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솔제니친의 우화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은 25년 동안은 인간다운 운명을 살고, 그다음 25년은 말처럼 일하며 살아요. 그리고 50세 이후의 다음 25년은 마음은 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개처럼 짖으며 살아야 하고, 그 이후의 삶은 원숭이처럼 누군가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삶이라고 하는데, 이는 나이에 대한 비웃음이 아니라 인생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청장년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지 모릅니다.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가족들을 돌봐야 하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힘겨울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면 번듯하지 못한 삶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내 인생이 쭉정이처럼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버텨온 자신을 칭찬해 주세요. "잘 살았다, 그만큼 버텼으니 괜찮다"라고 말해 주세요. 부모님을 모셨고, 자식들을 건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삶입니다. 스스로를 검증하며 삶을 긍정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인생을 좀 더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삶에 짓눌려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왔잖아요. 우리의 잘못된 삶의 방식 때문이겠죠. 행복을 언제나 미래로 미뤄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며 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아요. 누리지 못한 삶은 우리 안에 그늘로 남아 있습니다. 어른들의 내면에도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있거든요. 잘 놀고 싶었고, 즐기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는 거죠. 그 어린아이를 달래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자신을 위해서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슬프다는 점이죠.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번 돈이 주는 자유가 그것입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죠. 그런데 돈이 없다고 해서 불행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정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의 고단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괜히 만나기만 해도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죠. 정말 보기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보람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눔으로써 느끼는 보람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런 일을 찾아내면 참 좋을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인 중 한 분은 아베 피에르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엠마우스 운동'이라는 운동을 시작했어요. 엠마우스 운동은 집 없는 사람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는 운동입니다. 그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누군가 달려오더니 "큰일 났습니다. 아무개가 자살하려고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베 피에르가 급히 달려가 보았습니다.
"왜 생을 포기하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고아원에서 자란 이야기, 성인이 되기 전에 고아원을 떠나 방황하며 고생했던 이야기, 가정을 이루어 행복할 줄 알았지만 아내가 집을 버리고 떠나버린 이야기, 그리고 빈곤 속에서 초라한 처지를 생각하니 더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베 피에르는 대답합니다.
"아, 당신이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기왕 죽기로 결심했으니,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내가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지어주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자살을 포기하고 아베 피에르를 도와 엠마우스 운동의 초창기 멤버가 됩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때 아베 피에르가 나에게 와서 훈계를 늘어놓거나 돈 몇 푼을 줬다면 나는 죽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분이 와서 나를 도와달라고 말했기 때문에 내 삶의 의미가 생겼고, 그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적다 할지라도, 내가 가진 경험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면, 돈이 주지 못하는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건강은 삶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로 한마디를 남기는 등 온라인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들도 의미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충분히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제가 요즘 하는 일 중 하나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좋은 글을 읽으면, 예전에는 "참 좋은 글이네,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하고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급적 모르는 사람이라도 작게나마 반응을 합니다. "오늘 쓰신 글에 정말 공감했습니다"라고 간단하게라도 이야기를 남깁니다. 저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제 글에 반응을 보여주면 정말 기쁘거든요. 우리가 글을 쓰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마치 병에 메시지를 담아 물 위에 띄워 보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병을 건져 메시지를 읽고, 거기에 공감하며 "내 삶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때, 글을 쓴 사람은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반응해주는 일을 통해 공감의 울타리가 만들어지고, 우정을 나눌 가능성이 생긴다고 봅니다. 특히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우정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를 알고, 그 시기에 맞는 아름다움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가 들려주는 말처럼, 인생에는 모든 것에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면 허물 때가 있으며,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는 것이죠.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만드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맞는 아름다움을 살아내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성장은 멈출 수 있지만 성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더욱 원만해져야 하거든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젊은이들과 경쟁하거나 자기의 과거에만 집착하면, 그것은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주름살을 보고 추하다고 느끼는 자식은 없을 것입니다. 그 주름살과 흰머리는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세월이 만든 흔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시기에 맞는 아름다움을 살아낸다면, 주름살조차 감사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백발이 되었을 때는 "이제는 내가 백발에 맞는 아름다움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시기에 걸맞은 지혜와 고민을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 변해가는 것을 서러워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내면의 빛이 깃들지 않는 것을 더 서러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겉모습만 아름다운 사람들은 많지만, 내면에서 우러나는 거룩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남들에게 겉모습으로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느냐가 아니라, 내 내면의 빛이 사람들에게 비춰져서 그들이 순수하고 맑아지고 깨끗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그런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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