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사랑의 종교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함으로써 확장하면 인류에 대한 박애 정신을 강조하는 것에 매몰되어 우리는 자주 가족, 교회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추상적인 사랑은 관념적으로 쉽게 용인하지만, 구체적 삶의 부대낌에서는 그 실천이 어렵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에서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국한하고, 현재의 같은 교회 교인이나 기독교인들로 국한하는 것이 문맥상 적절해 보입니다. 그리스도가 늘 인도하시는 가정, 예수님이 머리 되신 교회의 가족들의 소중함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과 진실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매주 이 교회 저 교회를 나그네처럼 떠돌기도 합니다. '안 나가'를 뒤집어 표현한 가나안 성도들이 늘고 있다고도 합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의절을 하기도 하고 떨어져 살며 별로 교제 없이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5장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도 교회를 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족의 소중함은 특정 구절을 제시할 필요도 없고요. 교회와 가족은 무시할 수 있는 그룹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을 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계절이 이 땅에 오게 해야 합니다.
모태 신앙을 강조하기도 하고 신앙의 명문 가정을 꿈꾸기도 하며, 좋은 교회에 몸 담고 있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신앙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 맞습니다. 그런 것들은 어쩌면 다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신앙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공적인 교회 생활이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다닌다고 저절로 신앙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깊은 신앙을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함께 권면하고 도전을 주며 사랑의 대상이 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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