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오심과 그 역할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여러분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16장에서 성령님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13절 상반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명칭은 보혜사, 위로자, 상담자, 대언자 등 여러 가지이지만, 주님께서는 그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진리의 영으로 우리에게 임하셔도 “내가 진리를 보여줄 테니 너희는 구경만 하라”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곧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를 진리 안에서 살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
여러분, 누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까? 청산유수처럼 기도하고 밤을 새워 금식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진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역사 안에 있지 않고서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 절대로 진리 속에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의 성령의 인도로 진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첫째로,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사람, 진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예전 개역성경에서는 이를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말을 지껄이는 사람들은 절대로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서 37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신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사람이 함부로 말한 것이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하는 이야기는 주로 어떤 것입니까? 누구를 비방하고, 욕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함하고, 들은 소문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심판 날에 해명해야 한다는 말씀이 매우 두렵습니다. “너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느냐” 하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사람의 의로움과 죄인 됨이 말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말이 곧 인간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도 말은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한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말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절대로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해명해야 할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말로 인해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기도 하고, 말로 인해 우리가 정죄함을 받기도 합니다.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은 진리의 사람답게 말해야 합니다.
잠언 18장 4절에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흐르는 내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사람의 말은 깊은 물과 같습니다. 얕은 물은 졸랑대지만, 깊은 물은 사람을 살리는 깊은 생명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인격과 실상을 드러냅니다. 함부로 비방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거짓을 말하는 것은 진리의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말의 무게를 알고 조심하며, 깊은 물과 같은 생명의 말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7장 38~39절 상반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셨는데,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그 사람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말 표현을 생각해 보면, “저 공무원은 뇌물을 받아먹는다”라고 할 때, 뇌물이 음식이 아닌데도 ‘받아먹는다’고 표현하고, “저 사람 뱃속이 시커멓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존재가 어떠한지는 그 배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사람은 시커멓던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드러납니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들은 것을 말한다
두 번째로,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들은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 진리의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마구 떠들지 않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말합니다. 그런데 들으려면 반드시 침묵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침묵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 모든 고등종교에는 침묵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에는 이것이 거의 없습니다. 개신교인에게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대화를 하려면, 내 말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들으려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요청하고 명령하듯이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듣지 않습니다. 내가 들은 만큼 내 안에 ‘내공’이 쌓이는데, 우리는 주여 하고 부르짖고 합심 기도하는 것에만 치중해, 삶은 빈 깡통 같은 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침묵이 없으면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습니다. 말의 무게는 침묵에서 나옵니다. 성경을 한 구절 읽었다면, 눈을 감고 그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그 말씀 앞에서 나의 삶은 어떤지, 나를 돌이켜 보며 입을 다물고 들어야 합니다. 그 침묵이야말로 하루하루 나를 진리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힘입니다.
장래 일을 알리신다
세 번째로,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진리의 사람으로서 진리 안에 거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장래 일을 알게 해 주십니다. 이것을 점쟁이처럼 미리 모든 것을 예언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앞서 심판의 대원칙인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대로, 성령님은 멀리 내다보게 하십니다. 죄성과 욕망에 이끌리는 인간은 가까운 이익에만 눈이 가지만, 진리 안에 거하면 성령님이 우리의 눈을 멀리 보게 해 주십니다.
“그래, 네가 지금 그 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1년 후에는 어찌 되겠느냐? 그때 후회하지 않겠느냐?” 이런 식으로 미래를 보게 해 주십니다. “네가 저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려면, 지금 울면서도 씨를 뿌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진리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고, 결국 인생의 끝자락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네 번째로, 14절에서 주님께서는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그 성령님께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주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원문 헬라어에는 접속사 ‘왜냐하면’이 들어 있어서, 좀 더 정확하게는 “성령은 나를 영광되게 하시는데, 왜냐하면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리시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성자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오직 주님의 것만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므로, 성자 예수님의 영광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성령 충만하고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님만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삶이 그런 삶일까요?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인해, 내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심판이 ‘패스오버(passover, 유월절)’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빚을 사람들에게 갚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본받아 아랫자리에 서는 삶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처럼, 낮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섬길 때, 거기에 주님이 임하셔서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렇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성령님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과연 성령의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아직 아니라고 느끼신다면, 오늘부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성령의 사람으로 우리 삶을 가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숨을 거두는 순간, 후회 없는 일생이 되는 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제 함께 보았던 주님의 마지막 유훈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16장 32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아버지께서 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를 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 바로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가 절망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보혜사 성령님께서 지혜의 말씀을 담아주시고,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일깨워 주심으로 “이 가운데서도 주님을 좇아가거라.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알려주십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막아주시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시며, 설령 우리가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그 낮아진 심령 속에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 주십니다.
그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데, 내가 무서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은 시편 27편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합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속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주님의 영이 함께하시기에, 지금 이 순간을 통과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으로 귀결되는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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