른 신이라는 주장까지 등장을 한 것이다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이 다 이런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에요.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 볼프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슬람과 기독교는 같은 신을 예배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이렇듯 이슬람과 기독교의 신은 같은가 다른가 하는 이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종교에 대한 나의 입장만이 옳다고 여기는 독단론에 빠지는 순간 서로 다른 입장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규정되고 마는 거겠죠. 물론 종교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 진리 앞에서 상대론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따라서 만약 나의 믿음이 절대 진리라고 한다면, 그 진리를 잘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지, 역사적 사실을 잘못 해석한 채 그것을 공격하거나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오해를 한 상태로 내가 믿는 믿음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비판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이것은 오히려 진리의 전파를 가로막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겠기에 오늘 이 강의를 마련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슬람의 신 알라에 대한 꾸란의 설명을 잘 살펴보면, 기독교와 관계되는 부분 외에도 오늘날 우리의 윤리적 기준에서 볼 때 문제가 되는 내용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이런 내용들에 대해서는 제가 다음에 이슬람과 테러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강의할 때 상세히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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