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는 한 해에 6500명씩이나 신입생으로 뽑는 학교를 다녔다. 불과 5~6년만 지나도 3만명 이상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반면에, 나는 내 고향 익산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내 아버지와 숙부들이, 그리고 형과 누나들이 모두 졸업한 학교이다. 지난 100년이 훌쩍 넘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의 누적 졸업생은 약 3만3천명에 불과하다. 그저 작은 지방 소도시의 오랜 학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유년이 거기에 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학교 운동장에는 여느 학교처럼 충무공 동상과 책 읽는 소녀상이 있기도 했지만 독특한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의로운 김석준 군의 비'였다.
정작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고 그냥 자랑스러운 선배님인가보다...했는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40년이 훨씬 더 지나도록 남아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1972년이었으니 김석준 군이 만경강 하류에서 낯모르는 어린이 2명을 살려내고 기진하여 죽은 1966년 이후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았던 때에,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던 때였기에 더더욱 당시에 많이 언급되었고 글짓기의 주제가 되곤 했던 듯하다.
아뭏든 지난 40여년간 이리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김석준'이라는 이름을 익숙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리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또 하나의 명사는 '정화'라는 말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즉 10.26 이후의 사회 정화(淨化)와는 매우 다른 문맥이었음을 열 살 남짓되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익히 잘 알 수 있었다. 이 정화는 한자로는 정화(精華) 이다.
이리초등학교 교가의 마지막이 '정화의 요람'으로 끝난다.
여기에서의 정화(精華)는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알짜라는 뜻인데, 그 의미를 살려 심성이 맑고 깨끗한 어린이들이 뛰어 놀며 공부하는 곳, 즉 학교를 표현했다고 동창회에서는 얘기한다.
또는 정수가 될만한 뛰어난 부분이라는 뜻도 있어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는 명문 학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아뭏든 어린이의 이름이 노정화, 김정화... 등인 경우 이리초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매우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이러한 멋진 표현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이리초등학교 교가는 1903년에 전주에서 태어나서 1987년에 작고한 시인이자 교육자인 김해강(본명 김대준)이 작사했다. 그는 일제 때 전주사범을 졸업했고 신경향파의 문단활동도 했으나 일제 말기 변절하여 일왕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태양'이라는 시를 쓰기도 해서 친일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 여파인지 해방 이후 절필하고 있다가 50년대에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과거와는 달리 매우 서정적인 시를 주로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때부터 이리초등학교 교가 뿐만 아니라, 전북 도민의 노래, 전주 시민의 노래 등을 작사하기도 했다. 그의 친일 행적이 밝혀진 후에 그가 작사한 노래들이 중지되거나 교체되고 있기도 하지만, 나는 이리초등학교 교가의 경우는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작곡자 최영환도 전주사범 출신의 교육자로 알고 있다.)
이리초등학교의 교가...하면 떠오르는 표현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당연히 교가의 첫구절이다.
'배산에 피는 구름 마동에 뜨는 해~' 이리 또는 익산을 고향으로 한 사람들에게 배산은 한민족의 백두산과도 같지만, 주현동에 살던 나로서는 마동이 교가에 나오는 것이 내심 서운했지만, 학교가 위치한 곳이 마동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 방법은 김해강의 전형적인 접근이었던 것 같다.
그가 작사한 전북도민의 노래를 보면, "노령에 피는햇살 강산은 열려~"로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둘째는 '잊었던 옛 모습을 도로찾은 그 자랑~'이었다.
언제를 얘기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아마도 일제 시절,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에 의해 일본어로 수업을 하던 그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뭏든 어린 시절에도 교가를 부를 때마다 막연하게 '아련한 아픔을 느끼며 또 벅차오르는 가슴'을 불러일으키던 구절이었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동창 친구인 장두영 군이 찍은 사진 몇 장 때문이다. 그로 인한 오늘 내 생각의 흐름의 마지막은 '교훈(校訓)'이다.
내가 입학할 때는 여산 권갑석 교장이 계셨고, 졸업할 때는 김갑배 교장이 계셨다. 권교장 선생님은 서예의 대가셨는데 내게는 무척 어려운 분이셨다. 반면에 김갑배 교장 선생님은 상대적으로 젊은 분이셔서 교직에 계신 아버님의 심부름을 교장 사택에 자주 가곤 했는데, 그분은 생활 자체가 매우 검소하기도 하고 바른 생활을 강조하던 분이셨다. 그분이 부임한 후 바꾼 교훈은 그런 그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 준다.
"책을 많이 읽고, 몸과 주변을 깨끗하게 하며, 건강하게 크렵니다."
덕분에 아침마다 등굣길을 쓸어야 했고 학교 환경정리의 부담도 컸지만, 만약에 내가 자랄 때 좋은 기초를 잡아 준 계기가 있다면 이리초등학교의 6학년 시절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
초적(草笛)을 불며 / 김해강
마음 놓고 발을 떼어 놓을
한 덩이 흙도 갖지 않았노라.
마음 놓고 몸을 담아 볼
한 칸 구름도 지니지 않았노라.
그러나 마음엔 하늘 한 자락
고요히 깔린 푸른 잔디밭이 있노라.
초롱초롱 어린 별들이 달아 놓은
아름다운 노래가 켜 있노라.
가난한 내 세월이 슬프기도 했건만
푸른 잔디밭엔 언제나 아침이 찾아왔고
허술한 내 모습이 외롭기도 했건만
구김없는 노래는 기(旗)폭보다도 선명했더니라.
넋이 자갈밭에 구울러 깨어져도 좋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발길에 채어
풀잎과 함께 썩어 버려도 아까울 것 없다.
내 오직 하늘 한 자락
어깨에 걸치고 살아가리.
내 오직 어린 별들이 켜 주는
아름다운 밤을 지키며 살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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