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이지웅 목사
현) The Bible Ministry 대표
전) 예수전도단 스위스 로잔 성경연구학교 학교장
전) 제주 열방 대학 말씀 사역 위원회 위원장
[들어가는 말... 하나님 나라,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그리고 최고의 선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의 성경 각각은 그 나름대로의 각각의 메시지와 주제를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떤 성경이 하나 빠져버리면 그 성경과 관련된 주제를 놓쳐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개념은 오직 히브리서에만 나오고, 히브리서 외에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연결짓는 내용이 없어 그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반면에, 어느 주제들은 모든 성경에 걸쳐 다 다루어진다.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어서 도저히 놓쳐서는 안되는 것인데, 그러한 주제들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하나님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받게 되었다. 그 역할과 더불어 다른 어느 나라도 받지 못했던 선물과 축복도 이스라엘은 동시에 받았다.
예를 들면, 성막, 성전, 율법 등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기적이 아닌) 민족이 공동으로 받은 기적들 즉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등 수많은 선물을 받았다.
또한 이스라엘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들도 주어졌다. 모세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게 보내졌다. 심지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마저도 이스라엘의 혈통을 통해 이 땅에 오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여러 선물들 중에서도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이스라엘 백성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관점을 반대로 바꾸어서 생각한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장 주고 싶으셨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무엇인가 기대하고 원하셨던 것, 소원이 있으셨던 것 같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 1순위...십계명 제1계명]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다가 출애굽을 하게 되었다. (그 430년간 전체가 노예생활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200년간 이상의) 종노릇 즉 노예 생활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내일을 꿈꿀 수 없게 했다. 그야말로 처참하고 비참한 삶이었다.
그런데 그 비참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은혜가 주어졌는데, 애굽에서 벗어난 직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그것도 '친필'로, 10개의 요구사항을 직접 적어 주시며 이스라엘에게 꼭 지키기를 명하셨다. 바로 '십계명'이다.
그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며,그 중에서도 첫번째 계명은 가장 긴급하고 가장 원하시는 것이었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출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의 처음은 이렇게 하나님 자신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한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그 처참한 삶으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신 바로 그 하나님의 계명이었다.
본문 3절이기도 한 십계명 제1계명은 기독교인들 모두가 외울 것이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어떤 사람은 '두지 말라' 대신에 '섬기지 말라'로 외우기도 한다.
성경에는 십계명이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이렇게 두 곳에 나오는데 어느 곳에도 '섬기지 말라'로 씌어진 곳은 없다. 모두 '두지 말라'로 되어 있다.
(신 5: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섬기지 말라'로 외우고 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분들이 예전 개역성경책의 앞표지와 뒷표지에 있던 십계명을 보고 외웠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한다. 그 때 표지의 십계명에 '두지 말라'가 '섬기지 말라'로 잘못 옮겨졌던 것이다. 오늘 이후에는 이 오류를 다시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섬기지 말라'가 아니라 '두지 말라'였기 때문이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이해하기 쉽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해석하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지 말라'는 표현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두지 말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앞의 말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의 히브리어 원어는 '이흐예 레카 엘로힘 아헤림 알 파나이'이다.
여기에서 '나 외에'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알 파나이'는 '하나님 얼굴 앞에, 하나님 얼굴 곁에, 하나님 얼굴과 나란히'란 뜻이다
('파나이'는 '얼굴'이라는 뜻의 '파님'에서 나왔으므로, 알 파나이는 '내 얼굴 앞에'가 된다.)
따라서 3절은 '너는 나 외의 다른 신들을 내 얼굴 앞에 두지 말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내 얼굴 앞에는 너만 있게 하고, 네 얼굴 앞에는 나만 있게 해라. 내 얼굴과 네 얼굴 사이에 다른 존재가 끼어들지 못하게 해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들 중에 거하려고...그냥 같이 있고 싶다...사랑]
(출 29: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유는 '그냥 같이 있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신 백성이 강력하거나 부요하거나 문명이 최첨단으로 발달한 백성이었다면 오랜 종노릇으로 자존감이 깨어진 이스라엘 백성보다는 오히려 '애굽'이 훨씬 더 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냥' 그들과 함께 있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 연결된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것이다.
