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추도하며
아버지께서 주님 품으로 가신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울수록 삶의 허무함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삶은 허무한 것인지, 아니면 가치 있는 것인지 내 생각도 시시때때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합니다.
전주 온누리교회의 장로이신 형님이, 같은 교회 박희정 목사님의 설교를 기반으로, 아버지 추도예배를 위한 메모를 작성해 오셔서 남매들이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그 글이 제게 많은 위로를 주었고 마음의 중심이 되어주었기에, 여기에 정리합니다.
전도서 1장의 헛됨
전도서 1장 2절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성경책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염세적 서적의 느낌이 듭니다.
여기 전도서에서 '헛되다'는 표현의 히브리 원어는 '헤벨 hebel, habel'입니다.
헤벨은 본래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즉 증기 vapor, 숨 breath, 헛됨 vanity를 의미합니다.
성경이 전도서 이외의 곳에서 '헤벨'이라는 단어를 '헛되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은 '거짓된 신神'(신 32:21), '개인적인 치밀어 오르는 감정'(사 49:4) 등입니다.
그런데,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은 모두 무의미한 것일까요?
가인의 동생 아벨을 생각합니다
창세기 4장 2절에 가인(Cain)의 동생 아벨(Abel)의 이름이 나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 살해당한 비운의 인류 최초의 순교자가 아벨입니다. 짐작하시겠으나, 아벨의 히브리어 단어 역시 '헤벨 Hebel'입니다.
아벨은 이름의 의미대로 이 세상에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구약 성경 여러 곳에 걸쳐서 아벨의 이름은 계속 언급되며 잊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벨이 무고하게 흘린 피는 나중에 예수님의 보혈로 연결됩니다. (히 12:24)
절대 잠깐 있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중요합니다.
성경의 '헛됨'은 불교의 공(空)인가?
(불교의 '공'도 단순히 허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색(色)과 연계되어 심오한 뜻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성경 전도서에서의 '헛됨'은 불교에서의 '공'에 대해 우리가 대개 생각하는 것처럼 허무의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이 일시적이라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함을 생각하고 그에 견주어 우리 인생이 일시적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전도서에서의 헛됨입니다.
'죽음'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는 전도서에서의 헛됨은 허무한 인생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현상으로서의 '헤벨'인 우리의 생명과 삶이지만, 그것이 창조주 절대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9장 9절에서는 이 헛된 '곧 사라질' 모든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즉, '의미 없다'가 아니라 '의미 있다'라고 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일시적인 인생의 시간을 통해서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삶을 유익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전도서의 목적인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표현대로 한다면, 일시적인 생물학적 생명에서 시간을 초월한 영적 생명으로 바뀌는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10년 전에 이미 '기독신문'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장성길 교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라는 책을 소개하며, 유사한 맥락 속에서 전도서 1장 2절의 '헛되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얘기해줍니다.)
우리 삶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이 일시적인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견줄 때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 삶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허락하셨습니다.
이 삶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고, 영원한 주님 품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삶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일시적인 것일수록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존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애하신 구세주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0) | 2022.12.16 |
---|---|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0) | 2022.12.16 |
하나님은 사람을 왜 창조하셨을까? (0) | 2022.12.14 |
내 주를 가까이 (0) | 2022.12.10 |
배와 방주 (0) | 2022.12.04 |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찬양하려면 (0) | 2022.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