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8. Day6. 깨어진 그릇 (마가복음 12:41~44) 김태훈 선교사
김태훈 선교사
현) 에티오피아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
현) 국제 보건 의료 전문가
전)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외과 전문의
김태훈 선교사는 우리나라의 정부 사업으로 에티오피아에서 보건의료 사업 총괄했으며, 아내 김희연 선교사는 에티오피아의 빙햄 아카데미(Bingham Academy)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동영상]
(자막) 김태훈 선교사 -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 병원 외과 전문의, 서울 아산병원 소아외과 교수. 그는 외과의사입니다.어느날 한국을 떠나 선교지로 가기로 결정하자 사람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태훈) 그때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 저에게 들린게 ' 네가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겠냐'는 음성이었어요. 그렇게 대답을 했죠. 기도같이 주님이 함께하신다면 어디든 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희연) 예수님이 저의 마음에 확신을 주셨고 그 결정에 너무 기뻣기 때문에 어느 길로 가든 돌아가는 것 같아도, 거꾸로 가는 것 같아도 예수님만 따라가면 하나님께로 가는 그 길이니까.
(태훈) 예수님이 떠나시고 나서 본인이 하셨던 일을 할 수 있는 제자들을 키우시는데 집중하셨던 것처럼 현지인 의사들과 직접 피부를 맞대고 그 사람들을 양육하고 그 진료를 할 수 있게 한명, 두명, 세명을 키울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맞는 길이 아닌가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지금도 확신하고 있어요.
(희연) 어느날 남편의 몸이 불편한 것을 발견을 했고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다가 통증이 발에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한국 가서 치료를 좀 받아야겠다해서 한국에 갔는데 병원가서 파킨슨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태훈)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저희가 아이도 셋이나 있고 하다 보니까 이제 가장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희연) 실질적인 고민들이 사실은 많이 됐죠 그러데 너무 그 생각하는 것 자체가 괴로운거예요.
(태훈) 굳어버린 몸과 절망적인 생각때문에 더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막다른 곳에 서 있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새 길을 보여주셨습니다.아침에 산책을 갔는데 소나기가 쏟아지는 거예요.나무가 막 우거져있는 곳이 있어서 너무 비가 갑자기 오니까 거기에 잠깐 들어갔었죠.
"어휴 잘 됐다" 하고 서 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비가 쏟아진다고 집으로 가지 않아도 돼'라는 마음을 주시는거예요. 그래서 갑작스러운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해서 (한국으로)돌아갈 필요없고 그때 피할 수 있는 길을 내시겠구나.
(희연)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환상을 보여주시는거예요.제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기같이 정말 아기처럼 예수님 품에 이렇게 안겨가지고 예수님이 어디론가 걸어가시는 환상을 보여주셨어요.예수님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있었고 저는 너무 행복하게 안겨서 가는거죠.그때 다시 알게 됐어요. 아, 선교가 내가 하는게 아니었구나 진짜로. 나는 그냥 예수님 품에 안겨있는 축복을 누리는 거고 그 힘든 길을 가는 거는 예수님이 가시는 거구나.
(태훈)어떨때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몸이 잘 안움직여질 때가 있어요.그러면 저도 뭐 두려움이 확 몰려올 때도 있죠.아 이렇게 점점 더 몸이 굳어가는 거구나. 없는 것들 세상에 천한 것들을 하나님이 더 기뻐사용하시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기가 더 편하니까. 저도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더 드러내기 편한 사람이 돼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나레이션) 하나님이 쓰시기 편한 그릇이 되어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가는 길. 병들고, 외면당하고, 추방당해도 908명의 온누리 선교사님들은 오늘도 선교의 길을 걸어갑니다.
[시작 기도]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종을 이 자리에 세우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족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주님이 주인공이심을 고백합니다. 불과 같은 주의 임재를 기도합니다.
[처음 떠난 선교지 남수단에서 에티오피아까지]
나는 에티오피아에서 살고 있는 김태훈이다.