(신약성경의 변화산의 이적에서 예수님은 문득 나타난 모세, 엘리야와 함께 이갸기하시는데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 있다. 눅 9: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여기에서 '별세'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exodus'로서 '떠난다'는 뜻에서 죽음/별세라는 뜻도 되지만 '출애굽'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희생이 되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신 것과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통해 애굽의 종노릇에서 해방된 것을 이 엑소더스(exodus)라는 말로써 연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이 목사님의 다른 강연에서 정리한 것인데, 또한 십계명(율법)이 출애굽(구원) 이후에 주어진 것으로부터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되지는 않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도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이유와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
즉,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도 없기를 바라신 것이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있고 싶으신 것이다.
[엄마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생각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또 장성해서도 외국에서 많이 살았기에 그 애틋함으로 우리 어머님이 나를 '광적으로' 좋아하신다.
제주 열방대학 사역을 하는 동안 1년에 120번 정도로 자주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언제나 일정이 빠듯해서 불과 서울 교외에 사시는 어머님을 제대로 찾아뵙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상경할 때마다 전화로 제주로 돌아가는 비행기편을 확인하셔서 공항으로 나오셔서 잠시나마 아들을 만나보시곤 한다. 70세도 훨씬 넘으신 분이 편도 1시간 왕복 2시간의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나오신다.
몇 년 전에는 공항에 오시다가 버스의 급정거로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으신 적도 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님께 나오시지 말라고 하지만 엄마는 기어이 나오신다. (나는 47세인데, 아직 '엄마'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공항에 가면 자동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어머님을 찾는 것이다. 이 못난 아들의 얼굴이 무엇이라고...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그 사랑을 통해서.
나는 모태신앙이며 평생 우상을 숭배한 적은 전혀 없지만, 내가 십계명 제1계명을 충실히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제1계명은 단순히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지내고 싶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들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서 공항으로 어렵게 나오신 우리 어머님께 용돈만 드리며 사랑의 교제 없이 그냥 돌아가시라고 한다면 나는 큰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마다 하나님께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 주일에 헌금만 하고, 교회 출석만 하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 없이.... 하나님을 그렇게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을 추억하다... 당신만 있으면]
사랑을 해보았는가?
나와 아내가 같은 교회에서 자라났고 내가 먼저 아내를 짝사랑했다고 하자. 주보에 대표 기도자로 짝사랑하는 그녀의 이름만 올라가도 그 주보 자체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고백을 하고 내 사랑이 받아들여졌을 때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했고 밤에 헤어질 때는 집에도 데려다 주었지만 매일의 작별은 너무 아쉽고 애틋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끊임 없던 대화들... 헤어지고 나면 바로 전화를 해서 아쉬운 마음을 계속 나누곤 했다.
이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상황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하던 두 남녀의 교제가 깨지면 어느 쪽이 더 힘들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더 힘든 것은 남녀 막론하고 '더 사랑한 쪽'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이 깨어졌을 때도 더 힘든 것은 더 사랑한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관심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주실 정도로 힘들어 하셨다.
헌금... 돈만 내면 되잖아...? 그러나, 하나님은 돈을 구걸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짜로 원하시는 것은, '이제 진짜 내 얼굴 앞에는 너만 있어라. 다른 것들이 그 사이에 있게 하지 마라'이다.
얼마 전 할렐루야 교회 집회에 갔다가 커피숍에 갔는데, 40분 동안 핸드폰만 하고 있는 두 남녀를 보았다. 그래서 두 남녀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 왜냐 하면 사랑하는 사이는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물으신 것은, '너 돈 좀 있니? 너 공부 어디까지 했니? 넌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니?' 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사이에 너만 있게 해라'가 원하시는 것이었다.
[청년 때의 순정과 신혼 때의 사랑, 그 때를 기억하라]
어느 날 하나님이 선지자 한 분을 부르신다. '내 백성에게 가서 이렇게 전해라...' 바로 예레미야였다.
(예레미야 2:1~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그 신혼의 사랑, 청년 때의 인애를, 순정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 사랑과 인애의 신혼과 청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의 어느 때일까?
바로 이어지는 하반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광야에서의 40년'을 신혼의 때로 기억하고 계신다.
그 40년 기간 동안이 그렇게 아름다운 때였을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던 때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그 반복된 불평과 원망과 삿대질을 하나님은 다르게 기억하고 계신 것을 우리는 본문에서 보게 된다. 하나님이 잘못 인식하고 계신가? 너무 오래 사셨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도 바로 알고 계셨다. 광야를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라고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예레미야 2: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또한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처럼 광야가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그늘이 없고 물이 없어 사람이 다니지 않고 거주하지 않는 곳' 즉 살만한 곳이 아닌 것을 알고 계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과 불평도 다 아셨다.
