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배경락 목사님의 글을 중심으로, 표현이 거칠거나 제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부드럽게 또는 조금 변경하여 재작성한 글입니다.
성경이 '사건'이었던 시대
우리는 성경을 펼쳐 읽을 때 현대의 인쇄 문화와 디지털 사고 구조를 투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읽을 분량을 체크하고, 밑줄을 긋고, 스마트폰으로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문을 대조해 봅니다. 이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정보 소비 방식입니다. 데이터는 어딘가에 객관적으로 저장되어 있고,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꺼내 씁니다. 마치 냉장고 문을 열어 식재료를 꺼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이 습관을 고대 이스라엘의 문자 세계에 그대로 대입하는 순간, 우리는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태어난 사회적 정황과 역동성을 통째로 놓치게 됩니다. 고대 유대교의 텍스트성을 연구한 수잔 니디치(Susan Niditch)는 고대 이스라엘의 비문, 인장, 도편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문자란 단순한 정보의 보관함이 아니라 신령한 힘이 통과하는 매개체였다는 것입니다. 문자를 기록한다는 것은 사실을 적어두는 기술을 넘어, 실재를 바꾸어놓는 하나의 ‘언약적 사건’이었습니다.
텍스트 이전에 실재가 있었다: 알파벳 혁명과 기록의 무게
먼저 우리가 버려야 할 환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는 물론 왕정기 초기에도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은 제본된 형태의 '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들이 진흙판에 새긴 최초의 설형문자는 곡물 회계와 행정을 위한 경제적 필요에서 탄생한 기억 보조 장치였습니다.
이후 기원전 1500년경 셈족에 의해 발명된 알파벳은 문자 역사에 대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수천 개의 기호를 외워야 했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엘리트 제국 문화와 달리, 이스라엘이 채택한 선조 알파벳은 20여 개의 자음만으로 말소리를 표현할 수 있어 문자의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습니다. 최근 발굴된 킬벳 케이야파 도편이나 아라드 요새의 오스트라카(도기 조각)는 유대 사회에서 왕실 서기관뿐만 아니라 변방의 하급 관원들까지도 제한적인 읽고 쓰기가 가능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구전과 문자는 선후 관계의 대체재가 아니었습니다. 입으로 선포되는 ‘말의 생동감’과 돌과 가죽에 박제되는 ‘문자의 불변성’은 상호보완적인 대위법을 이루며 하나님의 계시를 보존하는 두 개의 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기록 행위는 오늘날처럼 값싼 정보 양산이 아니었습니다. 기록은 여전히 고도로 훈련된 필사가들의 정교한 기술과 값비싼 재료를 요구하는 예사롭지 않은 무게를 지녔습니다. 문자로 고착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영적인 문턱을 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그 뜨거운 경험의 토양 위에 구전의 생생한 목소리를 빌려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성전이 파괴되고 국토를 잃은 바빌론 유배기(Babylonian Exile)라는 역사적 대재앙을 맞이하면서, 이스라엘은 공동체의 해체와 기억의 소멸을 막기 위해 구전되던 방대한 전승들을 집요할 정도로 정밀한 '문자 텍스트(정경)'로 집대성하는 필연적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성경은 구전의 세포와 문자의 뼈대가 만나 완성된 하나님의 거룩한 산물입니다.
파편에 깃든 신령한 힘: 변화 유발력과 실제적 효력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문자는 정보를 옮기는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현실 세계에 개입하는 힘을 지닌 물질적 현존이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예는 시내산의 돌판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출 31:18)은 단순한 서명이나 저작권 표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삶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심을 시각화한 증표였습니다. 돌판이 깨지는 것은 언약의 단절을, 새로운 돌판이 수여되는 것(신 10:2)은 관계의 법적 회복을 확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재앙의 말이 적힌 두루마리를 통째로 먹는 장면(겔 2:9-3:11)은 현대적 독서 개념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고대인의 관점에서 이는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신체가 신비적으로 연합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눈으로 읽고 지나치는 텍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 세포를 바꾸어 놓아야 하는 살아있는 에너지였습니다.
또한 민수기 5장에서 저주문을 물에 씻어 여인에게 마시게 하는 의식은, 문자의 형태를 빌려 시각화된 '하나님의 엄위하신 공의와 판결'이 인간의 신체 내부에서 직접 주권적 심판을 집행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자 문화 속에서 이스라엘은 글자의 자획을 경외하는 도상적(Iconic) 태도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문자가 담고 있는 율법의 세부 조항들을 밤낮으로 읊조리고 주석하며(시 1:2) 삶에 적용하려는 치열한 해석학적 분투를 동시에 수행했습니다. 그들에게 문자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세상에 물리적으로 심어놓는 재창조의 도구였습니다.
이름과 기념비: 불변의 증거로 존재를 고착시키다
문자가 가진 권능이 가장 첨예하게 작동하는 지점은 바로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 모티프(출 32:32-33, 단 12:1)에서 모세가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부르짖을 때, 이것은 데이터 삭제 요청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본질을 거두어 달라는 실존적 자청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유다와 요셉이라 쓴 두 막대기를 하나로 붙이는 퍼포먼스(겔 37:16-17) 역시, 기록된 이름이 흩어진 민족의 뼈대를 다시금 하나의 살아있는 몸으로 엮어내는 우주적 재창조의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신성한 문자들은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 존재했을까요? 고대의 기념비적 기록들은 종종 "대중이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초월적 목적을 가집니다. 히스기야 왕의 수도 공사를 기록한 실로암 비문은 암흑 같은 지하 수로 벽면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대중의 눈 판독용 안내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문은 존재해야 했습니다. 비록 인간 대중의 독해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신의 눈' 앞에 사건을 영구히 고착시키고 먼 후대의 도래할 자들에게 왕의 업적을 증언하려는 초시공간적 선포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돌에 새긴 율법(신 27:3) 또한 언제든 꺼내 보는 참고서가 아니라, 그 대지와 민족의 운명을 규정하며 "이 땅이 누구의 소유인가"를 온 우주에 선포하는 변치 않는 법적·영적 기념비였습니다.
나가며: 냉장고가 아니라 언약의 식탁
성경은 필요할 때 잠시 꺼내 쓰고 다시 닫아버리는 '정보의 냉장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숨결이 물질화된 거룩한 생명력이며, 인간의 역사 속에 틈입한 거대한 사건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성경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사냥하거나 정보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텍스트 안으로 우리 자신이 걸어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가 베푸신 '언약의 식탁'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모세의 돌판이, 에스겔의 두루마리가 그러했듯이 성경의 문자들은 우리 지성의 지배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존재를 완전히 다시 빚어내고 깨뜨리는 살아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태도는 바로 이 문자 앞에서의 거룩한 경외심입니다. 성경을 펼치는 순간이 정보 검색의 조조함이 아니라, 나를 송두리째 바꾸시는 하나님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실존적 퍼포먼스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서기관이 갈대 펜으로 parchment 위에 Paleo-Hebrew(고대 히브리어 자음)를 쓰고 있다.
책상 위에는 '세페르'의 다양한 형태(도편, 돌판)가 함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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