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목로주점의 개념과 기원  

목로주점은 좁고 기다란 나무 판인 목로((木壚)를 앞에 내놓고 술을 파는 옛 선술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bar table? 일본어 '다찌'? 말 그대로 목로(널빤지로 만든 긴 탁자)를 설치해 손님이 술잔을 올려놓고 마시는 형태의 술집으로, 오늘날의 포장마차나 막걸리집과 비슷한 서민적인 주점입니다.

한국에서 이러한 목로주점이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로 알려져 있지만, 대중에게 술을 팔고 함께 마시는 술집 문화 자체는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나아가 서양이나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선술집과 여관, 퍼브(pub) 등이 오랜 역사를 거치며 발전해 왔습니다.

한국 전통 주점의 역사와 목로주점의 등장  

우리나라에서 술집은 단순한 음주 공간을 넘어 오랫동안 '대중문화의 공간' 역할을 해왔습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주점(酒店)이 등장한 것은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려 성종 2년인 983년에 수도 개성(당시 송도)에서 처음으로 관에서 술집 영업을 허가한 기록이 있으며 12세기 초 고려 숙종 7년(1102년) 경에는 일반 백성이 이용할 수 있는 주점들이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이 시기 개경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설주점이 설치되어 각 지방까지 확산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화폐(해동통보, 동국통보 등)의 유통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즉, 고려 중 후기에 상업과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길가나 시장 근처에 술을 파는 주막(酒幕)이 등장했고, 전국의 교통 요지마다 여행객이 쉬어 갈 수 있는 주막들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들 주막은 오늘날의 여관 겸 음식점에 해당하며, 간단한 음식과 숙식을 제공하면서 직접 빚은 술도 팔았던 곳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도 현대식 호텔을 한자로 주점(酒店)이라 표기하는데, 이는 여관과 술집의 기능이 한데 어우러졌던 전통 주막의 용법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유교적 사회규범과 경제 여건상 민간의 상업적 술집이 크게 번창하지는 못했습니다. 가정에서 제례나 잔치용으로 소량의 술을 담그는 정도였고, 절에서 술을 빚어 팔던 고려 시대의 대규모 양조도 불교 억압과 함께 사라져 한동안 대중 주점 문화가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상업이 활발해지고 도시 인구가 늘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조선 영조 대(18세기)에는 술집이 급증하여 사회 문제가 될 정도였고, 영조는 술로 인한 폐해를 염려해 한때 엄격한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뒤를 이은 정조(재위 1776–1800)는 “온 나라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고 할 수는 없다”며 금주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치세 기간에 술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서울 시내에 큰 술집이 골목마다 들어서고 작은 술집들이 처마를 잇대었다”라고 묘사되어 있어, 18세기말 한양 도성에 크고 작은 술집이 빼곡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조선 말기에 이르러 상업 도시화와 함께 주점 문화는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양조장을 겸한 헌주가, 소주가, 병주가부터 기생을 두어 접대하던 색주가, 남녀가 같이 드나드는 내외술집 등 여러 형태의 술집이 등장했는데 이 가운데 서민 대중이 가장 애용하던 것은 길거리 선술집인 목로주점이었습니다.
목로주점은 글자 그대로 긴 나무널빤지(목로)를 간이 탁자로 내어 놓은 선술집으로, 값싼 탁주(막걸리)를 서서 또는 걸상에 걸터앉아 마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간단한 안주거리가 함께 제공되었는데 대개 국밥이나 전, 두부김치 같은 푸짐한 먹거리가 공짜 혹은 헐값에 따라 나와, 한 잔 술에 푸짐하게 곁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목로 선술집은 조선 말기 등장하여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까지 전국적으로 성행했으며,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실제 1920~30년대 식민지 경성(서울)의 명물로 손꼽힐 만큼 인기였고, 당시 서울 종로 피맛골과 을지로, 인천, 수원, 개성 등 일부 도시들에만 선술집이 존재할 정도로 희소해서 먼 지역 사람들도 “경성 구경”으로 선술집에 들를 정도였습니다. 한 신문 기사에서는 선술집을 가리켜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연회장이며 사교장”으로 묘사했는데, 체면을 내려놓고 온갖 계층의 사람들(“별의별 놈팡이”)이 뒤섞여 왁자지껄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인기 비결로 꼽혔습니다. 선술집에서는 한 잔에 5전 정도의 값으로 술과 안주를 내어주었는데, 5전은 당시 전차 요금이나 가락국수 한 그릇 값에 해당할 만큼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안주는 서비스로 딸려 나왔지만 그 품질이 좋아서 심지어 너비아니구이와 갈비찜 같은 고급 안주를 내는 집도 있었고, 선짓국이나 추어탕이 펄펄 끓는 큰 솥이 보일 정도로 음식의 손이 컸습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요리 한두 가지를 잘하기 때문에 손님들은 밤이면 한 군데만 머물지 않고 서너 곳의 선술집을 차례로 돌며 맛보고 마시는 술집 순례를 즐겼다고 전합니다.

