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한 친구의 불행 속에는 기분 나쁘지 않은 어떤 요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그런 감정이 존재합니다. 이를 질투라고 볼 수도 있겠죠. "저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 나에게는 없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질투심일 겁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투라는 감정은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느끼는 것이지, 전혀 없는 사람은 질투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가진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인간의 기본적인 죄 중 하나로 '질투'를 꼽습니다. 질투는 단순히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도 비롯됩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보다 훨씬 잘난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내지만, 정작 친구가 잘되면 흔쾌히 축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칸트가 말했듯이, "가장 친한 친구의 불행 속에는 기분 나쁘지 않은 무엇이 있다"는 표현은 이와 같은 심리를 잘 설명해 줍니다. 이러한 질투심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부동산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이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성경의 기본 정신은 "땅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그 땅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땅을 자신의 소유로 삼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현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집을 마련하기 어렵게 되고, 젊은이들도 결혼 후 도시에 거주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분명 개선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집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거주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질투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거나 졸졸 흐르는 개울의 소리를 듣는 일,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보며 경탄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삶의 진정한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삶이 가진 작은 부족함이 그렇게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내면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부자가 되는 세상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 채를 소유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보다는, 집을 거주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부러움과 질투를 넘어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도움을 주는 일을 통해 내 삶이 너무 사치스럽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새롭게 이해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내는 것이 질투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고 따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삶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사회가 인정해 주고, 내 양심이 인정해 주는 방법으로 그 에너지를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이 에너지는 사실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분의 고민을 들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반심리적인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외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나는 한평생 도덕적으로 살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너무 괴롭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중년기에 외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이 결코 이상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중년기는 더 이상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노인도 아닌 애매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젊음은 좋은 것이고, 늙음은 나쁜 것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년이 되면서 사람들이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이를 부정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나는 아직도 젊다"는 것을 확인받으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확인 작업은 대개 이성에게서 이루어지는데, 같은 나이의 이성보다는 낯선 이성에게서 젊음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중년기의 외도는 단순히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는 문제가 아니라, "나는 아직 젊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적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성숙도가 결정됩니다. 가장 미성숙한 방식은 욕망을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종종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추구했던 젊음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됩니다.
다음 단계는 이런 욕망을 억누르고,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억눌린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는 일종의 자기기만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동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밑바탕에 깔린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봤자 젊음을 지킬 수는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이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인정하고 양심이 허락하는 방식으로 그 에너지를 사용하면 됩니다. 이는 마치 칼과 같은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습니다. 칼이 나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흉기가 되지만, 어머니의 손에 들어가면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도구가 되듯이 말입니다.
상담 초기에는 자신이 비도덕적이고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인 이유를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돕고 교육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실제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중년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강사로 변신한 분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기보다는, 이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중년의 모토는 '꿈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중년은 내가 많은 자원과 경험을 가진 시기입니다. 이 자원을 활용해 다음 세대, 즉 자식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그들을 통해 이어진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중년을 가장 바람직하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사회에도 유용한 방법으로 이를 승화시키는 것, 그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모든 것을 완벽히 충족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삶에서 부분적인 진실과 가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질문을 품고 김기석 목사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CBS 기독교 방송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삶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종종 막막함을 느끼게 됩니다. 인생이 시간표대로 정확히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삶이 빈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거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삶이 더욱 힘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습관도 고통을 더합니다. 저 사람은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불행해 보이고, 저 사람은 건강한데 나는 병약해 보이고, 저 사람은 부모님의 지원이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망이나 투덜거림으로 현실이 바뀔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확실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미래의 불안함 때문에 사주팔자 등을 찾아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사주를 본다고 해서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은 어둡다"라고 본다면, 그것이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고, "내 인생은 밝다"라고 해도 실제로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결국 이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에 대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 용기는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지금은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삶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는 확신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중년의 모토는 '꿈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중년은 가장 많은 자원과 경험을 가진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자원을 자식과 다음 세대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통해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도 이러한 상태로 나아가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유용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승화시키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 아닐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이승우 작가의 작품 중 잊을 수 없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서자의 당당함"**이라는 말인데, 이는 적자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문법을 만들고 살아가는 태도를 뜻합니다. 우리는 종종 적자들의 기준에 맞추려다 뒤처지고 힘겨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서자의 당당함은 그들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말합니다. 저는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믿습니다.
인간에게는 숙명적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것,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 모두 숙명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수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부자였더라면", "내가 더 건강했더라면", "조금 더 예뻤더라면" 하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숙명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결국 숙명에 갇힌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숙명의 힘은 약해지고, 자유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계획이 있기에, 그 계획을 우리의 삶 속에서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과거 공동체는 약자들을 품고 함께 살아갔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맡았던 일을 병원이나 기관이 대행하면서 사람들은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경쟁은 내면화되었고,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스펙을 쌓게 하고 경쟁에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소수이고, 다수는 패배자로 남습니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패배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와 부모 간의 관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서로에게 쌓인 감정이 쌓여 갈등으로 번지곤 합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는 솔직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신의 기대를 솔직히 이야기하고, 자녀는 그 기대가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털어놓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해야 합니다. 기대를 강요하기보다는 자녀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은 세대는 현실이 힘들더라도 원망과 불평만으로는 삶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강물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획일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실천적 신앙은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힘입니다.
결국, 자녀와 부모 간의 대화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협력할지 논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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