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믿음이 좋은 한 노부부가 계셨다고 합니다. 이 부부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해 여름에 겪은 일인데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모든 식당이 큰 타격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이 집사님 부부가 교회에 갔다가 근처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대부분의 단골 식당이 문을 닫은 상황이었기에 분식집을 찾았던 것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식당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부부가 “계세요? 주인 계세요?”라고 부르자 안쪽 방에서 주인이 나왔습니다. 당시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은 종종 가게 안에 거주 공간을 마련하곤 했는데, 이곳도 그런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주인이 나왔는데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였습니다. 부부는 쫄면 두 그릇을 주문하며 물었습니다.
“사장님, 얼굴이 왜 그러세요?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그러자 여주인이 대답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월세도 몇 달째 못 내고 있어요. 그래서 기운이 없어 방에 누워 있었어요.”
이어 여주인은 하루 전에도 잔치국수 세 그릇밖에 팔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루 종일 손님이 세 명뿐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주인이 쫄면을 만들어 가져왔고, 남편이 먼저 한 젓가락을 먹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쫄면이 맛이 갔어.”
부인이 맛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콩나물이 상했네요.”
남편은 상한 음식을 주인에게 말하려 했지만, 아내가 긴급히 사인을 보내며 말했습니다.
“여보, 콩나물만 빼면 괜찮으니까 그냥 먹어요.”
장사가 잘 안 돼서 오래된 콩나물을 사용한 것 같다고 생각한 부부는 콩나물을 골라내고 쫄면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부부는 돈을 탁자 위에 놓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사장님, 쫄면 맛있게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리고는 주인을 만나지 않고 식당을 떠났습니다.
식당을 나선 후 남편이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평소에 음식이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인데 왜 오늘은 콩나물을 골라내고 먹자고 했어?”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여보, 우리는 쫄면이야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사 먹을 수 있지만, 저 사장님은 혼자 분식집을 하며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돼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계셨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한 거예요.”
정말 귀한 마음 아닙니까?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갔지만, 그날부터 부부는 3일 동안 설사를 했습니다. 이후 부부는 다시 그 분식집을 찾아 쫄면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주인은 처음에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쫄면을 가져오며 그때를 기억해 냈습니다.
“혹시 지난주에 괜찮으셨어요?”
부부는 꼭 짜고 한 것처럼 합창하듯 대답했습니다.
“네, 괜찮았는데요. 왜요?”
그러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두 분이 나간 후에 식탁을 치우다 보니 콩나물만 빼놓은 걸 보고 이상해서 먹어봤더니 맛이 다 갔더라고요. 주방에 있던 콩나물을 확인했더니 다 상했더라고요. 그런데도 두 분이 아무 말 없이 쫄면을 드시고 돈까지 놓고 가신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위로가 돼 많이 울었어요.”
그 후 부부는 교회에 다녀올 때마다 꼭 그 분식집에 들렀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다양하게 시키며 1년 동안 꾸준히 방문했습니다. 1년쯤 지났을 때,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교회에 등록했어요. 저도 이제 교회 다니려고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울컥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이 단지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걸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노부부의 행동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낭비하는 사랑, 과잉 사랑으로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작은 실천을 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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