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다가 시험 드는 주된 이유
헌금입니다. 그리고 그 헌금의 사용처, 또 담임 목회자의 사례와 지원금, 그리고 교회 재정을 함부로 다루는 직분자들 등의 문제로 시험에 빠지고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거나, 다니던 교회를 떠나 큰 교회로 가서 그저 조용히 출석만 하게 됩니다. 헌금과 재정, 목회자 사례, 교회 부서에서의 집행 등은 대표적 아픔의 원인들입니다.
교회 재정을 담임목사가 다 가져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가져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분만 넉넉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진 지금도 문제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살림이 넉넉지 못하던 70년대, 80년대에는 목회자의 가정은 성미가 있어 '밥'은 굶지 않았고 보리밥도 먹지 않아도 되었던 경우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장로 아들은 공립학교를 다녔지만 담임목사 자녀는 사립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불우한 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가 전무하던 교회에서 서울 사립대 진학, 해외 유학도 교회의 목회자 자녀에게는 가능한 것을 보면서 무척 부러워하기도 했었습니다.
과연 목회자들이 그렇게 넉넉할까요?
그러나, 누이가 목회자와 결혼하고 매형의 모든 유산이 교회에 들어가고, 사례도 받지 못하며 목회를 하고 모두 교회에 헌납하고 은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화'는 제일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비전교회(재정적 미자립교회)는 물론이고 자립 교회, 그리고 목회를 하시는 분들, 목사님, 전도사님 중에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요즘 목회자가 되려면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대학원까지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4년, 신학대학원 3년 해서 총 7년간 공부를 하고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또한, 섬기는 교회에서 충분한 사례비를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겸직하며 목회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마디로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아주 낮은 소득층에 속해 있습니다.
삯꾼 목사? 부도덕한 목회자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의 불편과 비판처럼, 교회 교인들이 피땀 흘려 벌고 아끼고 아껴서 '하나님께' 드린 하나님의 헌금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는 부도덕한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고,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회의 현실을 전반적으로 보면, 목회자들은 대체로 가난합니다. 교회의 중직자들도 자신의 딸이 목회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선뜻 허락하기 어렵습니다.
헌금 때문에 교회를 다니지 못하겠다? 적더라도 헌금을 '계획적'으로 하세요.
일부 교회에 나가길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로 헌금에 대한 부담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교회에 가면 헌금을 꼭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있죠.
하지만 헌금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형편이 안 되고,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데 헌금을 강요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는 갈취나 착취 집단이 아니며, 헌금은 세금도 아닙니다. 누구도 헌금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 헌금 바구니를 돌리는 것을 불쾌하거나 부담스럽게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안 해도 됩니다. 헌금은 강요가 아니라 자발성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헌금은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계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읽어보세요.)
물론 한국 교회 중 일부, 그것도 아주 극히 일부에서 헌금을 강요하거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잊고 본말이 전도된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강력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관례'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 입구에 온갖 종류의 헌금봉투가 나열된 탁자를 놓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오랜 교인들에게는 편리함이 될 수 있지만 초신자나 방문자에게는 낯선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금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헌금을 바라지 않고도 성도의 사귐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헌신'을 위해 가난을 각오한 분들입니다.
목회자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경제적으로 가난해질 것을 각오하고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존경의 눈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시대에 그렇게 어렵게 살 필요가 있나요?”라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그분들 대부분은 신념을 가지고 선택한 길입니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일반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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