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은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8절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자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어떤 분들은 저를 꼭 천사처럼 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엄청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분들은 저에게 엄청 실망하셨다고, 실망했다고 메일을 보내거나 어디 글에 아주 실망했다고 쓰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 둘이 한꺼번에 있는 분도 계십니다. 천사처럼 보았는데 실망했다는 분들도 저를 천사처럼 보시니까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둘 다 사실 함께 가는 것이죠.
절대로 천사일 수도 없고 완벽할 수도 없는 저 자신인데, 그러니 실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시라고 하는 거죠. 저를 주목하시라는 게 아니고, 제가 어떻게 잘 살았다는 뜻도 아니고, 주 예수님을 주목하시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내 안에 거하시니까, 그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사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를 바라보면 예수님을 바라볼 마음이 없어질 수도 있어요. '아,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사람도 저 정도밖에 안 되나' 그럴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유기성 목사가 바라보라고 하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유기성 목사가 그렇게 24시간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서 예수님 동행일기를 쓰라고 하니까 써 보았다. 그렇게 하지 말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주님을 바라보라,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일관되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리고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안에 거하라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유기성 목사가 하는 말을 따라서 하는 게 아닌 거죠.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니까 따라가는 겁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주시는 분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성령이 아니시면 누구도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고, 무엇보다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성령 집회에 모일 때마다 성령 집회 자체가 이름이 그렇듯이 성령의 역사에 의지하여 모이는 집회거든요. 그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기다리라,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받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약속하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장 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님은 말씀하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성령을 기다리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아니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도, 바라볼 수도, 주님과 동행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살기 힘들다, 앞이 캄캄하다, 앞으로 살아갈 것이 너무 두렵다, 상황이 정말 그럴 처지가 되더라도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한 20년 전에는 교회가 다시 회복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교회가 여러분에게 증거잖아요. 회복될 수 없을 것 같고, 앞이 캄캄하고, 길이 없어 보이고, 그랬던 교회가 이렇게 되었잖아요.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신 거죠. 주님이 하신 거죠. 그러니 지금 현재 여러분의 저주와 형편이 절망적이고, 너무 낙심이 되고, 도무지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고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능히 다시 일으키실 분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 그분은 하나님이세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천지를 다스리시는 그분이 지금 내 안에 와 계신 겁니다. 그러니 사실, 뭘 두려워할 게 있어요. 지금 여러분에게는 앞길이 힘들어도 낙심할 이유가 없지요. 세상보다 더 크신 분이 내 안에 계시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 이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권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온 세상에 나가서 내 증인이 되어라. 이 말씀은 그대로 지금 여기에 있는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성령을 세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권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 내 증인이 되리라.
아멘으로 붙잡은 분이 있고, 그냥 읽고만 지나가는 분이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약속을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 말씀으로 기도를 하는 날입니다. 말씀 기도,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 말씀 기도하는 날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라, 그리고 세상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 아멘입니다. 우리 영상으로 예배하시는 분들도 동일한 은혜를 여러분이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제자들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핍박 중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고 난 다음에 완전히 상황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예루살렘에 있는 시민들 중에 하루에 3천 명씩, 어떤 날에는 5천 명씩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성령이 임하시니까, 성령이 임하기 전과 임한 다음은 전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과 삶이 어떻게 바뀔지는 지금은 상상도 안 될 정도입니다.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서 도망가다가 숨은 곳이 지하 무덤이었습니다.
