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이병도목사 #직장인예배
성경 본문 : 사사기 3장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그 고민에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에서 행동과 결단으로 드러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그리스도인이자 직장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사기와 룻기의 사례를 대조해 본, 불편함보다 편안함을 선택한 결과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지, 그리고 전쟁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는데, 사사기 3장 7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은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곧 잊어버리고, 대신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들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기시니, 이 왕이 8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그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는 우리가 잘 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아람 지역을 가리킵니다. ‘구산 리사다임’이라는 이름을 풀이하면 ‘두 배로 악한 구산’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두 배로 악한’ 아람 왕 구산을 세우시어 이스라엘을 8년간 징계하셨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제가 갖고 있던 깊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그저 내게 주어지리라는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그냥 얻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준비해 두신 방법과 명령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이 성취도어야 하는 것이 전제이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해서, 가나안 족속의 진멸이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을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얻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얻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기업을 확장해서 풍요와 확장을 누려야 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전쟁과 '진멸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가나안 땅을 얻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을 확장하여 풍요와 번영을 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하며, 조금 더 편안한 방법으로 풍요와 번영을 누리려 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아 화친과 동맹을 맺고, 그들의 신을 받아들였습니다. 안전하고 편안해 보이는 이 선택은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룻기 나오미의 선택 결과
사사기 본문을 묵상하며 끊임없이 떠오른 또 다른 성경은 룻기입니다. 역시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룻기에서 나오미와 엘리멜렉 또한 베들레헴의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사고팔 수 있는 땅이 아니었고,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머물며 예배하는 것이 율법의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풍요를 좇아 모압으로 간 그들의 선택은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중요성
이스라엘과 나오미의 공통점은 불편함 대신 편안함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그 불편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고,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신앙대로 살아가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 불안정까지 가져옵니다. 우리는 ‘지혜’와 ‘현명함’을 이유로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 여인과의 혼인, 나오미가 약속의 땅을 떠난 선택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것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내할 믿음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옷니엘과 보아스의 사례로 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불편함을 감내한 결과
사사기의 옷니엘 이야기
8년간의 징계 끝에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옷니엘’을 구원자로 세우십니다.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였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40년간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옷니엘이 사사로 부름 받은 시대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 당연시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다 지파 갈렙의 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또한 ‘옷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뜻으로, 그는 이름을 바꾸지 않고 하나님을 부정하던 시대에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선언했습니다.
갈렙은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미움을 받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사위가 되는 것은 화친의 상대가 되는 사람들의 미움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옷니엘은 세상의 편안함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불편함을 감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옷니엘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룻기의 보아스 이야기
룻기에도 옷니엘과 같은 결을 지닌 보아스가 등장합니다. 여성의 인권이 유린되던 사사 시대에, 보아스는 밭에 들어온 과부이자 이방 여인 룻을 ‘소녀여’라 존칭 하며 배려하였습니다. 그는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에도 율법에 따라 이삭을 남겨두어 가난한 자가 주울 수 있게 하였고, 룻이 자신의 발치에 들어왔을 때 자신의 정욕을 따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음대로 룻을 성적 대상으로 취하지 않았습니다. 룻을 아내로 맞으면서 ‘계대법’이라는 절차를 철저히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따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한 보아스를 통해 오벳을, 이새를, 다윗을 나게 하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선택과 결단
오늘 우리는 진리보다 거짓과 왜곡이 넘쳐나는 시대, 윤리와 도덕이 모호해지고 모든 것이 돈과 물질로 타협되는 시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마저 조금만 불편하면 떠날 수 있는 공동체로 여기고, 이웃 사랑은 구호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만 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최후의 심판과 영원한 삶을 믿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편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주어지는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믿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편안함 대신 불편함을 선택해야 합니다. 옷니엘이 그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받게 했듯,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불편함을 선택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은 시대를 따라 편안함을 추구하겠습니까, 아니면 불편함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까?
'아멘'으로 순간적 동의와 감동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예배 후에 자신만의 시간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신앙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불편하게 살 것인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감정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직장과 삶의 자리에서, 신앙으로 인해 어떤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불편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고 결단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게 불편함을 함께 감당하며 끝까지 걸어간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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