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 아닌, 오직 성령으로
33년째 목회를 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 모임에 가든 선배보다 후배 목사님들이 더 많이 있다. 후배 목사들이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 할 수 있는지‘ 조언을 청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스가랴서 4장 6절 말씀을 인용하여, 목회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만 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목회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스가랴서는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대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8개의 환상을 다루고 있는데, 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 다섯 번째 환상이다.
역사적 배경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배경의 이해가 필요하다.
주전 606년에 바빌론의 첫 침공이 이루어져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주전 586년 제3차 침공으로 인해 유대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 백성들은 첫 침공이 있던 606년을 기산점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70년이 찬 후인 주전 536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바빌론 포로 1차 귀환) 이 때의 인솔자가 총독 스룹바벨이다.
그들이 귀환했을 때의 예루살렘은 황폐함 그 자체였다. 그들은 가장 먼저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신앙 재건운동을 추진하고자 했지만, 성전 건축은 난항을 겪고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성전 건축이 중단된 이유
첫째, 경제적인 어려움
돌아온 포로들은 당장 먹고 사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성전 건축 경비를 마련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둘째, 국론 분열
성전의 긴급한 필요성에 대한 생각이 유대 백성들 사이에서도 나뉘게 되었다. 대부분 바빌론 포로 생활 중에 태어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성전 재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였고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갖고 있었다.
세째, 외세의 위협
사마리아와 주변 국가들의 훼방이 컸다. 그들은 유대가 예전처럼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 재건에 동참하기를 바랐지만 이방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배제되자, 이에 불만을 갖고 계속 모함하다가 (에스라 4장) 페르시아 아닥사스 왕에게도 상소문을 보내 성전 재건의 중단을 호소했고 결국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나중에 다리오 왕이 다시 칙령을 내릴 때까지 16년간 성전 건축이 중단되게 되었다. (이 기간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이 예언을 시작한다.)
순금 등잔대의 환상
스가랴가 본 환상은 순금 등잔대에 대한 것이다. (개정개역은 예전 개역과 비교하든, 여타의 영문 성경과 비교하든, 이해하기 어렵게 번역이 되어 있음)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맨 위쪽에는 기름그릇이 있고 기름 그릇을 빙둘러 일곱 램프(등잔)가 있는데 기름 그릇에서 일곱개 관이 나와서 그 등잔과 연결되어 기름을 공급하는 모습이다.
순금 등잔대는 '교회'를 의미한다.
계 1:20 요한의 환상에서도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를 빛을 발하는 촛대로 비유한 것은, 어두운 이 세상에 교회가 빛을 비추는 것이 그 기대 역할이기 때문이다.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에서도 '우리들도 등대되어 주의 사랑 비추세'라고 헌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환상 속의 금등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을 위한 금등대 '메노라'와는 다른 점 3가지가 있다. 기름 그릇, 일곱 관, 두 감람나무 등이다. (즉 환상 속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었고, 그러기에 특별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순금의 의미?
교회는 금과 같이 귀하고 그 본질이 불변하는 진리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교회는 귀하고 소중하다. 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모임을 의미한다. 교회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교회는 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변치 않는 진리 위에 서있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변해서는 안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변하지 말하야 한다.
두 감람나무는?
(슥4:14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을 의미한다. 온 세상의 주(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종을 의미하는데 직접적으로는 당시의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예수아)와 총독인 스룹바벨을 의미한다. 즉, 영적지도자와 정치적 지도자 둘이었다.
기름은?
본문 11절에서는 '금 기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직접적으로는 금빛을 띄는 기름, 곧 감람유를 의미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교회가 이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다.
이 등잔대는 두 감람나무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아 일곱 기름관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기름으로 순금 등대에 불을 밝히는 구조다. 그러나, 감람나무 스스로가 기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감람나무를 키우시고 기름을 생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감람나무는 성도와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도 모두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지만, 특히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더욱 성령 충만해야 한다.
오직 나의 영으로
(슥4:6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힘 (히, 하일) - 군대의 힘, 집단의 힘을 의미한다.
- 능력 (히, 코아흐) - 육체의 힘, 기력을 의미하며 삼손의 '힘'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다.
- 나의 영 (히, 루아흐) - 성령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독립적인 정부나 경제적/군사적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성전 건축은 힘이나 제물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라는 말씀이 본문의 주된 문맥이다.
주의 일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삼손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으나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돌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암몬왕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했던 사울이었지만 그에게서 성령이 떠나자 악령이 찾아와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승리의 삶을 살았다.
왜 신앙생활의 결론은 성령인가?
신앙생활의 결론은 언제나 성령이다. ‘오직 나의 영으로!’ 성령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다. 성령은 에너지나 감정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의 한 위격이시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며, 성령의 감동과 역사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 이 괄호의 내용은 김은호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아니라, 제가 덧붙인 내용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명령’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것이 바로 다니엘 기도회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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