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원칙 하나가 오늘 아침 내 눈길을 사로 잡는다.
100 - 1 = 0
이에 대한 해석과 응용은 매우 다양하게 펼쳐진다. 1이 무엇이냐에 대한 것이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얘기한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고 목표하는 모든 것을 가졌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그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얘기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베풀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사랑없이 베푸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을 잃어버린 소유는 허무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얘기한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가도 건강을 잃어버리면 일장춘몽이 되고 만다.
어떤 사람은 'detail'을 얘기한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제안서나 작품을 만들어도 사소한 디테일 하나를 잘못하면 전체의 가치를 망가뜨리고 만다.
어떤 사람은 '깨진 유리창'을 얘기한다.
'나 하나 쯤이야...' 하면서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그 거리는 완전히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
유리창 하나가 깨진 것을 방치하면 그 건물이 금방 폐허가 되어버리듯이.
어떤 사람은 '관계상의 실수 한방'을 얘기한다.
100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삐끗하면 끝장이 나는 연인관계나, 인기스타나, 정치인 등이 있다.
어쩌면 사람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이나 상황에 따라 그 1은 다를 수도 있겠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것...그것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이항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0 + 1 = 100 은 성립될 수 있을까?
위에서 말한 어떤 것은 그래도 맞아 보이고, 어떤 것은 맞지 않아 보인다.
하나 하나의 디테일이 중요하지만, 그 하나의 디테일이 전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건강이 중요하지만,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젊은 연인에게는 그 하나면 될 것 같은 확신이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부모는 '사랑이 밥먹여 주느냐?'는 확신을 갖고 그들의 결합을 말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로 그 하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내게 남아 있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갖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하고 찬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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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00 - 1 = 0 이 어디에서 기원했을까?
내 생각에는 신약성경의 선한목자 얘기가 그 산식의 기원이라고 본다.
저녁에 양떼를 몰고 우리로 돌아온 목자가 자기 양 100마리 중에서 한 마리가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아흔아홉마리를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먼길을 밤새 찾아 나서, 마침내 그 양 한마리를 어깨에 이고 우리로 돌아온다는 비유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100-1=0에서의 1이 창조주 하나님께는 바로 '나' 요, 바로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라는 사실이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 온다. 나 하나 정도 있으나 마나...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내가 아니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는 이 소중한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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