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며,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합니다. 출발점이 있으면 결승선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달렸느냐가 아니라, '완주'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완주하고 있는가, 오늘도 달리고 있는가? 인생의 열정을 가지고 달려갈 수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43세에 운전 중 뇌출혈을 겪고, 3주 후에 깨어났으나 '감금 증후군'에 걸려 왼쪽 눈꺼풀 하나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대필 작가를 구해 알파벳을 나열하고, 왼쪽 눈꺼풀을 깜박이며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매일 6시간씩, 1년 3개월 동안 130페이지의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고 이틀 후에 그는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인생 레이스를 완주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역사였으며,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 빛나는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우리 인생의 레이스를 달려가야 합니다.
오중 충만한 얼굴
성경은 스데반의 얼굴을 천사와 같다고 묘사합니다(행 6:15). 얼굴은 우리 내면의 상태를 보여주는 창문과 같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는 것은 그의 내면이 천사와 같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내면에는 다섯 가지가 충만했습니다.
스데반의 내면을 가득 채운 다섯 가지는 성령, 지혜, 믿음, 은혜, 권능입니다(행 6:3, 5, 8).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을 의미하며,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은혜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입니다. 권능은 당당하지만 겸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이러한 오중 충만은 그의 얼굴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를 닮은 얼굴이었습니다. 이러한 오중 충만은 이 땅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얼굴이 드러난 것은 평안한 때가 아니라, 인생의 위기 속에서였습니다. 스데반은 적의에 가득 찬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천사와 같았습니다. 이는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모함을 받을 때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스데반처럼 예수님을 닮은 얼굴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관통된 인생
스데반은 공회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설교를 했습니다(행 7:1). 그의 설교는 길고 건조했으며, 은혜로운 설교라기보다는 진지한 설교였습니다.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이가 갈리도록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사람을 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전 중심으로 네 가지 시대로 분류하여 설명했습니다(행 7:2-50). 첫 번째는 아브라함과 족장 시대입니다. 아브라함이 거룩한 장소가 아닌, 우상 숭배의 진원지인 우르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두 번째는 요셉과 애굽에서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애굽에서도 계셨으며, 가나안 땅에만 갇혀 있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째는 모세와 출애굽과 광야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한 지역이나 나라에 갇혀 있지 않으셨습니다. 네 번째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머무는 곳이지만, 하나님은 성전에만 머무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스데반은 성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스데반의 신학은 단단했습니다. 그는 말씀에 관통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스데반처럼 말씀에 관통된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고정된 시선
스데반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행 7:54-56).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예수님이 일어나 스데반을 변호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해도 열린 하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말한 두 마디는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와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였습니다(행 7:59-60). 이는 예수님의 가상칠언과 같은 내용입니다. 스데반은 십자가의 예수를 묵상하며, 작은 예수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스데반의 이름은 '스테파노스', 즉 면류관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마라톤 결승선 너머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며 손을 흔들고 계십니다. 십자가가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실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 고난에 동참하여 십자가가 우리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처럼 성령과 지혜, 믿음, 은혜, 그리고 권능이 충만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하고, 우리의 시선이 항상 하늘에 고정되어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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