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당구 실력은 물 삼십(30)입니다.
일제 치하의 어려운 시골 살림에도 불구하고 집 창고 안에 큰돈을 들여 당구대를 설치하고 틈만 나면 실력을 연마하셨다는 증조부의 당구 사랑 영향이었는지, 제 아버님은 칠순 경에 테니스를 그만두신 후 소싯적 당구를 다시 시작하셔서 구순을 넘기실 때까지 무척 즐기셨습니다. 복지관으로 당구 경기를 가실 때는 언제나 잘 손질된 개인용 큐들을 빨간 장갑과 함께 케이스에 넣어 가셨습니다. 대를 이어 일찍이 전성기에는 사백 당구 실력으로 맛세이를 멋지게 찍던 형님에 비하면 저는 당구를 제대로 시작도 한 적이 없어서 초보 스코어인 삼십 점도 아까운, 전혀 짠맛 없는 물 삼십입니다. 미 8군에서 군 복무할 때 막사의 리크레이션 룸에 있던 포켓볼을 가끔 혼자 해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가족 및 친구들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당구(다마) 용어를 어려서부터 듣고 이해하며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요. 오랜만에 그 다마 관련 전문용어 세 가지가 생각납니다.
뒷다마
뒷담화(談話)는 당사자가 없거나 듣지 못할 때 몰래 그 사람(남)을 욕하거나 헐뜯는 행위나 말을 뜻합니다. 줄여서 '뒷땅'이라고도 합니다. 뒷담화가 표준어인지 그냥 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할 뿐인 표현인지, 그 유래가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구슬', '공'을 뜻하는 일본말 '다마'에서 비롯된 '뒷다마 까다'라는 말을 순화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하필 왜 뒷다마 '깐다'는 고상하지 못한 표현을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는 4구 당구에서 빨간 공 2개를 맞추어야 10점을 따는데, 첫 번째 빨간 공을 맞춘 후에 두 번째 빨간 공을 곧바로 맞추지 못하고 코너를 한 번 돌아 나와 뒤쪽부터 맞추는 것을 뒷다마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로부터 뒤에서 남을 험담하는 뒷담화와 '뒤통수를 친다'는 뜻 등이 파생된 것 같습니다.
뽀록, 후루꾸
한편, 일본어가 과거 우리 삶 속에 영향을 준 여러 표현 중의 하나가 '뽀록나다'입니다. 일이나 성과를 우연히 낼 때 사용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실력이 없음이 들통나는 경우에도 '뽀록나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 유래는 일본어 보루(襤樓, 우리말로는 '남루'라고 읽음. '남루한 옷')에서 온 표현이라는 분도 있습니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요행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 fluke가 일본 사람들에 의해 '후루꾸'로 발음되었고, 다시 우리나라로 와서 '뽀록'으로 변형되었다는 분도 있습니다. 당구에서도 노림수가 아닌데 우연히 점수를 내는 경우에 '후루꾸'로 했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진짜 실력이 '뽀록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해주기도 합니다.
오늘의 적용
뒷다마를 까는 경우이든 후루꾸로 점수를 내는 경우이든, 가장 민망한 경우는 그것이 '뽀록나는' 경우입니다. 들통, 발각 등등 여러 표현이 생각납니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라님 욕도 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들은 이야기가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거나, 우연히 뒷담화 현장이 들통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 경우는 매우 민망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기에 가급적 조심하고 웬만하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입니다.
시사적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그냥 늘, 언제나 저 자신을 경계하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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