한편 선술집 중에서도 특히 안주를 일절 내지 않고 술만 팔던 곳은 대폿집이라고 불렸습니다. 표주박 ‘대포’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파는 집이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안주 대신 술을 양껏 더 부어주었기에 애주가들은 김치 한쪽 물고도 대폿집을 찾아 여러 잔 들이켜곤 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이러한 전통 선술집 문화가 점차 변모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걸쳐 도시의 골목마다 자리했던 대폿집들은 여전히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양주 바(Bar)나 맥주홀, 음악다방 등 새로운 형식의 서구식 술집들이 등장하면서 차츰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학사주점 등이 유행하며 낭만과 저항의 문화 공간이 되기도 했으나 1980년대 이후 맥주와 위스키 중심의 호프집, 룸살롱, 클럽 등이 득세하면서 옛 목로주점 풍경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포장마차나 막걸리집 등에서 옛 선술집의 정취를 일부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전통 주점 문화는 현대인의 향수와 어울려 다양한 형태(전통주 전문점, 퓨전 포차 등)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해외의 유사한 술집 발달사  

서양의 선술집과 퍼브의 역사  

한국의 목로주점에 상응하는 서양의 전통 술집으로는 선술집(alehouse), 여인숙(inn), 선술관(tavern), 퍼브(pub) 등이 있습니다. 술을 손님에게 팔고 함께 마시는 영업은 서양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문화로, 고대부터 도시와 마을마다 이러한 공공 음주 공간이 존재했습니다.

 

예컨대 고대 로마에서는 타베르나(taberna)나 카우포나(caupona) 같은 선술집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로마의 주점들은 대체로 평판이 그리 좋지 못해 “퇴폐적이고 범죄자의 소굴”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실상은 여행객에게 음식과 숙식을 제공하는 필수 공간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로마의 카우포나는 아치형 천장을 갖춘 긴 방에 주인이 한쪽 높은 단에서 좌중을 거느리고, 하인들이 시중을 들며 요리된 음식과 술을 내놓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대 주점 전통은 중세 유럽의 여관과 주점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중세 영국에서는 에일하우스(alehouse)라 불린 서민 술집이 발달했는데, 주로 여자 주모(일명 에일와이프, alewife)가 운영하며, 대문에 빗자루를 걸어둬 영업 중임을 표시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한편 중세의 여관(inn)은 여행자와 나그네들을 재워주고 먹이는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했는데, 그곳에 모인 이방인들 가운데는 범법자나 반체제 인사들도 섞여 있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르네상스 무렵부터는 음식과 술을 파는 주점이 단순히 숙식을 넘어 정기적인 식사를 제공하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즉 오늘날 레스토랑의 전신에 해당하는 태번(tavern)이 등장하여,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찬(定餐)을 내놓는 관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16세기 중엽이 되면 도시 상인과 평민들도 외식과 외부 음주를 일상화할 정도로 주점 문화가 대중화되었습니다. 당대 영국의 많은 태번에서는 1실링 이하의 가격에 푸짐한 정식을 내놓았고, 추가 요금으로 와인이나 에일을 곁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1565년 잉글랜드에 담배가 전해진 이후로는 일부 주점에서 담배 판매와 흡연까지 가능해져, 지금의 스포츠 펍처럼 술과 담배를 함께 즐기는 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서양 선술집들은 술과 음식을 넘어 사교와 오락의 장 기능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튜더 왕조) 런던의 유명한 터번들 – 이를테면 벤 존슨 등의 문인이 찾던 Mermaid 여인숙,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언급되는 Boar’s Head 선술집, 배우들과 극장주들이 어울렸던 Falcon 주점 등 – 은 단골 문인과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이자 비공식 동인 클럽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듯 16~17세기 서민 문화와 문학은 터번에서 꽃피기도 했습니다

북미 식민지 시대에도 유럽에서 건너온 주점 문화가 그대로 이식되었습니다. 17세기 식민지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마을마다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 통칭 터번(tavern)이나 인(inn)이 들어섰고, 여행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습니다. 보스턴에서는 1634년에 첫 터번(콜즈 Cole’s Tavern)이 문을 열었으며, 뉴암스테르담(뉴욕) 식민지의 식민 총독 키프트는 자기 집에 찾아오는 손님 접대에 지쳐 아예 정식 여관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민지 터번들은 지방 행정기관으로도 활용되어, 한동안 뉴암스테르담 시청으로 쓰인 주점 건물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공공장소가 부족했던 당시 환경에서 터번은 정치 토론과 집회의 거점 역할을 하여, 미국 독립혁명 당시 애국지사들이 모여 독립을 논의하던 곳도 주로 터번이나 선술집이었다고 전합니다.

