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영적 세계관
죽은 할아버지의 귀신이 너에게 있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고 한다는 발상은 성경의 세계,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용하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한 거 다 맞추었다”고 하는 무속인에게 접신되어 있다고 하는 그 존재를, 성경대로 판단하자면 초자연적 세력인데, 하나님께 대적하는 세력에 가깝습니다. 즉, 사탄이나 악마, 복음서에 보면 “악한 영들”이라고 불리는 세력들이 있고, 그 영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님이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굳이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서에도 “너희들 작은 자를 무시하지 마라. 그들의 천사가 매일 하나님을 뵙는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천사도 등급이 있는데, 하나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천사는 많지 않거든요. 그 등급 속에서 높은 천사만이 하나님 얼굴을 뵙는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의 전통적 귀신 관념과 기독교의 초자연적 존재의 차이
기독교 신학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냐고 물어보면,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는 ‘번역의 문제’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성경과 성경이 말해 주는 바를 믿는 사람들이니, 그곳에서 초자연적인 세력들, 영적 세력들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단어들이 어떻게 번역되는지 살펴봐야 하죠.
첫 번째, 번역의 문제를 말씀드리면, 성경에는 초자연적 세력 가운데 하나님께 맞서는,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영들이 나오는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돕는, 개인을 유심히 살피는 영 세력(천사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과 그분의 성도들을 고발하고 공격하는 적대적 초자연 세력이 있습니다. 이 적대적 초자연 세력들을 성경에서는 예전 번역으로는 “사단”이라고 했고, 요즘은 “사탄 satan”이라고 번역하죠. 사실 같은 말입니다. 예전에 번역하신 분들이 경음을 안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탄’ 대신 ‘사단’, ‘크리스토스’를 ‘그리스도’로 순화해서 번역한 식이죠.
또 “마귀”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마귀”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디아볼로스’인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광야로 몰려 시험을 받으실 때, 그 시험하는 존재를 디아볼로스, 즉 “마귀”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4장 10절에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시죠.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탄과 마귀가 호환되어 쓰이는 용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적하는 세력을 사탄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부릅니다. 결국 둘 다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 외에 “귀신”으로 번역된 영적 세력들도 있습니다. 주로 헬라어 성경에서는 “더러운 영들”이라고 표현하거나, “부정한 영들”이라고도 하지요. 이걸 한국어로 “귀신”이라고 번역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귀신’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쓰이던 말로, 그 자체의 역사와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문화 속에서 대략 “귀신이 무엇인지” 감을 잡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조차 ‘귀신’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혼동을 줘요.
우리 문화에서 ‘귀신’이라 하면, 어떤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어서 한(恨)이나 미련이 남아, 그 혼백(정확히는 ‘혼’)이 이승을 떠돌다가 사람 몸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면서 이승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거나 저주를 준다고 생각하죠. 즉, 죽은 조상이나 억울하게 죽은 이가 귀신이 되어 돌아다닌다, 하는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예컨대 “죽은 할아버지의 귀신이 너에게 들어갔다”라든지, “관우가 억울하게 죽어서 그 영이 나에게 들어왔다” 같은 샤먼적·민속적 이야기가 있죠.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이런 전통적 귀신 개념을 그냥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어요. “가문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며 걱정하고, 죽은 누군가의 원혼이 자신에게 해코지한다고 두려워한다든지요. 그러나 이는 성경의 세계,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통의 인간 이해, 귀신 이해입니다. 그런데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대적하는 초자연적 세력을 두고 “귀신”이라는 말을 쓰다 보니 둘이 섞여서 헷갈려 버린 겁니다.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 세력들
그렇다면 성경은 초자연적 세력을 어떻게 말하느냐를 간단히 보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을 섬기는 영적 세력(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영적 세력, 즉 사탄, 악마, 마귀와 그 하부 세력이 있죠.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죽어 원한이 남아 귀신이 되었다”는 개념은 없습니다.
간혹 기독교 신앙에서 “사람에게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이 불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몇몇 교단을 빼면 대부분 주일에 외우는 사도신경을 떠올려 보시면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으며…”라고 고백하지, “영혼이 불멸할 것을 믿습니다”라고는 하지 않아요. 인간의 영혼 불멸 사상은 고대 지중해 세계, 특히 그리스적 세계관이나 이집트식 세계관에 가깝습니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 전체에서는 인간 영혼이 불멸한다는 사상이 독특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사도신경도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고 하지, “영혼이 불멸한다”고 말하지 않죠.
