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를 돌아봅니다
우리 한국 개신교를 되돌아보십시다. 140년 전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처음 복음을 전하던 그 선교 초기 시대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때를 제외하고 지나간 세월 동안에, SBS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지금 현재 남한 땅에 개신교회가 8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8만 개가 어떻게 개척되고 창립되었습니까? 대부분은 어느 교회인가 다니던 교인들이 나와서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8만 개 교회 거의 절대다수는 어느 교회인가 다니던 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정말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를 한 번 만들어서 섬기자. 정말 참된 교회를 만들어서 우리가 주님께 영광 돌리자”라는 마음으로 세운 교회가 지금 8만 개입니다.
한국 교회의 쇠퇴 추이
그런데 어떻습니까? 한때 개신교 인구가 1,200만 명이라고 한국 교회가 공공연하게 자랑했습니다. 지금 교단들이 발표하는 교인 수를 다 합쳐도 그때의 반 이하입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2022년에 조사하여 2023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개신교 인구가 전체 인구 5,143만 명 중 771만 명(15.0%)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중 교회 출석자는 545만 명, 불출석자(가나안 성도)는 226만 명입니다.(7:3)
각 종교별 비율의 추이를 보면 개신교·불교·가톨릭 인구 비율은 △1998년 20.7%·23.5%·7.5% △2004년 21.6%·26.7%·8.2% △2012년 22.5%·22.1%·10.1% △2017년 20.3%19.6%·6.4% △2023년 15.0%·16.3%·5.1%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것은 이미 오래전입니다. 수많은 교회에 교회학교가 없습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마치 자기들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입만 열면 사랑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여러분은 만나 보신 적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회 안에서 구호로만 존재할 뿐, 내 몸과 마음을 사랑의 제물로 내어놓는 그리스도인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라, 그래야 구원 얻는다”라고 믿음, 믿음, 믿음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교인들이나 젊은 목사님들에게 “믿음이 뭐죠?”라고 물었을 때, “믿음은 이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부산 신학교로 자동차를 타고 오는데,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 길에 연등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연등에 쓰여 있는 글씨를 보셨습니까? “소원 성취.” 여러분, 부처님은 이 세상은 다 ‘무(無)’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데, 우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데서 인간의 모든 고통이 유래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면 그걸 믿는 것입니다. ‘무(無)’를 믿는다는 불교 신자들이 연등에 “소원 성취”를 씁니다. 무(無)를 믿어야 하는데, 무슨 소원을 성취하겠다는 것입니까? 그건 다 ‘유(有)’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 진리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은 어떻습니까? 내 욕망을 위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저 “소원 성취”와 똑같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여러분, 홍수가 나면 온 사방이 물천지이지만 정작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온 사방이 교회 천지인데, 사람들은 “다닐 교회가 없다”라고 한탄합니다. 목사가 없는 곳이 없는데, 사람들은 “믿을 목사가 없다”라고 가슴을 칩니다. 그럼 어떻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렇게 감격 속에서 창립되는 새로운 교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새로운 교회의 출발 시 경계해야 할 점
우리가 모르면 모르되, 오늘 교회가 그렇게 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새로운 교회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가 이 시간부터 우리의 첫 단추를 분명하게 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1) 이전 교회와의 결별이 증오심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
첫 번째로, 이전 교회와의 결별이 분노·증오심·적개심의 산물이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전 교회와의 결별이 분노와 증오심, 적개심의 산물이라면 지금 이 교회의 토대가 분노와 증오와 적개심입니다. 이 교회 속에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전 교회와의 결별을 주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섭리를 위해 여러분들을 쓰시기 위해 불러내신, 아, 주님의 은혜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지금부터 이전 교회를 미워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절대로 미워하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 교회와 결별하게 하신 것을 주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도구로 여러분을 쓰시기 위해 불러내신 것임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로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새로운 섭리를 위한 도구가 되게 하시려고, 그 교회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해 준 그 교회 교인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때 이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주님의 역사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2) 개인적인 ‘소명교회의 그림’을 내려놓아야 한다
두 번째로 유념하셔야 할 것은, 지금 여러분 각자 마음속에 있는 ‘새로운 교회를 위한 여러분 개개인의 그림’을 찢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창립예배인데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창립예배에 참석하시면, 그분들은 소위 말하는 한국 교회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창립 멤버’들입니다. 창립 멤버가 많은 교회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란에 휩싸이지 않는 교회를 보기가 드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창립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그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과 그림이 서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림과 그림이 부딪히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바울처럼, 여러분 자신의 그림을 찢어버려야 합니다. 그때 여러분 전체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주님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두 번이나 옥에 갇히고도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으며 자기의 그림을 찢을 때, 바울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유럽 대륙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로마 제국의 심장을 자기 피로 물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창립예배를 드리는 여러분께 우리 주님께서 예레미야 29장 11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전 교회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너희들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전 교회와 결별하게 하신 것은, 여러분의 범죄로 인한 재앙이 아니라, 곧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주시려는 주님의 섭리임을 의미한다고 하십니다. 아멘. 바꾸어 말해, 여러분을 들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 주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여러분의 그림을 찢으십시오. 혹시 배신감을 품고 있다면 이 시간 땅속에 묻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사함으로 오늘을 시작하십시오. 그때 아시아 대륙에 있던 바울 한 사람을 들어 유럽 대륙과 로마 제국,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께서 새로운 교회를 들어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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