카타콤이라고 하는 지하 무덤, 거기서 무려 300년 동안이나 지냈습니다. 그 카타콤에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를 어떤 분이 계산하기를 한 200만 구가 된다고 그래요. 당시 로마 시민이 한 100만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지하 무덤에서 평생을 살고 거기서 죽어갔는지 모릅니다. 믿음 하나 지키려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 지키려고.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하죠? 그들 가운데 성령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심각한 오해가 있는데,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지만, 나는 성령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는 오해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아주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이나 그런 사람일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은 사람,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다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성령 체험도 없고, 나는 성령이 무슨 특별한 은사도 없고, 그래서 내가 도대체 성령의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사모함은 있지만, 믿음은 안 생기는 분들, 여러분이 정확하게 영적인 분별이 없어서 그런 것뿐이지, 여러분 중에 지금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믿으실 거예요. 그럼 하나님을 보셨나요? 그러면 또 대답을 못해요. 본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또 그렇게 믿죠? 보지도 못하고. 불신자들이 질문하는 질문이에요. "너 하나님 만났냐?" 아니, 만난 적은 없어. 그런데도 어떻게 하나님을 믿냐, 하나님 계신 걸 어떻게 믿냐.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다 아멘이시죠? 그러면 예수님과 악수 한 번 해보셨습니까? 그러면 또 대답을 못해요. 예수님과 악수도 한 번 안 해보고, 예수님을 어떻게 그렇게 믿으세요? 대답하기가 참 곤란하죠. 그런 질문을 받으면.
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과 악수도 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기까지 해요.
성령님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 때문이에요. 그러니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누가 있나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가장 강력한 기적이요,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안 믿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나가서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안 믿어져요. 안 믿어지는 거예요. 안 믿어지니까 안 믿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이렇게 믿죠?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믿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나는 성령 체험이 없어" 그런 말 하지 마셔야 합니다. 성령 체험도 없는데 어떻게 오늘 성령 집회에 오셨어요? 성령 체험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를 하세요?
이미 성령께서는 너무너무 강하게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거예요.
여러분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어요. 아니,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너무나 분명하다면 왜 우리의 삶 속에 오늘 말씀하신 성령의 어떤 권능은 이렇게 적게 나타나는 겁니까? 나는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이번 주 한 주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도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동의합니다만, 그러나 내가 지금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정말 죽은 자도 살아나고, 정말 암병도 고침을 받고, 기도하면 그날 다음 날 로그나 문제가 해결되고, 주님이 하셨습니다, 계속 이런 간증도 좀 할 수 있는 이런 역사가 내게는 없다는 걸. 내 주변의 가족들과 친척들, 직장 동료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증거를 보여 봐라. 그 사람들 콧대를 한번 꺾을 수 있는 그런 무슨 역사가 왜 내겐 안 나타납니까?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성령님을 믿고 사모하면서도 우리 마음에 성령님보다 권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함정이 있어요. 그가 진짜 성령님을 원하는 게 아니고, 그가 원하는 것은 권능인 거예요. 하나님이 기적적인 응답, 기적적인 치유, 놀라운 은사, 놀라운 능력 그런 걸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권능인 거예요. 오늘 말씀에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러셨잖아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내가 권능이 나타나나, 이걸 생각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습니까?
여러분, 권능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 있어요.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라고 했잖아요. 권능 전에 먼저 성령인 거예요. 성령님 그분이 권능보다도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어딜 갔는데, 거기에 조카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여러분이 가지고 온 선물만 바라보고 있다면 솔직히 좀 섭섭하죠. 내가 온 것이 기쁘지 않고, 내가 가지고 간 선물이나 무슨 음식을 더 바라면 그러면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마음에는 좀 서운하죠, 그렇죠? 누가 저에게 찾아왔는데 제가 그 사람에게 도와줄 도움만 바라지, 저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존중함도 없고 사랑하는 마음도 없다면 저는 이용당하는 느낌일 거예요.
우리가 성령님, 성령님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게 다 권능이라는, 기적적인 역사라는 것, 그러면 성령님 그분은 얼마나 서운하시겠나요.
많은 분들이 성령의 역사를 사모합니다. 역사를 사모하는 거예요, 성령님의 역사를. 성령님 그분을 사모하는 분들이 참 드물어요.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성령님에게도 감정이 있고, 성령님께서도 좋고 나쁜 게 있고, 성령님께서도 어떤 의지가 있으신 분이라는 것, 우리랑 똑같이 기분이 좋고 또는 마음이 상하시고, 성령님께서도 똑같으시다는 거예요. 그 점을 여러분이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
만약에 성령님께서 무시 당한다고 느끼고, 성령님께서 이용당한다고 느끼고, 성령님도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들여보내고 정탐꾼의 보고를 받고 그 여덟 정도,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에 대해서 악평을 하는 것을 듣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모세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까지 모세와 아론을, 그리고 다시 우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나를 멸시하는 백성이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나를 멸시하는 백성이라고 하셨어요. 말 한마디도 참 중요해요.
