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 오륜교회 예배 설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황금기도 있지만 암흑기도 경험하게 된다. 자기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본다면 꼭대기에 방점을 찍을 때도 있지만 바닥을 치는 암흑기를 걸을 때도 있을 것이다. 황금기는커녕 일상의 생활조차 누리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암흑기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며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커녕 음성조차 들리지 않을 때 더욱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 인생도 여러 번의 암흑기가 있었다. 첫 암흑기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시골 출신으로서 중학생 때 무척 열심히 공부했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할 때 집을 떠나 유학(遊學)을 갈 수 없는 가정 형편상 수원이나 성남의 고등학교를 지원할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도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고, 결국 시골 고등학교를 다니며 열등감에 괴로워했다. 혼자 하는 공부가 어려워 부모님께 부탁을 해서 겨우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시골 벽지였기에 학원에 한 번 다녀오기 위해서는 왕복 4~5시간을 허비해야 했기에 학원도 한 달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다음 암흑기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뿐만 아니라, 심장병을 앓던 누나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다. 아픈 누나가 안쓰러워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기에 더 어렵고 힘들었다.
성도들도 비슷한 경험을 이미 겪었을 수도 있고, 지금 바로 그러한 상황에 있기도 할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련의 시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기만 할 때 우리는 더욱 힘들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께서 보시기에 좋으실 정도였으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우리 인류는 모두 죄인이 되었고, 실제로 악했다. 창 6:11~13 땅이 부패하여…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멸하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셨다. 모두 죽고 구원받은 노아 일가는 1년을 꼬박 방주 안에 머물러야 했다. 살아남은 것은 감사했지만, 600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방주에 들어가서 601세 되던 해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왔으니(창 7:1, 창 8:16) 그 1년 동안 노아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는 구절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노아에게 없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기억하시는 하나님]
노아는 방주에서 1년이 넘는 기간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채 보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노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지금처럼 스마트폰과 버스정류장의 안내판을 통해 버스의 운행/도착 상황을 세밀히 알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과거 우리나라 특히 시골의 버스 운행은 불규칙했다. 오지 않는 버스를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리던 마음을 아는가? 버스가 늦거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데 무작정 기다려야만 할 때의 답답함이 과거에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 답답함이 노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비록 구원받아 살아남았지만 노아의 방주 안이 무척 쾌적한 환경이었을까?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 우짖는 소리, 부족한 양식… 그 속에서 기약없는 오랜 시간을 노아는 보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없었다.
그때 (창 8:1 하나님이 … 기억하사)라는 말씀이 나온다. 기억하다 (자카르, 히)는 어휘는 '기억난다'와는 달리, 잊고 있다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자카르’ 기억하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은 한 번도 노아를 잊지 않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기존 개역성경에서는 ‘권념하다 - 마음에 새기다’로 번역했다. 머리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간직하는 것이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보면 걱정되지만 안 보면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억 속에 있고 마음을 모두 차지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에 두신 것을 '기억하사'라고 했다.
하나님의 음성이 없어서 답답한 시간을 보낸 노아였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노아를 잊으신 적이 없었다. 우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이다.
(출 2:24~25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 자카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사람은 약속을 잊을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와의 약속을 잊으시는 분이 아니다. 기억하신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해도 자녀에게 변화가 없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 건강을 위해 기도하지만 병을 계속 앓게 될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등등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때가 많다. 그러나 기억하라. 자카르의 하나님은 1년이 넘도록 노아에게 응답이 없었지만 언제나 노아를 기억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맺은 언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포기하고 절망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기간 동안에도 일하고 계셨다. (창 8:1~2.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셔서 물을 빼고 비가 그치게 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라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시편 23:4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 이러한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다. 하나님은 침묵 중에도 일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의 그 버림받은 느낌의 절규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사탄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그 침묵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의 일을 하고 계셨다. 우리가 모든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행동이 뒤따르는 ‘기억하심’]
하나님은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기억하시고 행동하신다.’ - 자카르에는 행동하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 29:15 말씀에 따르면, 혹시 어머니가 자식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노환으로 정신이 맑지 않아 자녀를 알아보지 못하실 때가 많은 어머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는 자녀는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자녀가 징계를 받는 순간이라도… 부모가 자녀를 혼내는 순간에도 부모가 결코 자녀를 잊지는 않는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눅 11:13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기억하시는 하나님 - 여호와 자카르.... 이 말은 여호와 이레/닛시/삼마 등 모든 하나님의 품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모든 품성의 시작은 ‘기억하심’이다. 기억하시기에 준비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치료해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
하나님의 기억하심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168시간 중에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할까?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처음 한 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은 것이다.
성경에서 제사를 논할 때는 언제나 구원의 역사가 관련이 있다. 제사는 구원받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크다.
출 17:14~15 모세가 승리한 후 맨 먼저 제사를 드렸다. 감사의 제사였다.
삼상 7:17 사무엘이 라마로 돌아가서 맨 먼저 감사 제사를 드렸다.
(에스라) 라 3:2~3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성도]
하나님의 기억하심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반드시 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기억하는 삶을 살아간다. 소외된 이웃들을 기억하고, 함께 손잡아 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줘야 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사랑과 섬김의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
[참고]
여기서 ‘기억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자카르’(zakar)이다. 이 단어의 기본 개념은 ‘기억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등의 뜻으로 사람의 정신적 활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때로 이 단어가 ‘권고하다’의 뜻으로 쓰일 경우에는 사람들의 망각을 일깨워 잊어버렸던 사실들을 떠올리고 기억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경우는 주로 히브리어 ‘사역형’인 ‘히필’(Hiphil) 형태가 쓰였다. 따라서 ‘기억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자카르’는 단순히 과거의 어떤 사실을 기억하고 암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묵상하고 회상하고, 스스로를 권면하여 일깨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영적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창세기 8:1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라는 말씀에서 ‘권념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권념’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짐승들을 ‘생각해 주신 것’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모세는 옛날을 ‘기억하라’고 명령형으로 서술하였다. 이는 기억에 대한 당위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과거의 수많은 사건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적 교훈을 깨닫기 위해 성도들은 옛날의 일들과 과거 인물들의 삶을 묵상하고 회상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님의 언약을 떠올리거나 나에게 말씀하시는 영적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의 결과는 때로는 ‘회개’를 불러오는 원동력이 된다. 에스겔 6:9은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라고 하였다. 또한 민수기 15:40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라고 말씀하였다. 이는 올바른 ‘기억’이 참된 회개를 불러와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서게 해 줌을 일깨워 준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상고하려는 자는 성경을 통해 ‘옛날’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이 나의 과거의 삶을 회상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떠올리게 하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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