2013년 7월에 에티오피아로 이주했다. 오늘도 '주님이 인도하는 곳은 어디든 가겠다'고 '무서운(?)' 찬송을 했는데 아무렇게나 함부로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남수단은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이자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하던 고(故) 이태석 신부께서 사역하시던 곳이다. 나는 거기에서 맨 먼저 사역을 시작했다.
선교를 떠나자는 내 얘기에 아내는 '아프리카만 빼고' 어디든 가자고 했었는데, 그로부터 2~3주 후에 아프리카에서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처음엔 남수단에서 우리나라의 정부 보건 사업을 진행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에티오피아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나는 남수단을 왕래하며 일을 했다.
그러다가 8개월 후에 남수단에 내전이 터져서 정부 보건 사업이 중단되었다. 그래서 가족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다행히 아내인 김희연 선교사가 에티오피아의 한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어서 비자가 해결되었고 계속 에티오피아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남수단은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나라로서 수단의 일부였으나 오랜 내전 후에 2011년 남수단으로 독립했다.)
지난 5년간 지내온 에티오피아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는 무척 다른 면이 많은 곳이다.
일단 에티오피아는 인구 1억명이 넘는 나라다. 남한의 13배 크기다. 해발 2300미터의 고지대여서 여름에도 전기장판을 켜고 살고 있다.
과일도 별로 없다. 아프리카이지만 사파리 동물도 없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전 세계에서 대사관이 세계3위로 많은 도시다.
한국에서 비행기 직항편이 있어서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6.25때 우리나라를 피흘려 싸우며 도와준 나라여서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한다.
[파킨슨씨 병을 앓게 되다]
앞의 영상은 2016년 12월에 촬영된 것이다.
2013년에 아프리카로 갔는데 2014년 가을에 파킨슨씨 병을 진단 받게 되었으니, 한국을 떠난지 불과 1년 반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수단에서 사역할 때, 말라리아에 심하게 걸렸었다. 병이 낫고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그 이후로 몸이 약간씩 불편하다는 걸 느꼈다.
그냥 몸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는데 그때는 몸이 덜 회복되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몸이 불편해지니까 자연스럽게 걷지 못해서 걸음걸이도 바뀌고 발등이 심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통증이 심해져서 1-2주 정도 치료를 할 계획으로 한국에 왔는데 병원에서 자세와 동작이 이상하다며 몇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에티오피아에 간지 1년 3개월 만이었다. 이제 겨우 자리 잡고 일이 시작되고 있는 시기였는데 당황스러웠다.
이 병은 치료제도 없고 원인도 모르고 진행 속도도 사람마다 달라 예측할 수도 없어 하늘만 보게 되는 병이었다.
부모님들도 아예 한국으로 들어와서 병 관리를 하라고 하셨다. 걱정 속에 아내와 나는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침에 산책을 갔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수풀처럼 나무가 우거져 있는 곳이 있어서 잘 됐다 생각하고 비를 피하려고 들어가 있는데 하나님이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굳이 꼭 집으로 돌아 갈 필요는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감동을 받았다. 그때 생각했다.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나에게 피할 길을 내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50일 만에 에티오피아에 돌아왔는데 공항에 내린 순간 너무 평안하고 감사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하나님이 여기 있기를 원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른 곳으로 가라는 확신이 없으면 고민 없이 에티오피아에 있기로 했다.
또 서울에서 어머니와 함께 외래진료를 갔었는데 어머님이 의사에게 “선생님, 우리 애 돌아와야 하죠?’하고 물었는데
의사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거기나 여기나 똑같아요. 이 병은 약 먹는 것 밖에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또 그 때 아프리카에 있던 아내도 이 길이 우리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길이라는 것을 환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기처럼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데 예수님이 어디론가 걸어가시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아내는 행복하게 안겨서 가는 장면이었다. 아내는 그날부터 너무 평안해졌다.
