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와 팀 켈러 목사 등이 만든 미국 복음 연합(TGC)이 발표한 5가지 비성경적인 문장들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근면/자조/자립.... 새마을 운동의 표어이기도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이 스스로 돕는 자만 도우면 우리는 모두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 9:12~13)”고 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책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1736)에 처음 나와 널리 인용된 것으로 좋은 경구이지만, 기독교 관점의 진짜 메시지는 찰스 스펄전 목사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를 도우신다’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문을 닫은 뒤 창을 연다”
낙심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사실 하나님이 우리가 열려했던 문을 닫은 뒤 창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잘못된 주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할 때도 있습니다(행 16:6~7)
"당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족과 친구가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해서 세상적 관점에서 가장 안전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는 가장 안전하겠지만...
우리 삶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잔혹한 환경은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은 더 위험한 상황으로 우리를 내몰 수도 있습니다.
"가서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
순종의 가치를 강조한 말이지만, 이 구절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노력과 작업에 제동을 걸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길 원하는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고 '거룩한 땀'은 기독교의 핵심적 경험"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땀과 수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의 삶을 군인/운동선수/농부로 규정했습니다.(딤후 2:3~6)
제임스 패커 박사의 말처럼 기독교인의 좌우명은 '가서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가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주지 않는다"
현실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다룰 수 없는 것 이상을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상황을 이끌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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