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가 아닌 진리를 따라 살자
민들레는 4월과 5월에 핀다. 노란색과 흰색 꽃이 있는데,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 행복'이다.
민들레는 탁월한 생명력으로 알려져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기 때문에 짓밟혀도 다시 싹을 틔워 살아나고, 씨앗은 바람을 타고 가는데 낙하산보다 4배나 탁월하게 만들어져 있어 30km에서 150km까지 날아간다. 물에 떨어졌다가도 다시 뭍을 만나면 싹을 틔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는 민들레를 닮았다. 아무리 짓밟혀도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큰 어려움은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민들레 씨앗처럼 성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복음을 전하는 열기는 멈추지 않았다. 신앙은 고난 속에서도 계속 전진해 나갔다. 믿음의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때 우리 인생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큰 박해, 흩어지는 하나님 나라
(1절) '사울은'... 첫 주어로 사용된 문장이다. 향후의 행전을 주도할 인물의 등장과 복선이다. 행 7:58에서 사울은 청년으로 등장하며, 돌을 잘 던지기 위해 겉옷을 벗어 놓은 사람들이 그 옷을 사울의 발 앞에 둔다. 이는 사울의 권위를 인정한 것이다.
(2절) '큰 박해' 이후에 '큰 울음'이 있었다.
(3절) 사울은 각 사람의 집에 들어가 교인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 '잔멸하다'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딱 한 번 등장하는데, 이는 사나운 짐승이 다른 동물의 몸을 물어뜯는 것을 의미한다.
(1절, 4절) 성도들은 흩어졌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때 이미 남자만 1만 명이 넘었던 큰 교회 공동체였지만, 사울의 박해로 인해 사도들 외에는 모두 흩어지게 되는 엄청난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의 모든 신앙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지면서도 '복음을 전했다'(케리그마 - 복음을 선포하다). (이들은 도망 중인가, 비전트립 중인가?) 신앙은 '반응'이다.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이들의 반응은 도망 중에도 복음 전파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행복하고 기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믿음의 반응'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초대교회의 이 박해는 '말씀의 성취'였을 뿐이다. (행 1:8)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었다. 온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 문턱을 넘어가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장시켜 나가신 것이다. 큰 물통이 넘실댈 때 손바닥으로 물을 내리치면 물이 흘러넘치듯이, 사탄이 예상하지 못한 대로 초대교회의 믿음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사탄을 절망시키는 우리 교회가 되자. 믿음의 전진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 방법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무대다.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알지 못해도, 박해가 도리어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시키는 도구가 된다. 박해 속에서도 미션트립을 하며 살아가자.
둘째. 큰 기쁨, 도시를 변화시키는 하나님 나라
'빌립'의 행적에 주목하자. 사마리아와 유대인 사이의 적대감은 천 년간 지속되었다. 솔로몬 이후 남북 이스라엘이 분리되었으며,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민족과 종교가 혼합되었다. 북이스라엘 멸망 이후, 150년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남유다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대표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교도로 취급하게 되었다. 그리심산에 산당을 세우고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그들만의 신앙'을 만들었기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적대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는 3일 길을 사마리아를 피해 우회해서 일주일을 걸어 다녔다.
빌립은 그 길을 걸어갔다. 큰 환난과 핍박 때문이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할 때 큰 이적들이 나타났다. (행 8:7) 더러운 귀신이 나가고 환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행 8:8) '큰 기쁨'이 있었다. 한 사람 빌립으로 인해 그 성이 큰 기쁨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안에 하나님 나라를 품고 있었기에, 그가 가는 모든 곳은 기쁨으로 변한 것이다. (행 8:12) 그가 전한 것은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한국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많이 닮아있다. 고난과 흩어짐, 그 와중에 큰 부흥을 경험했다. 원산 대부흥, 평양 대부흥 운동 등이 있었다. 해방 당시 개신교의 60%인 20만 명이 평양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북한 정권이 교회를 공격하자 그들이 남한으로 내려왔고, 그들을 통해 남한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 1.4 후퇴 때 평양 교인의 50% 이상이 남한으로 내려왔다. 50만 명, 100만 명으로 남한 교인들이 증가했다. 성도가 발을 딛는 곳마다, 회사와 캠퍼스 모든 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이 임하기를 축복한다.
셋째, 큰 능력, 거짓을 압도하는 하나님 나라
자칭 큰 자, '시몬'. 그는 빌립 이전에는 사마리아 성에서 가장 큰 자였다. '마술을 행하여' (행 8:10) 많은 사람들이 시몬을 따라 다녔다.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다. 이래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교도 취급했다. 복음을 몰랐기에 놀라운 '현상'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보다는 보여지는 현상에 더 놀라워한다.
자칭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19명이 있었다. 예수님을 자칭한 사람은 50명이나 있었다. 성령님이라고 자칭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은 초창기에는 대개 '현상'을 보여줬다. 그 현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가짜의 도시에 진짜인 빌립이 들어가자, 진짜가 가짜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행 8:13) 빌립의 큰 능력을 보고, 시몬도 빌립을 따라다녔다. 소문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를 방문하여 진위를 판단하려 했고, 성령을 전하기 시작했다. 시몬은 베드로에게 돈을 주고 성령을 전하기 위한 능력을 달라고 요청했다. (행 8:18, 19)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해 달라고 하며 주목받기를 원했던 사람, 그는 혼합주의 신앙의 정점에 있었다. 그는 '성직 매매'의 대표가 되었다. (Simony)
시몬이 빌립을 따라다닌 것은 영향력, 즉 성령을 부리는 능력을 원했기 때문이다. 성령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종교의 사원 - 다원 종교적 모습. 혼합주의. 하나님을 우리 뜻대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을 온전히 좇는 것이지, 하나님을 부리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행 8:20) 베드로가 말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성도가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은, 돈과 함께 망하는 것이다. '사용할 것'과 '사랑할 것'을 뒤바꾸면 안 된다. (행 3:6) 거짓을 압도하라. 내 삶의 여건이 어찌하든, 믿음의 전진을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
결론
민들레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날아가 뿌리를 내린다. 땅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때로는 박해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때에도 믿음의 전진을 멈추지 말자. 그때 큰 기쁨과 큰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실 것이다.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부흥을 사모합니다 (행 5:12~18, 40~42) (0) | 2024.08.11 |
---|---|
사력을 다해 갈등을 해결하라 (행 6:1~7) 주경훈 목사님 (0) | 2024.08.11 |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행 6:8~7:1, 7:51~60) (0) | 2024.08.11 |
축적(蓄積)의 영성(靈性) (단 6:10) - 주성하 목사님 (0) | 2024.08.11 |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성도의 삶의 태도 : 능동적 수동성 (행 13:1~3) 주경훈 목사님 (0) | 2024.07.28 |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딤전 1:7) 김은호 목사님 (0) | 2024.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