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단어 수업
성경 속 ‘의롭다’는 “깨끗한 양심으로 옳게 행하며 세상의 정의가 이뤄지는데 마음을 쓰는” 사람을 한 단어로 적확하게 묘사하는, 다분히 실용적인 표현인 까닭이다. 최근 표현 가운데는 ‘진실한’ ‘완전한’이란 뜻의 ‘인테그리티(integrity)’가 가장 가까운 단어이다.
‘의’는 학자의 관점에 따라 ‘사회적 정의’나 ‘개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성품적 특성’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은 일관되게 의를 “자비와 관용, 인내와 친절이 포함된 개념”으로 소개한다. 한쪽의 의미만 담긴 “냉철한 의나 분노하는 정의”로 성경적 의를 해석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기독교 전문 용어로 사용되는 ‘복음’도 당대엔 ‘좋은 소식’을 뜻하는 일상 용어였다. 초대교회 성도에게 이 단어는 “절대자이자 구원자인 신이 세상의 압제자에 대항해 정의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대변혁의 소식 그 자체였다. 이런 면에서 “종교적 개종과 내세에만 연결된” 현재의 뜻은 편협한 해석이다.
“증거가 결여된 신념이나 의견에 대한 통칭”으로 오독되는 ‘믿음’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와 함께 사는 삶’으로 해석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 은혜로 주님과의 유대에 참여하는 것”이지 “인간이 붙잡는 이상한 신념이 아니”라는 의미다.
‘소망’은 최근 정치권과 대중문화에서 ‘바람’이나 ‘욕망’의 의미로 종종 사용됐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 단어를 선거 운동 주제로 삼은 바 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위시한 성경은 소망을 “종일 속삭이는 기도”이자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감수하는 작은 위험이자 단순한 신뢰”란 의미로 기록했다.
책 속의 인용구
p. 21-22
들어가는 글
성경은 고대의 낯선 문서다. 영어로 번역을 해도 여전히 신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를 넘나드는 경험이다. 우리는 성경의 언어를 우리의 모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성경의 중심에 있는 신학적 개념들을 전달하는 일도 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 개념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 어휘들 가운데 그 의미를 충분히 살려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p. 26
1장 의: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서의 진실함, 정의 그리고 긍휼 ∥ 마태복음
누군가는 위의 묘사로부터 ‘의’는 결국 율법적으로 꼼꼼히 의무를 다하고 법과 규율을 준수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법과 규율은 좋은 것이지만, 의는 그 이상의 개념이다. 의는 관계 속에서의 신실함과 충성(약속을 지켜 다른 이를 위해 ‘함께 있어 주는’)에 관한 것이고, 심지어 다른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도 포함한다.
p. 79-80
3장 용서: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풀어 주고 회복시키기 ∥ 누가복음-사도행전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할 때 나는 판사가 죄인을 풀어 주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누가의 견해를 반영한 더 나은 비유는 자기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의 비유다. 용서받은 우리는 사회로 풀려나온 죄수가 아니다. 우리는 포옹하며 환대받은 아들과 딸이다.…용서는 단지 커다란 생명책에 아주 작은 글씨로 당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걱정하던 아버지의 눈에서 흐르는 기쁨의 눈물과 뒤섞여 버린 당신의 뺨에 맞닿는 그분의 입맞춤을 느끼는 것이다. 당신은 잃어버린 바 되었었고, 되찾아졌다.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p. 119
5장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함으로 누리는 새 생명 ∥ 고린도전후서
세상은 ‘승자’와 ‘패자’를 세상의 방식에 따라 정의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라는 렌즈를 통해 다르게 바라본다. 사실 하나님은 소위 ‘패자’와 ‘보잘것없는 자’(nobodies)를 자신의 구속 계획의 일부로 택하셨다. 이는 우리가 사람과 소유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을 바꾸시기 위한 것이다(고전 1:28).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의 더 깊은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에 대해 죽고,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한다.
p. 172-173
8장 교제: 하나님 그리고 다른 이들과 삶 나누기 ∥ 빌립보서
교제는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유익이 아니라 필수다. 재미가 아니라 복음의 임무다. 그리스도인이 서로에게 두는 거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거리를 나타낸다.
p. 180
9장 소망: 하나님이 구속하신 미래에 기대는 것 ∥ 데살로니가전후서
구약에서 소망의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을 때, 나는 내가 발견한 사실에 놀랐다. 이전에 나는 성경이 주로 종말론, 곧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 세계의 최종적 구속과 회복에 관해 이야기할 때 ‘소망’을 사용할 거라고 가정했다.…하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구약이 소망을 먼 미래에 있을 성취의 때에 관한 것으로만, 혹은 대부분 그런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스라엘은 종종 매우 ‘현재적’인 방식으로 소망을 고백했다.
p. 224
11장 평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온전함, 선함, 조화 ∥ 히브리서
결국, 기독교적 평화가 곧 안식처는 아니다. 그것은 삶의 수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회복 탄력성(resilience)과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맞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감싸는 보호막과 같다.
