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 자리에 들어선 정동배재빌딩에서 일한 지 한 해가 다 되어갑니다.
점심 때마다 산책을 하거나 저녁에 OT meal을 먹으러 가는 식당 곁에는 늘 여러 역사적 장소들이 있습니다.
100년이 다 되어가는 정동제일 감리교회도 있고, 미국 대사관저의 테니스 장 곁을 지나면 덕수궁 중명전이 있습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역사적 현장입니다.
그곳에는 당연히 을사오적이 있습니다만,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놓은 그곳에 가보면 이토 히로부미를 제외하고도 10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1905년 11월17일 고종 주재의 어전회의가 열렸습니다. 학부대신 이완용 등 8명의 대신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고종은 일본 측이 제시한 을사조약에 대해 ‘잘 협상하여 처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실상 조약을 승인하면서 책임은 대신들에게 떠민 것이었습니다. 이날 저녁 일본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대궐로 들어와 8대신을 소집했습니다. 그는 어전회의 결과와 함께 8대신에게 일일이 찬반을 물었습니다.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 등은 반대했습니다. 이완용과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군부대신 이근택은 찬성했습니다. 그 찬성한 5명을 우리는 ‘을사오적’이라 부릅니다.
사람은 살아가다 결정적인 순간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지위나 역할이 높고 중요한 경우에는 본인의 결정적인 순간과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이 겹치기도 합니다. 이때 어떤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 누구는 충신이 되고 누구는 간신이 됩니다. 혹은 을사오적이 됩니다.
을사년에 한규설은 하다못해 이토 앞에서 울다가 졸도하는 시늉이라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을사오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어버버하면 그게 을사오적입니다. 꼭 그들이 간신이라서 을사오적이 아닙니다.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해야 합니다.
일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두 제국을 결합하는 공동의 이익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국이 실제로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이 목적을 위해 아래에 열거한 조목들을 약속해 정한다.
제1조 일본국 정부는 도쿄에 있는 외무성을 통해 금후에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사무를 감독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대표자와 영사는 외국에 재류하는 한국의 관리와 백성 및 그 이익을 보호한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책임지며, 한국 정부는 이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서는 국제적 성격을 띤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 폐하의 아래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전적으로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해 서울에 주재하며 직접 한국 황제 폐하를 만나볼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일본국 정부는 또한 한국의 각 개항장 및 기타 일본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곳에 이사관 을 둘 권리를 가지되,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 아래 종래 재한국 일본 영사에게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행사하며 아울러 본 협약의 조항을 완전히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서 처리할 것이다.
제4조 일본국과 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과 약속은 본 협약의 조항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효력이 계속되는 것으로 한다.
제5조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할 것을 보증한다.
이상의 증거로 아래의 사람들은 각기 본국 정부에서 상당한 위임을 받아 본 협약에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는다.
광무 9년 11월 17일
외부대신 박제순 (인)
메이지 38년 11월 17일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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