내가 그냥 어느 순간에 감정이 너무 복받쳐서, 어떤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렇게 막 내뱉은 말도 다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우리 이제 다 죽었다'고 하고, 그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돌을 쳐서 죽이려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애굽에서 끄집어냈다고, 하나님이 다 들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멸시하는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다 광야에서 죽습니다. 성령님도 똑같으세요. 여러분 성령님은 여러분 안에 계세요. 그런데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데 여러분이 전혀 성령님을 의식하지 않아요. 그리고 누구에게 막 거짓말을 해요. 성령님은 멸시당하시는 거죠.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데, 여러분이 부부싸움을 하면서 막 소리를 질러요.
아이들에게 야단을 치는데 막 온갖 험한 말을 쏟아부으면서 아이들을 욕하고 야단을 쳐요. 그러면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은 여러분에게서 멸시를 당하시는 거죠. 나는 의도적으로 성령님을 멸시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성령님은 멸시를 당하는 거예요. 아니, 제가 여러분의 집에 심방을 갔는데, 그래서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앉아 있는데, 여러분 부부싸움을 막 제 앞에서 하며 '사네, 죽네' 하면서 '우리 헤어지자' 그러고, 그러면 저는 멸시받는 거나 마찬가지죠. 아니, 목사님이 심방을 와서 앉아 있는데 그 앞에서 그렇게 싸우나요? 제가 심방을 갔는데 아이를 정말 야단치고 구박하고 혼을 내고 막 소리 소리 지르면, 저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연약한 제가 얼마나 상처를 받겠어요. 내가 이 집에 계속 있어야 되나, 나가야 되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니, 목사님이 집에 와 계신데 이 정도가 아닌데요.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면서 되는 말 안 되는 말, 음란한 일, 음란한 행동, 음란한 말, 그 다 성령님을 멸시하는 거라니까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구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어떤 은사를 구하고, 그게 말이 됩니까? 성령님 그분은 멸시하고, 역사를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신데, 성령님을 실제로는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성령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아무런 의식이 없어요. 그러니 무슨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겠냐는 말이에요.
교회에서 가장 무시당하시는 분이 어쩌면 성령님이세요.
여러분, 교회에 왔는데 누구도 환영 안 해주고 말 걸어주는 사람도 없으면, 그러면 '아, 이 교회에서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구나. 환영해 주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지요. 교회 등록을 안 해서 그런가? 교회에서 이렇게 등록을 했는데도 여전히 교회에 오면 나 혼자예요. 왔는지, 갔는지, 안 왔는지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요. 챙겨주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면 그 교회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성령님이 꼭 그런 취급을 받는 거예요. 우리가 모이면 늘 성령님은 그 가운데 함께 계세요. 그런데 우리는 전혀 성령님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아요.
계신지, 마음이 불편하신지,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냥 보이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만, 되어지는 일에 대한 관심만, 내가 뭐 얼마를 받을 게 있냐, 없냐, 돈에 대한 관심만. 그렇게 하면서 어떤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나요? 성령님께서 인격적인 존재라고 하는 말은 성령님을 권능으로만 취급하지 말라는 겁니다. 성령님은 은사를 주시는 분, 성령님의 기적을 행하시는 분, 성령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분, 내게 그런 역사를 행해 주시는 분, 이렇게만 여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성령님에 대해서 인정하고, 환영하고, 기뻐하고, 성령님으로 인해서 내가 예수 믿고 있다는 것을 늘 깨닫고, 내게 기도할 마음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고, 죄를 지으면 내 마음에 회개할 마음을 주시고, 얼마나 실제예요.