p. 236
12장 종교: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기 ∥ 야고보서
참된 종교는 외부를 향하며, 경건을 삶으로 구현한다는 개념에 기초하여 야고보는 수많은 사회 문제를 다루지만, 그중 경제 문제에 방점을 찍는다(1:9-10; 2:1-7; 5:1-6). 종교는 돈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야고보가 신약의 ‘아모스’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할 것이다. 아모스서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불순종을 고발하고 심판으로 위협하신다(암 2:4-5). 이러한 부패는 주로 경제 영역에서 나타났다.… 아모스는 참된 종교는 언약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선을 구하는 것이라고 상기시킨다(14절).
p. 297
15장 증언: 예수님과 그분의 길을 옹호하는 공공의 대변자-무슨 일이 닥쳐도 ∥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휴거에 관한 책이 아니며, 종말의 때는 정말로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면초가에 내몰린 온유한 그리스도인들을 도와 그들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과, 세상이 그들을 거부하고 수치를 주고 고문하며 죽이더라도 그들의 공적 증거가 가치 있고 영광스러우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에 관한 책이다.
올바른 교회 용어
△’제단’ - ‘예배당’ 또는 ‘교회당’
△’ 대표기도’ - ‘기도 인도’
△’ 기도드렸습니다’ - ‘기도드립니다’로 해야 옳다.
△’ 삼일 저녁 예배’ - ‘수요일 저녁 예배’
△’ 성서’ - ‘성경’
△’ 성가대’ - ‘찬양대’
1 헌금과 연보 어떻게 다른가? 12
2 세례와 침례 15
3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복 주시는 분 19
4 주일 대예배는 주일예배로 23
5 성가대는 찬양대로 27
6 교회의 창립과 설립 31
7 예배 사회자는 예배 인도자로 36
8 소천하셨다 39
9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43
10 할렐루야와 알렐루야 46
11 평신도는 성도로 49
12 열린 예배 52
13 ‘제단/성전’은 예배실로 56
14 추도예배 59
15 예찬과 성찬을 구분 62
16 당회장과 담임목사 65
17 ‘준비찬양’은 ‘예배 전 찬양’으로 68
18 태신자는 전도대상자로 71
19 세례(침례) 요한은 세례(침례) 자 요한으로 74
20 안식일은 주일로 77
21 일요일과 주일의 차이 81
22 천당과 하나님의 나라 84
23 증경은 전임으로 88
24 총회 용어들 - ‘가’ 하시면 ‘예’ 하시오 91
25 일제의 잔재 ‘묵도’는 ‘묵상기도’ 또는 조용히 기도 드림으로 94
26 대표기도는 기도인도로 98
27 주님께서 간섭해 주시옵소서는 주관해 주시옵소서로 101
28 칠성판은 고정판 또는 시정판으로 104
29 ‘당신/하나님 아버지’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107
30 성경과 성서 111
31 서로 다른 추수감사절과 아쉬움 - I 115
32 서로 다른 추수감사절과 아쉬움 - II 119
33 하와와 이브 122
34 수석은 선임으로 127
35 대강절, 대림절, 강림절 132
36 기다림의 다섯 개의 촛불 136
37 크리스마스는 성탄절로 139
38 영시예배, 자정예배는 송구영신예배로 말씀 뽑기는 절대 금지 143
39 예식과 예배의 구분 146
40 축제는 잔치로 149
41 하나님 말씀에 도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도전을 주셨다 152
42 이중 피동: 되어지다, 예배 보러 간다 155
43 팩트 체크:회심 후 ‘큰 자’였던 사울이 ‘작은 자’인 바울로 158
44 창세기서, 민수기서, 룻기서, 욥기서는 창세기, 민수기, 룻기, 욥기로 161
45 시편 O장 O절은 시편 O 편 O절로 164
46 뿌리 박힌 무속·토속 신앙 용어의 근절: 입신 167
47 사순절 재의 수요일의 ‘검은 십자가’와 동성애자들의 ‘반짝이 십자가’ 170
48 달란트 시장보다는 나눔 시장 174
49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는 ‘주장하시고/인도하시고’로 177
50 지금은 예배의 처음 시간이오니(?), 교회를 믿는다(?) 180
51 은혜와 은총 183
52 종려주일와 고난주간 186
성경 속 ‘의롭다’는 “깨끗한 양심으로 옳게 행하며 세상의 정의가 이뤄지는데 마음을 쓰는” 사람을 한 단어로 적확하게 묘사하는, 다분히 실용적인 표현인 까닭이다. 최근 표현 가운데는 ‘진실한’ ‘완전한’이란 뜻의 ‘인테그리티(integrity)’가 가장 가까운 단어이다.
‘의’는 학자의 관점에 따라 ‘사회적 정의’나 ‘개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성품적 특성’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은 일관되게 의를 “자비와 관용, 인내와 친절이 포함된 개념”으로 소개한다. 한쪽의 의미만 담긴 “냉철한 의나 분노하는 정의”로 성경적 의를 해석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기독교 전문 용어로 사용되는 ‘복음’도 당대엔 ‘좋은 소식’을 뜻하는 일상 용어였다. 초대교회 성도에게 이 단어는 “절대자이자 구원자인 신이 세상의 압제자에 대항해 정의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대변혁의 소식 그 자체였다. 이런 면에서 “종교적 개종과 내세에만 연결된” 현재의 뜻은 편협한 해석이다.
