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날> 윤제림
어머니는 삼키듯
‘세상에’라고만 했다
아버지는 눈물만 글썽이며
그만한 말도 못했다
우리가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습니다.
형님의 대입 원서가 누락되어 고등학교 캐비넷에서 마감일 밤에 발견되었던 그 날...
그 통지를 받으신 어머니의 숨이 막히는 탄식의 소리를 곁에서 들었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이 시인의 시집 제목은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입니다.
역시 어머니가 생각히는 제목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다른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장편 (掌篇)
윤제림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내 곁을 지나던 여자가/우뚝 멈춰 섰다
“……17호실?
으응,
알았어
응
그래
울지
않을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다 짐승처럼 운다
17호실에…… 가면
울지 않으려고
백주대로에서 통곡을 한다
이 광경을
김종삼 시인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다 말고
윤제림 시인이 김종삼 시인을 언급한 것은 아마도 이 시 때문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장편 (掌篇)
김종삼
작년 1월 7일
나는 형 종문이가 위독하다는 전달을 받았다
추운 새벽이었다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허술한 차림의 사람이 다가왔다
한미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두 딸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부여에서 왔다고 한다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한다
나이는 스물둘, 열아홉
함께 가며 주고받은 몇 마디였다
시체실 불이 켜져 있었다
관리실에서 성명들을 확인하였다
어서 들어가 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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