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황동규 시

 

갑자기 많은 눈이 내려 잘 걸을 수 없는 날
나는 너를 부르리
그리고 닫힌 문 밖에
오래 너를 세워두리

희부연한 어둠 속에 너의 머리 속에
소리없이 바람은 불고
문이 열리면
칼로 불을 베는 사내를 보게 해 주리

타는 불 머리의 많은 막막함
흩어진 머리칼 아래 무심한 얼굴
혼자 있는 사나이의 청춘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뒤를 보려무나
그 사이에 나는 웃으리, 금간 얼음장에 희부연한 빛으로,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나는 너를 보리.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황동규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金殷生 개인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