“증거가 결여된 신념이나 의견에 대한 통칭”으로 오독되는 ‘믿음’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와 함께 사는 삶’으로 해석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 은혜로 주님과의 유대에 참여하는 것”이지 “인간이 붙잡는 이상한 신념이 아니”라는 의미다.
‘소망’은 최근 정치권과 대중문화에서 ‘바람’이나 ‘욕망’의 의미로 종종 사용됐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 단어를 선거 운동 주제로 삼은 바 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위시한 성경은 소망을 “종일 속삭이는 기도”이자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감수하는 작은 위험이자 단순한 신뢰”란 의미로 기록했다.
책 속의 인용구
p. 21-22
들어가는 글
성경은 고대의 낯선 문서다. 영어로 번역을 해도 여전히 신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를 넘나드는 경험이다. 우리는 성경의 언어를 우리의 모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성경의 중심에 있는 신학적 개념들을 전달하는 일도 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 개념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 어휘들 가운데 그 의미를 충분히 살려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p. 26
1장 의: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서의 진실함, 정의 그리고 긍휼 ∥ 마태복음
누군가는 위의 묘사로부터 ‘의’는 결국 율법적으로 꼼꼼히 의무를 다하고 법과 규율을 준수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법과 규율은 좋은 것이지만, 의는 그 이상의 개념이다. 의는 관계 속에서의 신실함과 충성(약속을 지켜 다른 이를 위해 ‘함께 있어 주는’)에 관한 것이고, 심지어 다른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도 포함한다.
p. 79-80
3장 용서: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풀어 주고 회복시키기 ∥ 누가복음-사도행전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할 때 나는 판사가 죄인을 풀어 주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누가의 견해를 반영한 더 나은 비유는 자기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의 비유다. 용서받은 우리는 사회로 풀려나온 죄수가 아니다. 우리는 포옹하며 환대받은 아들과 딸이다.…용서는 단지 커다란 생명책에 아주 작은 글씨로 당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걱정하던 아버지의 눈에서 흐르는 기쁨의 눈물과 뒤섞여 버린 당신의 뺨에 맞닿는 그분의 입맞춤을 느끼는 것이다. 당신은 잃어버린 바 되었었고, 되찾아졌다.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p. 119
5장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함으로 누리는 새 생명 ∥ 고린도전후서
세상은 ‘승자’와 ‘패자’를 세상의 방식에 따라 정의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라는 렌즈를 통해 다르게 바라본다. 사실 하나님은 소위 ‘패자’와 ‘보잘것없는 자’(nobodies)를 자신의 구속 계획의 일부로 택하셨다. 이는 우리가 사람과 소유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을 바꾸시기 위한 것이다(고전 1:28).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의 더 깊은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에 대해 죽고,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한다.
p. 172-173
8장 교제: 하나님 그리고 다른 이들과 삶 나누기 ∥ 빌립보서
교제는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유익이 아니라 필수다. 재미가 아니라 복음의 임무다. 그리스도인이 서로에게 두는 거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거리를 나타낸다.
p. 180
9장 소망: 하나님이 구속하신 미래에 기대는 것 ∥ 데살로니가전후서
구약에서 소망의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을 때, 나는 내가 발견한 사실에 놀랐다. 이전에 나는 성경이 주로 종말론, 곧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 세계의 최종적 구속과 회복에 관해 이야기할 때 ‘소망’을 사용할 거라고 가정했다.…하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구약이 소망을 먼 미래에 있을 성취의 때에 관한 것으로만, 혹은 대부분 그런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스라엘은 종종 매우 ‘현재적’인 방식으로 소망을 고백했다.
p. 224
11장 평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온전함, 선함, 조화 ∥ 히브리서
결국, 기독교적 평화가 곧 안식처는 아니다. 그것은 삶의 수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회복 탄력성(resilience)과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맞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감싸는 보호막과 같다.
p. 236
12장 종교: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기 ∥ 야고보서
참된 종교는 외부를 향하며, 경건을 삶으로 구현한다는 개념에 기초하여 야고보는 수많은 사회 문제를 다루지만, 그중 경제 문제에 방점을 찍는다(1:9-10; 2:1-7; 5:1-6). 종교는 돈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야고보가 신약의 ‘아모스’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할 것이다. 아모스서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불순종을 고발하고 심판으로 위협하신다(암 2:4-5). 이러한 부패는 주로 경제 영역에서 나타났다.… 아모스는 참된 종교는 언약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선을 구하는 것이라고 상기시킨다(14절).
p. 297
15장 증언: 예수님과 그분의 길을 옹호하는 공공의 대변자-무슨 일이 닥쳐도 ∥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휴거에 관한 책이 아니며, 종말의 때는 정말로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면초가에 내몰린 온유한 그리스도인들을 도와 그들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과, 세상이 그들을 거부하고 수치를 주고 고문하며 죽이더라도 그들의 공적 증거가 가치 있고 영광스러우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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