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콰이어 연습실 맨 뒷줄에서 바라보다
매주일 이른 아침 7시 50분부터 9시 30분까지 오륜 비전센터 602호실에는 100여 명의 콰이어 단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어 모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찬양 연습을 하며, 서로 다른 인생들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귀한 시간을 보냅니다.
연습실의 좌석배치는 지휘자 시각으로 볼 때 왼쪽에서부터 테너, 베이스, 소프라노, 알토, 오케스트라 순서로 자리를 잡고,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키가 큰 이들은 자연스럽게 뒷줄에 앉게 됩니다. 저는 테너 파트에서 키가 큰 축에 속하기에 그 규칙 덕분에 연습실 구석, 맨 뒷줄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대개는 지휘자의 손 끝과 표정에 집중하며 연습에 몰입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조금 다른 경험을 합니다. 수많은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연습을 하게 됩니다. 평소 회의와 발표 속에서는 사람들의 앞모습을 주로 마주하던 제게, 이 새로운 시선은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다
평론가 신형철 님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는 구겨진 셔츠 차림 남자의 뒷모습이 덩그러니 있습니다. 마치 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내가 이르지 못할 슬픔을 가졌을 당신의 뒷모습을 그림 밖에서 바라본다."라고 작가는 그 그림을 풀어냅니다.
위로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동정받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받는 것이라고 볼 때, 다른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슬픔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양병원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삶의 앞모습을 느끼다
제게는 또 다른 뒷모습, 즉 어머니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 안겨 젖을 물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어머니 등에 업혔던 그 따스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는 대개 어머니의 일하시는 옆모습과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이제 요양병원 병상에 누워 콧줄로 영양분을 섭취하시고 링거를 통해 영양분을 보충하시다가 인공혈관 시술까지 필요해지신 어머니의 노년을 대할 때마다 무거운 슬픔과 함께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어머니가 겪으시는 주관적 고통을 아들이지만 타인인 내가 얼마나 온전히 이해하며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을지, 매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거울 속에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힘을 잃어가는 내 앞모습을 볼 때마다 서글픔이 밀려오지만, 그 모습에 바빠서 타인의 뒷모습-즉, 인생의 참 앞모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서로의 뒷모습 속에서 찾는 위로
주일이면 저는 다시 그레이스 콰이어 연습실 뒷자리에서 조용히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 뒷모습들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각자의 슬픔과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인생 궤적을 걷고 있지만, 때로는 이런 서로의 목소리를 맞추며 조용한 관찰을 통해 그 슬픔을, 기쁨을, 은혜를,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진정한 위로란, 상대방의 뒷모습에 담긴 인생의 깊은 이야기를 읽어내고, 그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데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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