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에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동창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선생님 중의 한 분이셨고 훗날 모교의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신 당시의 윤리 선생님이 내게 건네 준 글은, 10년 내에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로 크게 성장하여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행정고시나 사법시험을 뜻하신 것이었겠으나, 그 10년 뒤에 난 고시와는 동떨어져, 어느 외국인 회사의 금융산업 전문가로서 데이터 모델링의 재미에 쏙 빠져 있었다. 그 10년 동안 난 학부를 마치고 은행원이 되었었고, 한국군을 거쳐 미8군 카투사 병장으로 제대를 했으며, 청춘의 수많은 기쁨과 아픔, 그리고 상실과 충만을 경험했다. 난 예쁘고 착한 아내와 한 갓난 아기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난 아내는 여전히 하나였지만 아들은 하나를 더 얻었고, 회사에서는 인사관리자가 되어 후배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8년이 더 흐른 지금은, 그 동안 회사에서는 임원이 되었으며 회사를 바꿔 더 많은 책임을 갖고 일하고 있다. 식구는 더 늘지 않았지만 이제는 두 아들 모두 나보다 큰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앞으로 1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 보곤 한다. 난 현직에 있을까?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내와 아이들은 내 곁에 있을까? 큰아들은 결혼을 할 수도 있을텐데…? 아니면 정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샤론 동산에서 그 분과 함께 있을까…?
그 유명한,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를 인도네시아 출장 길에 가루다항공 비행기내에서 보았다. 영어 제목은 ‘Architecture 101’이었다. 입을 맞추면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던 그 때, 숱한 편지를 거의 매일 보냈지만 ‘사랑한다’ 고백은 할 줄 몰랐던 그 때… 옛 물건 사이에서 우연히 꺼낸 카세트 테이프에서 들려오는 30년 전의 내 노랫소리처럼, 책장 위 먼지 쌓인 앨범 안의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사진 중에 여럿이 함께 찍은 어느 사진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그 누군가(?)처럼… 낯설지만 익숙한 그 모습이, 추억이 구름 위 비행기 안에서 새록새록 떠오른다.
서울에 돌아가면 스타일링 젤 대신에 하드 무스를 발라 봐야지. 전람회의 기억 속의 습작을 들어 봐야지, 집사람에게 금년 첫눈 오는 날에 만날 곳을 말해 둬야지,… 여러 생각과 다짐들이 떠오른다. 그 친구들은 인터넷 검색엔진에 내 이름을 넣어볼까? 흔하지 않은 이름이니 찾기도 쉬울 거야.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 속에 그미(들)도 있을까?
인도네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한국인 승무원이 세관신고서를 나누어 준다. 목적지가 가까워졌나 보다. 이제 남은 비행시간 동안에는 지난 10년들은 그만 생각하고, 앞으로의 10년들을 꿈꿔야겠다.
- 발리섬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쓴 글을 발리섬 두째날에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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