성령님, 고맙습니다. 성령님, 또 이렇게 역사해 주시네요. 그러면서 성령님을 계속 인정하면요, 성령님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요. 점점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요. 나중에는 권능을 특별히 구한 것도 아닌데 능력이 임해요. 능력으로 살게 돼요. 삶이 다 바뀌어요. 그런데 성령님을 무시하면 전혀 아무런 역사가 안 일어나요.
우리가 성령 집회 때마다 환우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하나님께서 언제 저의 마음속에 '왜 요즘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고침을 받는 사람이 이렇게 적습니까?'라고 주님이 물으시니 '너희들이 계속 기도를 안 하니까, 환자를 보기만 하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안 하니까, 누가 환자인지 모르니까 또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냥 환자들은 다 기도하라고, 환자들은 이 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고쳐 달라고 기도하라고. 모일 때부터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저에게는 어떤 신유의 은사가 있지 않아요. 신유의 은사가 있으면 신유 집회를 해야 되겠죠. 그런데 저에게는 신유의 은사가 있질 않아요. 그냥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을 뿐이에요. 믿음으로 기도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까 실제로 병을 고침을 받았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거예요.
기도를 안 하면 그런 역사도 안 나타나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교회를 주목해 보세요. 성령님의 역사를 믿고 계속 기도를 모일 때마다 하니까, 기도의 문이 열리고 능력도 나타나는 거예요. 성령님에 대해서 존중히 여기고 그분이 함께 역사하신 것을 진짜 믿고, 성령님께 순종의 걸음을 나가면 성령의 역사는 더 강하게 더 강하게 나타나요.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으면 성령님이 그냥 서서히 다 없어져 버려요. 마치 안 계신 것 같이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아요.
여러분이 어떤 권능을 보지 말고, 성령님 그분을 주목해 보시면 여러분 안에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가 있어요.
그게 거룩함과 사랑이에요. 이게 사실은 진짜 능력이에요. 병자 고침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이요, 우리 안에 거룩함과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이게 진짜 성령님 다운 역사예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거룩하지 못한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역자들도 있어요. 능력은 나타나는데, 기적은 일어나는데 거기에 거룩함이 없어요. 그건 미혹이에요.
그러니까 이것부터 먼저 가야 되는 거예요.
성령님으로 인한 거룩함과 사랑이 먼저 있어야, 그다음에 죽은 자도 살리는 기적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저 또 죄 지었어요." 이런 마음이요, 전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보혈의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씻음을 받고 주에서 승리하도록 기도하자고 했을 때, 아멘 하고 일어나서 기도하신 분들이 많으셨는데, 바로 그게 성령님의 역사예요. 죄를 용납할 수가 없고, 그죠? 누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나에게는 죄 씻음이 필요합니다, 이런 역사가 다 성령님의 역사예요.
사랑해야 된다, 마음 똑같아요.
정말 나를 죽일 것 같이 그렇게 악하게 하는 사람도 사랑해야 하는데,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마음이 괴롭고 용서가 안 된다, 사랑이 안 된다, 그런 상담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요. 용서해야 된다, 사랑해야 된다는 마음이 성령님이 역사예요.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이것이 권능 중에 진짜 권능이에요.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 사랑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 또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는 게 성령이 임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고 했어요.
여러분 부부 사이에 부드럽습니까?
남편을 바라보는 게 부드럽습니까? 아내를 바라보는 게 부드럽습니까? 아니면 마음에 뭐가 응어리가 졌습니까? 이게 안보다도 무서워요. 마음이 이렇게 굳어진 거,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고 했어요.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굳어져 버려요.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은 사랑스럽지 않은 거예요. 자꾸 허물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만나면 싸움이 자꾸 되는 거예요. 부모 자녀 사이에도, 교인들끼리에도, 여러분 굳어지는 것은 좋은 게 없어요. 간이 굳었다, 신경이 굳었다, 근육이 굳었다, 다 안 좋은 거잖아요. 피가 굳어간다, 다 안 좋은 거잖아요. 가장 안 좋은 게 마음이 굳은 거라는 거예요. 완전히 마귀가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뜻이에요.
