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보고 자기만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것이 교만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낮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교만과 겸손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허울뿐인 신앙인의 대표 격으로서 결코 좋게 간주되지 못하는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 안에서 자라나고 살아오면서 귀가 따갑게 들어온 얘기다.
그러나, 내가 비굴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겸손한 것이 아니라 비천한 것은 아닌지... 헷갈릴 때도 있고, 자존심과 교만 사이에서 방황할 때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겸손과 교만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겸손이 무엇인가?
겸손(謙遜, humility)은 사전적으로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신(마음)을 낮추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높이는 욕심 없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유교문화권의 우리나라에서 나는 교회 밖에서는 겸손에 대하여, 관용(寬容)·부쟁(不爭)·무욕(無慾)·허정(虛靜) 등과 같은 개념으로서, 개인의 도덕적 삶을 위한 수양의 덕목으로 이해하고 중요하게 배워왔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겸손은 훨씬 '종교적'이다.
기독교에서의 '겸손'은 자신의 죄성과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세이다. (눅 15:17-21; 18:13-14).
특히,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분은, 하나님이시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빌 2:5-8).
그러기에, 겸손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요구되는 신앙 덕목이 된다 (신 8:2; 대하 7:14).
나아가, 신약에서 겸손은 구체적인 생활 철칙이 되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 또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8복 가르침은 우리가 삶에 있어서 겸손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이에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에 의하면, 겸손/겸허는 어떤 영적인 상태나 태도가 아니라 '사랑의 생활'을 가리킨다고 한다.
겸손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대척점에 있는 '교만'을 살펴보자.
교만이란 무엇인가?
교만(驕慢, arrogance)은 스스로 잘난 체하며 겸손하거나 온유함이 없이 건방지고 방자함을 이르는 말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자기를 최고로 자랑하는 행위를 일삼는다.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의 영향도 크게 받은 우리나라에서 교만은, 남을 깔보고 자신을 높게 평가하여 반성함이 없고 쉽게 우쭐거리는 마음을 뜻한다. 특히, 교만할 만(慢) 자는 불교에서 온 말로서, 산스크리트어의 마나(Mana)를 번역한 것이다.
석가가 보살들에게 지키도록 한 48 경계(輕戒, 중계보다는 가벼운 경계)에도 교만에 관한 계(戒)가 2개 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법문을 청하라(驕慢不請法戒)’와 ‘교만한 생각으로 잘못 일러주지 말라(驕慢僻說戒)’가 그것이다. 이는 법사(法師, 신자의 지도자 또는 아직 정식 승려가 되지 않은 출가자)가 비록 젊고 신분이 보잘것없으며 용모가 온전치 못하더라도 학덕이 있고 경과 율을 잘 아는 지혜로운 자라면 그를 무시하지 말고 배워야 하며, 법사는 경(經, sutra, 붓다의 설법)과 율(律, vinaya, 악행을 제거하는 계율)과 대승법을 잘 안다는 것을 내세워 처음 배우는 보살(菩薩, 보디삿트바 마하삿트바 Bodhisattva Mahasattva, 불타가 되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고된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경률의 깊은 이치를 묻는데 교만한 생각으로 잘 가르쳐 주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뜻으로서, 배우는 자의 자세와 가르치는 자의 성실함을 위해 교만을 경계하고 있다.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교만한 자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선택한 수단을 더 신뢰하는 자를 가리킨다. 특히, 성경에서는 교만을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최고의 범죄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시 18:27; 잠 29:23; 렘 50:31).
오만(傲慢). 거만(倨慢). 교만하다가 실패한 자들의 사례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①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방해한 바로 왕(출 5:2) ② 에스더 당시 유다 민족을 전멸시키려 했던 바사 제국의 총리 하만(에 3:5) ③ 신(神)으로 자처하다 네부카드네자르 군대에게 멸망당한 두로 왕(겔 28:2-9) ④ 이스라엘 멸망을 기뻐하며 자만하다 멸망한 모압인(렘 48:29) ⑤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다 정신 질환에 걸려 짐승처럼 행세한 바벨론 왕 네부카드네자르(단 4:30) ⑥ 성전 기물로 유흥을 베풀면서 자신을 높이다 나라를 잃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단 5:23) 등이 있다.
교만의 핵심은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 없는 듯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사람에 대해 자기를 높이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그것이 교만이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고 자기의 공로로 삼거나 은혜와는 관계없는 맥없는 신앙생활을 겨우 지탱해 나가는 그것이 교만이다.
C.S. 루이스는 "교만한 자는 항상 밑을 보고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느라 바빠서 자기 위에 계신 분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홍 목사의 책을 인용하면, 교만의 반대는 자기 경멸이나 자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는 것, 그분 앞에 서는 것, 바로 그것을 기독교에서 우리는 '겸손'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인정을 넘치도록 받는 사람은 더는 인간의 박수갈채와 인정에 예민해지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영혼의 상처가 치유되고 생각이 건강해지고 재능이 아름답게 쓰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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