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play "The Exception and the Rule" by Brecht.
브레히트의 희곡 <예외와 관습>에 계급적 권력구조와 법치의 모순을 신랄하게 해부한 다음 이야기가 나옵니다.
석유 사업권(oil concession)을 따내기(secure) 위해 여정에 오른 상인(a merchant)은 길잡이(a guide, 중간자)와 쿨리(a coolie, 짐꾼, 식민지 노동자)를 고용합니다.
길이 바쁜데 상인은 길잡이가 쿨리를 관대하게 다루고 있는 게 불만입니다. 길잡이는 쿨리를 부려야 할 관습을 잊고 쿨리와 친해집니다.
The merchant is upset because the guide is treating the coolie too kindly, not following the usual harsh treatment.
혹독한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상인은 길잡이와 쿨리가 공모해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 쿨리를 가혹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잡이를 해고합니다.
당연하게도 상인과 쿨리는 사막 한 복판에서 길을 잃게 되는데, 상인은 오히려 쿨리에게 더욱 가혹하게 굴며 매질을 하고 그의 수통(water container)을 빼앗아버립니다.
물이 떨어져 가는 상황이 되자, 상인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쿨리로부터 수통을 숨깁니다.
하지만 쿨리는 심한 갈증을 느끼는 상인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에, 길잡이가 자신을 위해 몰래 챙겨 준 여분의 수통 꺼내 상인에게 건네려 합니다.
그런데 상인은 이를 쿨리가 돌멩이를 들어 자신을 해치려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권총을 꺼내 쿨리를 죽입니다.
이 극의 핵심은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쿨리의 아내가 상인을 살인죄로 고소해 벌어지는 재판을 보면서 이미 전후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상인이 유죄(guilty verdict)라는 걸 확신하며 엄벌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쿨리가 건네려 한 게 돌멩이가 아니라 수통이라는 게 밝혀진 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재판은 엉뚱하게 진행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판사(the judge)가 상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때는 관객은 혼란에 휩싸입니다.
판사는 "물을 나누어 마실 때 손해를 보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오로지 이성적인 행위"라면서 "수통으로 상인을 때려죽일 의도였다"라고 보는 게 관습적으로 타당하다(societal norms)고 판결합니다.
쿨리는 노예여야 하고 노예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으며 인간성이 존재할리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상인은 그런 관습에 충실했다는 게 무죄 선고의 이유였습니다.
법정은 "지배 계급의 관습"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판결을 내린다. 재판관은 "피고인(상인)은 계급적 적대관계에서 합리적 방어를 한 것"이라며, "노예 계급의 인간성 존재 자체가 관습에 반하는 예외적 상황"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로써 법이 오히려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능함이 폭로된다.
그때 브레히트는 코러스(chorus)를 통해 관객에게 직접 외칩니다.
"저들이 만든 체제에서 인간성은 예외입니다. Humanity is an exception in their system(...)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는데, 늑대가 마시는구나."
현대 사회 법치의 아이러니를 표현한 이 극은, 관객의 상식적 기대를 벗어난 흐름으로 교훈을 주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입니다.
브레히트의 이 작품은 1930년에 쓰였으며, 자본주의 체제와 계급투쟁을 비판하는 Lehrstücke의 일환으로, 학교나 공장에서 공연되어 대중에게 사회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이는 브레히트의 에픽 극장(Epic Theatre) 철학을 반영하며, 관객이 단순히 감정에 몰입하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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