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과 친구인 유승경 군이 facebook에 올린 글이다. 친구도 따뜻하고 이 공익근무요원도 참 따뜻하다.
반대 이야기도 있다. 바로 25년 전 내 얘기다.
1.
신입행원 몇 달만에 입대한 나는, 한국군 상하반기 기초훈련과 미군 신병훈련을 마치고 용산본부사령실에 배치받은 기쁨도 잠시, 그 내부의 Security Forces에 보직 배치되었다. 지금은 훨씬 더 등산객들로 붐비는 서울 근교의 어느 산자락, 군용 고속도로 진입로 초소를 지키는 Private(이등병)으로서 나는 야간 초소 근무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2.
M16과 두 탄창의 실탄을 갖고 미군 1명과 함께 초소를 지키는 임무였는데, 그 미군에게 장트러블이 생겨 CP(Command Post)로 잠깐 올라간 사이, 난 혼자 였다. 그가 떠나면서 한 얘기는 '절대 민간인(any fuck'n 아저씨)이 통제선을 넘어서게 하지 말고, 초소 안에 들여서도 안된다.'였다.
3.
바깥 날씨는 쌀쌀하고 초소 안은 따뜻했기에 슬쩍 졸음이 밀려오던 그 순간, 초소 문이 활짝 열렸다. 잔뜩 취한 한 아저씨가 거기 서 있었다. '어이, 추운데 나 좀 들어가야겠다.' '안됩니다. 여기는 군초소입니다.' '야, 너 양놈이야 한국사람이야? X발' 역겨운 술냄새와 시큼한 안주냄새가 뒤섞인 그 아저씨는 밀치고 들어오려 했고, 나는 M16을 잡은 채로 밀어내고 있었다.
4.
머릿속에는 오직 미군이 남긴 말만이 가득 떠올랐다.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난 소리 쳤다. '아저씨, 계속 이러시면 무력을 써야 합니다.' '무력, 총을 쏠래? 총알도 없는 쉐끼가..' 이제 머릿속에는 새로 배운 미국 전문용어들 (Fuck'n, shit, Damn...)만이 떠올랐다. 맞잡고 있던 M16을 뺏어내면서 군홧발로 힘차게 아저씨의 배를 밀어 찼다. 잔뜩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그는, 단 한 번의 일격에 나가 떨어졌고 반격의 의지도 잃은 채 욕을 해대며 떠나 갔다.
5.
학교 기숙사에서 6월 항쟁을 겪은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나는 민간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군인이 되어 있었고, 그 내 초라하고 무너진 인격의 자화상에 나는 적막한 빈 초소에서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긴 후 오열하던 유다처럼.
6.
전 회사에서 평생의 멘토가 되어 주신 분은, 그 분이 기술서비스 조직의 대표가 되신 후에 전략적인 컨설팅 조직을 신설하시고 나를 그 담당 임원으로 임명하시면서 단 한 가지의 당부를 하셨다. '여러 혁신을 추진하되, 6개월간은 절대 '힘'을 쓰지 말아라.' 힘을 실어 주시면서 당부하신 '힘을 쓰지 말아라.'는 말씀이 큰 지혜가 되었다. 지금도 여러 직원들에게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간혹 발생한다. 내 역할을 성실하고 훌륭하게 다 하되, 그들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유박사의 짧은 글이 이 무더운 아침에 청량제로 내게 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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