성령이 임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져요.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되어지는 거예요. 이 역사가 성령님 그분을 주목할 때 일어나는 거예요. 성령의 은사나 성령의 능력을 주목하는 게 아니고, 성령님 그분을 주목할 때 나타나는 역사들이에요. 이것부터가 먼저인 거예요. 그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2007년부터 이런 금요 철야 기도회 때 성령의 강력한 치유의 역사와 어떤 은사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을 했어요. 제가 목회하면서 매일 일기를 이렇게 써왔는데, 2007년도부터는 우리가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들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어요. 2009년도에는 그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중에 그때 계셨던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가 특별한 실험도 했었어요.
기도하면 쓰러지는 사람들도 막 나타나니까, 이게 성령님의 역사인지 알고 싶어서 제가 기도 안 하고, 안수기도도 안 하고, 부목사님들 다섯 분이 나와서 이 앞에 다섯 분이 서셨어요. 그래서 여러분 중에 안수기도 받기 원하는 분들은 오늘은 제가 기도를 안 하고 부목사님들이 기도할 테니까, 부목사님들 앞에 나와서 기도 받으시라고 해서 기도 받으러 나오셨죠. 그날 계셨던 분들께서 아시겠지만 다 쓰러졌어요. 그냥 부목사님들이 머리에 손을 대신 것도 아닌데도, 참 희한하죠. 그다음 주 성령 집회 때부터 다 그렇진 않으셨어요. 근데 그날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것이 성령의 역사라면 오늘은 부목사님들이 기도할 때 기도받는 분들이 다 쓰러지게 해주세요." 그렇게 목사님들이 사전에 기도회를 했어요.
아,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굉장히 강한 성령의 역사로 성령 사역을 하시려고 하시나 보다, 이렇게 믿을만 하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에 이게 아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여러분, 성령의 어떤 권능과 역사가 나타나면 반드시 마귀의 미혹도 같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그걸 절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 사역은 항상 이런 위험성도 같이 따라옵니다. 이상한 악한 영의 미혹을 받은 사람도 같이 막 역사가 일어나요.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역사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일어나니까, 교인들이 바짝 관심을 더 가지고 모이는 인원이 엄청 늘었어요.
근데 제가 통성 기도하고 이제 안수기도 하는데 갑자기 교인들을 딱 보는데,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통성기도 시간이에요. 기도받을 분들 앞에 나와서 기도할 시간인데, 기도 안 하고 다 이렇게 보고 있는 거야. 어느 목사님 앞에 간 사람은 쓰러지나, 저 사람은 쓰러지나 안 쓰러지나, 아니, 지금 기도해야 될 시간에 다 지금 앞에만 쳐다보고. 와, 이건 진짜 문제가 많은 방법으로 지금 우리를 미혹하는구나. 그리고 목사님들 사이에도 묘한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어떤 목사님에게는 그런 영적인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고, 어떤 목사님은 전혀 그렇지도 않은 분도 있어요. 그렇게 기도를 간절히 열심히 해주시는데도, 단 하나, 쓰러졌냐 안 쓰러졌냐고. 근데 쓰러진 사람은 엄청 신령해 보이고, 안 쓰러진 그 목사님 앞에 선 분은 "나 좀 쓰러뜨려 봐요" 자꾸 이런 식으로. 목사님들도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준비가 안 됐구나.
이거 잘못 이렇게 가다가는 악한 영이 얼마든지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있겠구나. 그래서 대대적으로 방향을 틀어서 예수 동행 일기를 쓰게 된 거예요. 우리가 능력과 어떤 은사와 어떤 기사와 이적을 주목할 게 아니고, 주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모든 것이 주님이 행하신 것이고, 영광도 주님께 가는 것이고, 무슨 일이 되고 안 되고가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어요? 주님이 하시면 하시는 거고, 안 하시면 안 하시는 거예요. 쓰러지고 안 쓰러지고는 하나님의 역사에서 사실 큰 차이가 없어요.
이 점이 우리가 준비가 안 돼서야, 성령의 어떤 권능을 강조하는 사역은 교회를 영적으로 더 어렵게 만들겠다.