정리하자면, 성경의 세계에서는 “죽은 사람이 억울함을 풀지 못해 귀신이 되어 떠돌다 누구에게 들어간다” 같은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초자연적 존재가 사람과 관계할 때, 그 사람을 사로잡는 일이 일어나는데,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만나셨고, 그 악령들을 쫓아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의 원혼이 아니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탄 또는 마귀의 세력(하부 세력)이라고 보는 편이 성경 전체를 통해 봤을 때 제일 적절합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이 “악한 영들”을 쫓아내셨다는 이야기가 잔뜩 나오잖아요. 그것을 안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건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악이 작용했다고 느끼기도 하지요.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장면들이 있고, 그 때 ‘악한 영들’, ‘더러운 영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예수님은 그것들을 쫓아내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저는 그 기록을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분을 섬기는 초자연적 세력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마귀)과 그 부하 세력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요한계시록에서는 결국 그 악의 세력이 마지막에 멸망할 것이라 쓰여 있고, 그걸 굳이 의심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귀신”을 두려워하고 “악마”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 악한 세력이 우리에게 큰 해를 미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무속인 중에 “신이 내려 용하다”고 하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다 맞추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 때 접신한 존재가 성경에서 말하는 ‘마귀의 하부 영적 세력’인지 아닌지 우리가 정확히는 판단 못 해도, 적어도 성경 기준으로 보자면 “하나님께 대적하는 초자연적 세력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2분법적으로 모든 걸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괴이한 현상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미신적·주술적 생각이 너무 강해서 일상을 제대로 못 사는 건 문제입니다. 과학계에서는 “뇌의 작용”이라며 규명하려 노력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스위스 로잔공대 올라프 블랑케 박사와 제네바 대학병원 신경학 전문가 팀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느끼는 간질 환자를 검사했더니, 뇌의 특정 부위를 전기 자극하자 그런 현상이 발생하더라, 하고 보고했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귀신이나 악마가 아니라 뇌의 착각”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죽은 사람이 원한을 가져 혼백으로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든가, “묘자리를 잘못 써서 날마다 조상 귀신이 해코지한다” 같은 말은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볼 때 맞지 않는 것입니다.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다만, “사무엘의 영이 무당의 접신을 통해 불려 나왔다”는 구약의 이야기가 하나 있죠(사무엘상 28장). 이것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가 있어요. 정말 사무엘의 영을 불러냈다는 견해도 있고, “사무엘인 척하는 악령”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접신자가 속임수를 썼다는 등의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 흐름을 보면 “죽은 사람의 혼백이 이승에 남아 귀신이 된다”는 사상은 없어요. 성경은 “인간 안에 불멸의 씨앗이 있어서 영혼이 살아남는다”기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는 부활”을 말합니다. 부활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지, 우리 영혼의 고유 능력에 있다고 말하지 않거든요.
어떤 권사님께서 “아들에게 천사가 너를 지켜줄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믿음과 기도가 적절한지 궁금해하시는데, 마태복음서의 “너희 중에 작은 자들의 천사가 하나님을 뵙는다”라는 구절이 있듯, 성경 자체가 천사를 완전히 부인하지 않습니다.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천사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지만, 가톨릭 등에서는 천사론이 더 발달했죠. 저는 굳이 천사에 대한 감각을 키우자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런 구절이 있는 걸 무시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우리 곁에 하나님의 선한 영적 세력이 있다는 걸 의식하는 것은 성경의 신앙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신”이나 “악마” 같은 걸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모든 일을 귀신 탓으로 돌리거나, 반대로 천사나 영에 지나치게 얽매여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근거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며 사는 데 집중해야지, 귀신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영적 존재들만 맹신해서는 곤란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자꾸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방향이 달라지잖아요. 예를 들어 “질투심으로 산다”고 하면, 외형적으로 성공해도 인생의 질이 나빠집니다. 마찬가지로, 혹시 초자연적 세력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라는 것이지요.
또 사주·명리·혈액형·별자리 등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사주나 별자리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붙들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주나 명리, MBTI에 얽매여 “내 운명이 이럴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귀신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귀신이 내 인생을 해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믿죠. 아무리 악한 세력이 강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최종적으로 승리한다고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자로서 권면드리자면, “너무 귀신에 매이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정말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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