병을 기뻐할 수는 없지만 모든 상황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우리는 함께 가질 수 있었다.
[요긴한 그릇]
원래부터 내 화두는 '주님이 필요하실 때 사용되는 그릇이 되는 것'이었다. '주님의 요긴한 그릇'이 되는 것이었다.
주님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품었다.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처럼 주님이 '너는 내가 택한 그릇이다.'라시며 나를 불러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파킨슨씨 병을 진단 받은 후에는 '이제 하나님이 나를 더욱 편히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드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잡지 기사 일부)----+--
어떨때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몸이 잘 안움직여질 때가 있어요.그러면 저도 뭐 두려움이 확 몰려올 때도 있죠. 아 이렇게 점점 더 몸이 굳어가는 거구나.
없는 것들 세상에 천한 것들을 하나님이 더 기뻐사용하시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기가 더 편하니까.
저도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더 드러내기 편한 사람이 돼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
[하나님이 쓰시기에 편한 그릇]
이제 6년차 선교사인데 내가 이룬 업적은 아직 별로 없다. 원래 나는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해왔는데 특히 간이식을 하는 의사였다.
그러한 배경 위에 나는 내가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를 원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더 낮추셨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나갈 때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한국 국제 보건의료재단)의 의사로 나가서 5년 동안 일을 했다.
아내는 선교사님들이 70년 전에 세운 학교(빙햄 아카데미)가 있어서 거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전기나 물이 끊기는 일이 다반사라 힘들고 짜증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풍족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작은 일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주는 곳이라서 그런지 온 지 1년 만에 우리 첫째 아이의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
“엄마,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뭘 잘하면 친구들이 시기, 질투하고, 뭘 못하면 왕따시켰는데도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선생님이 날 사랑하는 걸 알겠어.”
여기 오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자비량으로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 주신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내게 에티오피아에서 어떻게 아이들 학교를 보내냐고 걱정하는데 나는 오히려 '아이들을 한국에서 어떻게 학교를 보내니?'라고 묻게 된다.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더 걱정된다.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밝고 겸손을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좋다.
안식년이 되어 한국에 나와 있을 수 있다는 말에도 세 아이 모두가 공히 에티오피아의 학교를 떠나기 싫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내 이야기는 기승전 아프리카이다.
[깨어진 그릇]
아프리카에 온 지 만5년이 지났을 때 그 기관을 나오라는 마음을 주님이 주셨다. 바로 금년 3월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에티오피아 보건부에서 무보수 고문관이 되어 살고 있다.
에티오피아 보건부는 너무 일디 더디게 진행되어 심한 좌절을 느끼고 있다.
지난 6개월만에 담당 국장이 2번씩이나 바뀌었고 내가 속한 보건부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그냥 책상에 앉아서 별 의미 없는 일들을 하는 것일 뿐이다.
알파벳이 100개가 넘는 에티오피아 현지언어의 철자가 하나 다른 것 때문에 보건부 추천 서류를 6번씩이나 다시 진행해야 하는 터무니 없는 상황도 겪는다.
이러한 내 하소연에 대해 주님은 '2000년 전에 나는 어떻겠니?'라고 답해주셨다.
'깨어진 그릇'은 지난 주 예배 때의 설교 제목이다.
'하나님께 정말로 요긴한 그릇이 되고 싶어 이 곳에 왔는데 저는 여기에서 깨어진 그릇과 같이 느껴집니다.'고 주님께 물었다.
이 질문에 하나님이 이레적으로 빠른 응답을 주셨다. '네가 깨어졌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용하는 것이란다.'고 응답을 주셔서 많이 울었다.
우리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삶을 살 때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질문이 넘치는 나는 주님께 다시 '깨어진 그릇은 쓸모가 없는 것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그런데 주님은 '너의 깨어짐 때문에 나는 십자가에 달렸어. 네 죄악으로 인해 내가 채찍을 맞았어...'라고 답하셨다.