그래서 그때 방향이 바뀐 거거든요. 예수 동행 일기를 쓰는 일로. 예수님, 주님께 주목하자는 거예요. 권능보다도 더 먼저 성령이 임하시면, 그러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있지. 성령님 자체에 대한 관심 없이, "능력 주세요, 은사 주세요, 기적을 행하여 주세요." 그러면 반드시 악한 영이 역사해요.
유명한 성령 사역자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미국의 어느 도시의 집회를 인도하러 갔는데, 그 전날 기도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뜨거운지 새벽 2시까지 기도하셨어요. 그리고 잠깐 자고 오전 집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집회 모인 회중들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데, 본인 목사님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력한 주님의 임재를 느끼게 됐어요. "여러분, 여러분도 느끼시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구나, 주님이 임하시는구나." 오늘은 왠지 영적으로 너무 맹숭맹숭해, 오늘은 뭐 특별한 감동이 없네, 여러분들도 조금 그런 느낌이 있으시죠? 오늘은 왜 이렇게 간절히 성령의 역사가 강하지 않지? 찬송을 불러도...
목사님이 그날 말씀을 전하는데, 교인들의 얼굴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이게 내가 말을 전하는 건가?"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자꾸 말씀이 속에서부터 계속 나오는 거죠. 설교하면서 교인들을 보면 저쪽에서 몇 사람은 막 울고 있는 거예요. 설교가 끝나고 "우리 다 같이 이 시간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뭐 다르게 기도한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 눈을 감고 예수님" 그렇게 부른 거예요. 그런데 뭐가 강력하게 회중들 가운데 임하는 것 같았어요. 뜨거운 통곡이 터져 나오고, 성도들이 견딜 수 없어서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기서 막 울음이 터지면 저기서 울음이 터지고, 그 목사님도 처음 그런 경험을 해 본 겁니다. 그리고 오전 집회가 끝났어요.
그리고 이제 점심 식사를, 그 도시에 사촌 누이가 살고 있어서 그 사촌 누이 집에서 약속을 하고, 이왕 그 도시에 집회를 갔으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촌 누이를 만나고 그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참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먹는데, 마음에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너 빨리 가서 기도해라." 지금 동생 내외와 모처럼 만나서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사 도중인데, "너 빨리 가서 기도해라." 마음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아, 이게 주님의 음성이구나." 여러분들도 그런 분별이 있으시죠? 근데 지금 기도하러 갈 수가 없어요. 그 동생이 뭐라고 생각했겠어요. "아, 지금 갈 수가 없는데요." 그리고 "제가 지금 일어나서 호텔로 돌아가면 저를 차로 운전해 줄 분도 식사도 못하고 나를 또 호텔로 데려다줘야 하니, 그 사람에게는 얼마나 미안하겠어요. 아, 지금은 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랬더니 성령께서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으신 것 같았어요.
식사를 끝내고 즐거운 시간 가지고, 그리고 이제 호텔로 들어왔어요.
너무 피곤해서 잠깐 잠을 자고 저녁 집회 준비를 하고 그리고 집회장으로 갔습니다. 오전에 그런 강력한 역사가 있었으니까, 저녁 집회는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들 연락하고 너무너무 은혜가 충만하다고 막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다들 얼굴에 큰 기대감이 있었어요. 목사님도 오늘 저녁에 마치 배가 뭔가 될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이 없었어요. 근데 설교하러 다 올라섰는데 그렇게 힘든 거예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이게 맥이 안 잡히는 겁니다. 자꾸 했던 말 또 하는 것 같고, 했던 말 또 하는 것 같고, 교인들도 집회에 참여한 분들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전혀 무슨 반응이 없는 것 같아요. "이 말을 해야 되나, 저 말을 해야 되나." 그러면서 설교는 끝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다들 일어나요. 뭐 더 기도할 사람도 없고, 목사님이 그냥 빨리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누구를 더 만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날 저녁은 대실패 같았어요. 호텔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막 원망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도대체 집회를 하라고 하시고 오전에는 그렇게 역사하시고 저녁에는 왜 주님이 역사를 안 해주신 겁니까?" 그때 성령께서 너무나 분명하면서도 조용한 음성으로 "내가 오늘 낮에 너에게 기도하라고 했는데, 너가 거부했다." 아니, 그날은 그 시간은 동생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 모처럼 만난 시간이었잖아요. 제가 그 시간에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니까요. 그때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정말 성령의 충만함을 원하며, 그러면 내가 치루어야 될 대가가 있어. 이것도 나하고 저것도 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그리고 성령의 능력도 경험하려고 해서는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가 너를 쓸 수가 없어."
