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예배 vs. 현장 예배... 진정한 교회는?
지금의 10대·20대가 곧 '미래'입니다.
이들은 SNS와 온라인 공간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10년, 20년, 30년 후 한국 교회가 어떠할까 내다보면, 지금의 10대·20대가 온라인과 디지털에 깊이 몸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온라인 예배"가 새로운 대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특정 공간(예배당) 그 자체를 절대시 하는 믿음으로는 그러한 미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미래 세대를 품고,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해답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곧 성전”임을 자각하고, 각자 “걸어 다니는 성전”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신성시(神聖視)’하는 대신, 우리 자신이 성전 되신 하나님을 모신 ‘움직이는 성전’으로 거듭날 때, 그 길을 통해 한국 교회의 미래는 새로워질 가능성이 열립니다.
우리가 ‘성전’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네 가지
구약시대에 이동식 성막(포터블 템플)이나 예루살렘 성전(붙박이 성전)을 막론하고, 그것이 ‘성전’이라 불리려면 반드시 네 가지(법궤, 금촛대, 분향단, 진설병)가 구비되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걸어 다니는 성전”이 되려면, 이 네 가지가 영적 차원에서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법궤: ‘말씀’의 상징.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 말씀을 주인 삼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 없이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기준이 없어집니다.
도스토옙스키 말대로,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해지고, ‘모든 것’이 변질될 수 있습니다.
금촛대: ‘성령의 조명’
옛 성막이나 성전의 금촛대는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성령의 빛(조명)입니다.
칼뱅은 “성령의 조명 없이는,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께 조명해 달라고 구해야, 말씀이 그냥 활자·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살아 움직입니다.
분향단: ‘기도’
성전에서 피워 올린 향은, 신약에서 “성도의 기도”로 나타납니다(계 5:8).
향이 하늘로 올라가듯,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단수, 기도는 복수”이듯, 기도는 단편적으로 뚝뚝 끊기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언부언하지 말라”(마 6:7)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아시는 분이니, 내 욕망만을 되뇌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뜻입니다.
진설병: ‘이웃 사랑’
구약에서 진설병은 하나님께 바쳐졌지만, 실제론 제사장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인 지금, 예수님은 자신을 “가장 작은 자”와 동일시하십니다(마 25장).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요, 하지 아니한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의 높거나 가진 사람을 잘 대접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가장 낮은 이웃을 돌보는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진설병”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법궤(말씀), 금촛대(성령), 분향단(기도), 진설병(이웃 사랑)을 품고 살아갈 때, 나는 ‘성전 되신 하나님’을 모신 ‘움직이는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1. 법궤: 말씀의 상징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궤(柜),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 내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내가 ‘내 마음대로의 주인’이 아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세상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듯이, 말씀 없는 신앙은 곧 인간의 욕망과 세상의 유행에 휩쓸리는 길이 됩니다.
2. 금촛대: 성령의 조명
금촛대는 어둠을 밝히는 빛, “성령의 조명(illuminatio Spiritus)”을 뜻합니다.
- 칼뱅은 “성령의 조명 없이는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 아무리 성경을 머리로 외워도, 성령의 조명이 없다면 말씀이 내 삶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의 빛 안에서 말씀을 듣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과 논리를 하나님보다 앞세우게 되고, 교묘하게 ‘학술적’이라는 미명 아래서 말씀을 뒤바꾸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3. 분향단: 기도의 연기
분향단에서 피어오르던 향(香)은, 신약에서 “성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계 5:8).
- 향이 하늘로 올라가듯이,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도가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도(saint)는 단수, 기도(prayers)는 복수”이듯, 기도는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이방인’을 본받지 말라(마 6:7)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이므로, 끊임없이 내 욕망만을 되뇌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4. 진설병: 이웃 사랑 실천
진설병(陳設餠)은 성전 안에 진열해 두었던 빵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하나님 대신 그 빵을 먹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제사장이나 목사와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마 25장)와 동일시하십니다.
- “네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요, 그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 이 말씀에 따르면, 가장 낮은 이웃을 대접하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빵을 올려 드리는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실제 삶에서 가장 미약한 이웃을 “곧 하나님께 하듯” 여기고 사랑할 때, 내 안에 진설병이 채워집니다. 즉, “이웃 사랑”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 내 삶이 ‘성전’으로서 완결되는 것입니다.
“걸어 다니는 성전”이 될 때, 교회의 미래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교회 건물을 너무 절대시 해 왔습니다. 가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 할 것 없이 크고 웅장한 건물을 지으려 애썼고, 그 건물을 성스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건물은 사람이 떠나면 비게 됩니다. 유럽을 보십시오. 화려한 성당이 텅텅 비고, 교회가 술집이나 여관으로 팔려 나가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10년 사이에 6대 교단 통계를 보면, 196만 명의 교인이 줄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20~30년 뒤면, 지금과 전혀 다른 교회 풍경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건물 중심, 공간 중심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 세대를 품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 성전으로 살아갈 때, ‘예배당 건물’을 절대화하는 대신, 나 자신이 성전이신 하나님을 모신 움직이는 성전이 되면—그때 성령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로로 삼아, 교회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10대와 20대가 SNS와 디지털에 깊이 묻혀 있다 해도, 우리가 “법궤(말씀), 금촛대(성령 조명), 분향단(지속 기도), 진설병(이웃 사랑)”을 품은 성전이 된다면, 어떠한 변화에도 복음을 전하고 미래를 밝힐 수 있는 희망을 가져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이 땅에 교회가 살아나려면, 이제 내가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건물교회”에서만 예배드릴 것이 아니라, 걸어 다니며 복음을 증거 하는 “인격교회”로,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교인이 많이 나올 때, 교회는 비로소 진정한 미래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고 한국 교회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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