그런데,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아무 것도 기댈 것이 없는 그 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전부였기에 투덜대면서도 구름기둥을 따라 순종했다.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짐을 꾸려 따라 나섰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때를 신혼의 때로 기억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신다.
우리 신앙 생활에서도 하나님과 그러한 뜨거운 첫사랑을 나누었던 때가 있지 않았는가?
예전 교회당 바닥에 있던 자주색 방석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가? (대개는 그 방석에서는 퀘퀘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차가운 새벽 교회당 마룻바닥에 그 방석을 깔고 앉아서 기도하던 때,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좋고 '주여~'라고만 해도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뜨거워지던, 예수님이 너무 너무 좋았던 그 때를 모두 갖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일반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신대원 시절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설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이 너무 좋아서 눈물을 흘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찬양을 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 펑펑 울면서 감격했던 벅찬 감정은 이루 표현할 수도 없었다.
[옛 이야기... 은혜에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함]
그런데, 예레미야서 2장의 그 내용의 비극은 바로 그 좋았던 때가 모두 '과거(The Past)'라는 것이다. 아니, 성경에 언급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회상은 모두 예외 없이 다 과거얘기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그 과거만을 말씀하실까봐 걱정이다.
나는 은혜에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다. 은혜에 길들여지는 것이 두렵다.
예전에는 기도 제목 10개 중에 하나만 응답받아도 간증하고 싶어 안달했는데, 이제는 기도 제목 대부분이 응답받아도 무덤덤해지지 않았는가?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다윗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이 쏟아졌을 때, 이렇게 기도하며 고백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생각해주시고 돌보십니까?
또 아래와 같이 기도했다.
(대상 17:16~17)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셨나이다.'
다윗의 원래 신분이었던 목동은 이스라엘에서 매우 비천한 것이었다. 그의 집안도 그러했다. 다윗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졌을 때 이렇게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 감사하고 기도했다.
혹시, '내가 지금까지 교회에 갖다 바친 돈이 얼마인데, 내가 주를 위해 헌신한 것이 얼마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혹시, 옛날에 '하나님 이것만 해주시면....'하며 드리던 기도가 생각나지 않는가?
나는 아들만 셋이 있는데, 한 아이가 쓰러져 거품 물고 눈이 돌아간 적이 있다. 뇌파를 2번이나 찍었는데 명확한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그 아이를 일평생 책임질 각오를 가졌었다. 그런데, 1개월 뒤에 다시 뇌파를 찍었는데 깨끗이 나은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감격이 얼마나 컸는가?
그러나 그 기도가 응답되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의 얼굴과 우리 얼굴 사이에 아무 것도 두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이 분이 하나님이시다.
(신명기 8:11~18)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내가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얘기하는가?
맞다. 당신이 열심히 산 것 맞다. 그러나 그 열심만으로 여기까지 왔는가? 열심히 사는 것은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은혜라]
찬양을 하나 준비했다.
예전에 제주 열방대학에 해외에서 오래 목회하시고 은퇴하신 목사님 한 분이 공부하러 오셨다. 왜 다시 공부를 하려 하시는지 여쭸더니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해서'라는 것이었다.
그 따님 조은아 선교사도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며 노래로 만들었다. 바로 조은아 작사, 신상우 작곡의 '하나님의 은혜'란 곡이다.
나를 지으신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하시니
나의 나된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길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기도)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질문하셨던 것처럼 물으신다면? '내게 바라는 것을 무엇인든 말하면 다 말해라'
우리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더 갖고 싶어요.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요. 하나님을 더 원해요. 은혜에 길들어지고 익숙해지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기에 우리는 돈도, 직업도, 건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번만 오늘 밤 우리를 테스트해주세요.
우리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마음을 받아주세요. 우리 마음과 시선과 관심을 다른 것에 빼앗기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해주세요.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해주세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두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첫사랑이 회복되게 하시고, 그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게 하소서.
우리가 연약해서 혹시 넘어질지 모르지만, 꼭 기억해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기도 인도 by 김은호 목사님)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지셨는데, 우리에게 원하시는 최고의 것은 바로 '하나님 얼굴 앞에 우리만 있게 하라. 그 어떤 것도 그 사이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결단하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한 사귐이 회복되기를 기도하자.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자. 예수 안에 거하자. 난 예수가 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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