그게 그분에게 있어서는 평생의 교훈이 됐어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와 계세요. 그걸 명심하셔야 돼요. 그분은 하나님이세요. 나에게 어떤 마음을 주실 때, 그 목사님에게는 동생과 식사하는 그 시간에 너 기도해라. 너 이러다 보면 저녁 집회를 위해서 아무런 영적인 준비가 없는 것 같더라. 대가를 치뤄야 될 건 치뤄야 돼. 너가 정말 저녁 집회에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가 되고 싶다면, 반가운 어떤 동생과의 만남도 잠깐 인사만 하고 끝낼 수도 있어야 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이제 나는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거야. 이게 분명히 있어야 돼요. 성령님을 모시고 사니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더 다 조심스러워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원하시는 거죠. 성령님은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분이에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 성령님의 역사로 믿어지고 깨달아지고 바라보아지는 거거든요. 우리가 늘 강조했듯이 주님 모시고 사는 사람답게 살자. 그게 대가지 불이에요. 나는 이제 주님을 모시고 살아. 이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은사, 성령의 능력 이전에 주님은 나와 함께, 내 감정, 내 생각대로 살면 안 돼요.
오늘 밤에 저는 주님을 원합니다.
주님 환영합니다. 제게 오신 거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주님이 약속하셨잖아요. 성령이 임하면 권능 받고 내 증인이 될 거라. 주님, 제가 그렇게 살게 해주세요. 제 가족들에게, 내 교인들,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측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 저를 사용하세요. 성령님, 저의 속에서 역사해 주세요. 우리 그렇게 기도합시다. 우리 함께 찬양하고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성령이 오셨네.
우리 그 찬양하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오신 성령님을 기뻐하며 우리 노래합시다.
자,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 말씀입니다. 한 절 말씀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아멘.
여러분, 이번 성령 집회 때 성령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는 이때에 여러분이 다 성령의 체험을 강하게 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실패하고, 예수를 믿어도 기쁨도 없고, 증거도 없고, 간증도 없이 사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모든 것이 다 바뀝니다. 성령의 역사는 보통 이런 집회 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미국에 계신 저희 양아버님, 실제로는 저희 큰아버님 되시는데 그분이 폐결핵으로 거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계셨던 분입니다.
이북에 계셨던 저에게는 큰아버지시죠. 그분의 형이 두 분이 다 폐결핵으로 돌아가셨고, 누님도 폐결핵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인민군 포로로 잡혀서 포로 석방 때 풀려나신 분입니다. 부산에서 장사를 꽤 크게 하셔서 사업이 잘되셨어요. 장로교회 장로도 되셨죠. 그런데 어느 날 쓰러지셨는데 폐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죽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으셨다고 해요. 위로 형님 두 분도 누님도 다 폐결핵으로 돌아가셨으니까 거의 절망 상태에 빠지셨어요. 그래서 다 사업도 접어버리고, 그리고는 서울로 이사를 가셔서 거의 매일 극장 가서 영화 보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으니까 그렇게 지내시다가 어느 날 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셨는데 강세 목사님의 통성기도 시간에 안수를 받았어요. 아픈 사람들 나오라고 해서 큰 기대 없이 나는 이제 죽을 병이지만 아프기는 하니까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이 병이 죄 때문이다."
그런 말씀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근데 그 말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으셨어요. 죄 때문이라니.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큰 회개가 일어나셨어요. 그 후로 그는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회복되셔서 장수하셨고, 나중에는 성령님을 깊이 체험하시고 주님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폐결핵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상황에서, 주님의 은혜로 치유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를 이끌어내며, 우리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오늘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을 기뻐하며,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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