주님은 나의 깨어진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스스로 겪으신 눈물과 아픔으로 어루만져 주셨다.
'그렇지만 주님 저는 여전히 주님께 드릴 것이 없어요.' 나는 여전히 주님께 물었다.
그 때 오늘 본문 '과부의 두 렙돈' 얘기의 성경 말씀을 접하게 된 것이다.
불과 우리 돈 1000원에 불과한 두 렙돈이었지만,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내가 너를 받았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같은 마음을 느꼈다.
처음 내가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여러 대학 교수 자리가 제시되었다. 아니 강력히 추천되었다.
그래서 나는 감사하며 선교는 정말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선교의 자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늘 바쁘게 사역하던 내가 그렇지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하지만, 하나님이 '네 마음을 받았다.'고 응답해 주시는 것이 내게 큰 격려와 도전이 된다.
이렇게 크게 내세울 것 없이 지내는 내게는 오늘 특별히 말할 것이 없는데, 오늘 강사로 만드신 것은 다른 군더더기는 빼고 오직 하나님만 얘기하라는 것 같다.
기드온도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용사들도 별로 무장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들어 사용하신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주께서 부르신 그 자리에 있습니까?
(호 8: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내 마음과 같다. 나는 그릇이기는 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이 된 것 같을 때도 있다.
(삼상 16:6~7)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무서운 말씀이다. 하나님이 '나는 이미 그를 버렸노라'라고 하시면 어찌하겠는가?
(출 40:36~38)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나는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른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길을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광야에 길이 없듯이 우리 인생에도 길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어느 길을 따라야 할까? 죄인의 꾀를 따르면 안 된다.
길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갔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구름 기둥 불 기둥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정답이다.
나는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나, 주님의 구를 기둥이 떠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다.
(시 31:12~19)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우리는 깨진 그릇이다. 그러나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지요.
우리 집에 큰 개 한 마리가 찾아와서 집 앞에서 살게 되어 우리가 집 안으로 들였다. 그런데, 치안이 불안한 에티오피아에서 큰 개 '진짜' 덕분에 우리는 많은 덕을 보았다.
이 모습 저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족을 지켜주고 있다. 아이들도 신앙 가운데 잘 자라고 있다. 모두 은혜로 살고 있다. 전기가 자주 끊겨 작은 불빛에 의지해야 하지만 아이들은 공부하며 잘 자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순종하여 따라가면,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온 하인들만이 알 수 있었던 은혜를 우리 모두가 느끼게 될 것이다.
여러분 모두 에티오피아로 오세요.
[CCM '찢어진 그물' sung by 윤지은]
그 날처럼 잔잔한 바다 내 전부를 이 배에 실었던 그 때
그 날과 똑같은 내 모습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네
그 누구도 확신치 못할 바다 위에 나를 싣고 가던 그 때
내 전부를 당신의 길 위에 드리겠다던 맘 모두 무너진 순간
그 어느 날 내게 들려온 너른 바다를 울리는 목소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
찢어진 그물과 잠겨버린 배
그것이 나입니다.
나는 주 당신을 감당치 못하니
주여 날 떠나소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전부를 당신의 길 위에
드리겠다던 맘 모두 무너진 순간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
찢어진 그물과 잠겨버린 배
그것이 나입니다
모두 버려두고 따라갑니다
당신 가신 길이라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찢어진 그물과 잠겨버린 배
그것이 나입니다
모두 버려두고 따라갑니다
당신 가신 길이라면
[기도 인도.... 김은호 목사님]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자...라는 말이 모든 일에 잘 되고 형통한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 견디고 오래 참음도 중요한 간증이 된다.
깨어진 그릇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인내하며 참고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이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간증이 된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 하네'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었고 주신 소명을 따라 갈 때라도 내 인생 가운데 화려한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깨어진 그릇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며 예배하고 순종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예배하며 이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러한 신앙의 고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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