 

19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의 퍼브(pub)와 바(bar)는 지역사회 사교의 중심지 기능을 유지해 왔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도 동네마다 자리한 선술집은 이웃들이 한데 모여 소통하는 장으로 남았고, 고속도로 변의 로드하우스(roadhouse)들은 장거리 운전자와 여행객의 휴식처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영국의 펍 문화나 미국의 스포츠 바 문화 등은 이러한 오랜 전통 위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생활상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주령(미국의 Prohibition 등)과 같이 음주 문화를 단속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럴 때조차 지하 주점이나 스피크이지(speakeasy) 같은 형태로 술집 문화는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술집 문화 발전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과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대중적인 술집 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술을 파는 여관이나 음식점에 대한 기록이 아주 이른 시기부터 등장합니다. 기원전 11세기 무렵 주(周) 나라 때 이미 관청에서 운영하는 공공여관, 일종의 역참 주점이 존재하여, 공무로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숙식과 술을 제공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한(漢) 대에는 민간이 경영하는 여인숙 겸 술집이 나타나는데, 《한서(漢書)》에 따르면 “장인, 의원, 점쟁이, 상인 등 온갖 직업의 떠돌이들이 이러한 주점에 모여들었다”라고 합니다. 즉 국가가 아닌 사설 주점이 고대 중국 사회에서도 일찍부터 성행하여 서민과 여행자를 상대했다는 의미입니다.
중세에 이르러 당송(唐宋) 시대에는 도시 인구와 상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의 주점 문화도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송나라 수도 개봉(카이펑)과 남송의 임안(항저우) 등 대도시들은 야시장과 음식점, 술집 거리가 유명했는데, 남송 시대 학자 오자목(吳自牧)은 자신의 견문록에 당시 항저우 도심에만 600여 종의 요리를 파는 수백 곳의 찻집, 술집, 고급 식당, 국숫집이 성업 중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길거리에는 주점 영업 중임을 알리는 술깃발(酒旗, 주기)이 처마마다 나부꼈고, 선술집부터 연회석이 딸린 2~3층 규모의 고급 주루(酒樓)까지 다양한 등급의 술집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여러 지방의 요리를 전문으로 내는 크고 화려한 술집들을 '주루'라 불렀는데,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며 시를 쓰고 풍류를 즐기는 문화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송대의 주점들은 오늘날 식당처럼 메뉴판과 전문 웨이터까지 갖추고 손님을 맞이했는데, 이러한 혁신을 현대의 레스토랑 개념의 시초로 보는 연구도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술집을 이르는 이자카야(居酒屋) 문화가 에도 시대(17~19세기)에 정립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사실 헤이안 시대(8세기) 문헌에 술 파는 가게(주사酒肆)에 관한 언급이 있고, 중세를 거치며 사케야(酒屋)가 곳곳에 생겨났으나 일반인이 가게에서 머무르며 술을 마시는 형태는 에도 초기까지 드물었습니다. 에도 시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민들은 술을 사서 집으로 가져가 마셨는데, 점차 술도가 앞에서 맛보기로 한 잔씩 걸치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18세기 무렵에는 아예 단골이 술집에 눌러앉아 주인 및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어떤 가게는 밖에 나무 상자나 술통을 내어두고 손님이 걸터앉아 마시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서서 혹은 앉아 술을 마시고 간다”는 발상이 퍼지면서 술 파는 가게 酒屋에 ‘머물다’는 뜻의 글자 居를 붙여 **居酒屋(이자카야)**, 즉 “머물러서 술을 마시는 집”이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좌식 문화에 맞춰 가게 안에 다다미방과 방석, 탁자를 갖추고, 보다 다양한 안주를 내놓는 등 이자카야는 에도 후기에 급속히 대중화되었습니다. 막부 말기나 메이지 초기의 기록을 보면 에도의 직인(職人)들과 상인들이 퇴근길에 동료들과 이자카야에서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흔했고, 값싼 선술집부터 큰 연회석이 있는 선술요리점까지 규모도 다양했다고 합니다. 현대의 선술 문화로 알려진 타치노미(立ち飲み, 입식 선술집) 역시 이러한 에도 시대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현재의 일본 이자카야는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사교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21세기 들어서는 오히려 해외에 일본식 선술문화를 전파하는 등 세계적인 주점 형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맺음말

오늘날은 전통 주막부터 현대식 바(bar)에 이르기까지 술집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졌으나, 그 본질적인 사회적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즉, 사람들이 술과 함께 어울려 소통과 환락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목로주점과 세계 각지의 퍼브들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공통된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목로주점이 한국만의 독특한 산물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술문화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해 온 한 유형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전통 목로주점은 서민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며, 세계의 유사한 술집들과 더불어 사회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