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미래
제가 오래전에 『비전의 사람』이라는 책을 쓰면서 “현존하는 미래”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오늘 시대나 젊은이들은 “현존하는 미래”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젊은이들이 곧 미래가 되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현존하는 미래’이기는 하지만, 맞이하게 될 미래가 모두 다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현재 가꾸느냐에 따라서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도, 지금보다 못한 미래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날 기성 목회자들에게 실망합니다. 그런데 그분들도 태어날 때부터 60~70대 기성 목사로 태어난 것이 아니잖아요. 그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한때 ‘현존하는 미래’였는데, 자신을 잘 가꾸지 못하면서 결국 지금의 모습(많은 이들의 실망)을 빚어낸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 삶의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것은 어제 내가 잘못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또 내일의 발판이기도 합니다. 오늘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늘 바르게 살면 새로운 미래가 가능하겠지만, 잘못을 깨닫고도 고치려 들지 않으면 내일은 어제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현존하는 미래”라고 할 만한 분들은 20~40대 젊은 목회자들입니다. 그럼 그들의 현재 모습이 과연 어떤가? 그분들이 앞으로 미래에 기성 목사가 되었을 때,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저는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경험한, 오늘날 ‘현존하는 미래’라 할 수 있는 젊은 목회자들의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젊은 목회자에게는 '프로'의식이 필요합니다
첫째, 많은 젊은 목회자들은 교인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아마추어’라는 점입니다. 왜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헌금으로 봉급을 줍니까? 목회자는 “프로”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프로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교인들은 자기 돈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신앙생활하고, 목회자는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수습 기간이 없어야 하는 직종’이 세 가지라고 봅니다. 대통령, 전문의(의사), 그리고 목사입니다.
- 대통령: 수습 기간이 있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국민이 큰 피해를 봅니다.
- 전문의: 전문의가 된 뒤에 “이제 수습 좀 해야 되겠다”라며 실습 삼아 환자를 다루면 안 됩니다.
- 목사: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자리이기 때문에 수습이 용납될 수 없습니다.
프로 야구 선수를 보십시오. 예를 들어 추신수 선수가 부산에서 고등학교 야구 선수였지만, 미국으로 건너가서 7~8년을 3군, 2군을 전전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이중직’을 생각하지 않고 고생을 자처하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추신수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 목회자들이 “이중직” 운운하며 먹고사는 문제에 몰입한다면, 프로 의식을 지녀야 할 목사가 아마추어로 전락하는 것 아닙니까?
목사가 되려면 경제적으로도 “자립”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말하는 자립이란 “얼마를 벌어야 한다”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상황에 내 욕망을 맞추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매번 돈 때문에 흔들리거나, 돈 문제로 교인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담대하게 설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를 프로로, 목사로 가꾸고자 한다면, 먼저 “돈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젊은 목회자는 세속화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많은 젊은 목회자들에게 “세속화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기존 목회자들이 세속화된 모습을 답습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 개척할 때, 외부 인사들의 축하 영상 메시지를 받곤 하는데, 사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보여 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젊은 현존 목회자들도 그런 모습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2~30년 후가 돼도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또 어떤 목회자는 “취임식, 임직식, 플래카드” 등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30여 년 목회하면서 한 번도 취임식이나 플래카드를 걸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나를 과시하는 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젊은 목회자는 인간을 잘 알아야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셋째,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인간을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설교를 들어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이게 교인들에게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인간을 모르면 결코 인간을 변화시키는 설교는 불가능합니다. 신학교를 가면 대부분 ‘성경’을 깊이 읽을 것 같지만, 사실 신학교는 성경 자체가 아니라 성경에 관한 학문적 지식이나 서적을 주로 공부합니다. 거기다 인문학 공부나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생명력 있는 설교를 하기 어렵습니다.
“문학”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 모습이 담겨 있고, 간접경험을 쌓는 좋은 통로입니다. “죄와 벌” 같은 명작을 읽으면,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전당포 할머니를 죽인 라스콜니코프’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가 된 소냐’를 통해 진짜 인간의 내면이 어떤지를 깨닫게 됩니다. 목회자에게는 이런 깊은 “인간 공부”가 꼭 필요합니다. 심방을 하며 어르신들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대충 듣지 말고 “인문학 책 한 권” 읽는 것처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로 인간을 알게 되고, 그에게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입니다.
젊은 목회자는 예의를 배워야 합니다
넷째, 오늘날 젊은 목회자들에게 “예의”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아내를 “사모”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모”라는 호칭은 내가 부르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높여 줄 때나 붙는 명칭입니다. 내가 내 아내를 향해 “사모”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내 아내가 너희 위에 있다”라는 무례한 표현이 됩니다.
이외에도, 교인들과 식사 자리를 할 때, 나이 많은 교인을 제쳐 놓고 목회자가 상석에 앉는다든지, 교인이 운전하는 차에서 목회자가 뒷자리에 떡하니 앉는다든지 하는 예의 없는 모습이 너무 흔합니다. 서양에서는 예의를 “보편 언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최고의 예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분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최후의 만찬에서 열두 제자의 발을 씻기시면서도, 그들을 향해 끝까지 예의를 갖추셨습니다. 목회자 역시 “종”으로서의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젊은 목회자는 자기 고유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다섯째, 젊은 목회자들은 “자유, 자기 고유성이 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 전 찬양 인도나 기타 프로그램을 타 교회 흉내만 내는 식이지,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지만, 복음서가 마태·마가·누가·요한으로 다양하게 존재하듯이, 목회 현장도 각자의 고유성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교회가 비슷한 찬양, 비슷한 프로그램, 비슷한 모양새로 운영된다면, ‘왜 굳이 이 교회에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내 정체성, 내 소명에 기반한 나만의 고유성”이 확립되어야, 교인들에게 존재 이유를 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목사가 되십시오
결국, 어떤 목사가 끝까지 살아남겠습니까.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목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곧 “아무리 종교적 열심이 있어도, 네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넌 결국 네 욕심을 구하며 사는 것이지 나를 따르는 게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진짜 목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성숙해집니다. 반면, 지금의 기성 목사들 중 많은 분들이 욕을 먹는 건, 젊을 때 자기 부인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죄성”이 커지는데, 자기 부인 없이 살면 욕망만 커지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하시지만,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하면 내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라고 고백했을 때, 그건 결박과 환난의 길로 부르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 길로 가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니, 죽는 순간에도 영광스럽게 자기 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젊은 목회자들, “현존하는 미래”라고 불리는 분들이 진짜 목사가 되려면, 지금부터 자기 부인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중직이나 세속화의 유혹, 사람을 모른 채 설교하거나 예의 없는 행동, 남들 따라만 하는 목회 대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고유성을 지닌 프로 목사”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 “끝까지 살아남는 목사”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소홀히 했습니다. 이 상태로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의 미래가 어떠할지 분명합니다.
오늘 깨달음을 얻게 하셔서, 매일 자기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진짜 목사로 우리를 빚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된 사랑의 교회는? 이재철 목사님 (0) | 2025.01.10 |
---|---|
그대가 주시하는 것은? 이재철 목사님 (1) | 2025.01.10 |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살아갑시다 ... 이재철 목사님 (0) | 2025.01.10 |
우리 교회는? 이름 대로 살아내는 교회가 됩시다...이재철 목사 (0) | 2025.01.10 |
나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재철 목사님 (0) | 2025.01.10 |
나의 역사는? - 자기 부인의 길...이재철 목사 (0) | 202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