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3절 말씀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여기서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라는 표현을 오늘날 쉽게 번역한 성경들에서는 “알아듣는다”라고 합니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다’가 아니라, 그 소리를 '아는 것', 바로 ‘지음(知音)’의 관계입니다.
고대 중국의 일화에는 거문고의 대가 백아가 있었습니다. 그의 연주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감동하며 들어준 단 한 사람, 종자기.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은 소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벗을 ‘지음’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콰이어의 일원으로 연습하고 찬양하며 때로는 스스로가 '음치'가 아닌가 하는 좌절을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날은, 스스로 낸 소리 하나가 마음을 울리고, 마치 ‘득음’이라도 한 듯한 감동의 순간을 경험합니다.
각 파트와의 화음 속에 잠기며 등줄기를 타고 전해지는 전율,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지음’이 됩니다.
저는 바라고 기대합니다.
지휘자님의 ‘지음’이 되고 단장님과 임원들의 ‘지음’이 되며, 서로의 지음이 되어 하나 된 콰이어를 이루어 가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는 ‘지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그때,
우리의 노래는 하늘의 소리가 되고,
그 찬양 속에서 우리는 '은총 입은 영혼으로, 천국을 조금씩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콰이어 찬양을 준비하며 노래합니다.
“주님, 제가 주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1) | 2025.06.09 |
---|---|
불편을 결단합시다 (2) | 2025.06.06 |
1인칭 시점을 하나님 시선으로 바꾸자 (1) | 2025.06.03 |
경청은 영적 환대입니다 (0) | 2025.06.02 |
십자가와 무덤은 텅 비어있습니다 (1) | 2025.06.01 |
속량에서 새 가족까지: 고대 로마 노예제와 초기 기독교의 은혜 (0) | 2025.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